꽤 긴 글이어서 목차를 적습니다.
1. 콘텐츠, 수익화해야 하는 이유
2. 콘텐츠 생산/유통 독립하기
3. 수많은 이야기 위에 나까지 말해야 할까?
4. 모든 기록은 결국 나에게서 시작해 나에게로 온다
비밀 일기를 제외하면 모든 콘텐츠는 생산과 유통이 한 덩어리다. 생산을 했으면 유통을 해야 하고 유통을 하려면 일단 생산을 해야 한다. 콘텐츠 유통이라는 게 거창한 게 아니다. 글을 쓰고 나서 누군가에게 보여주는 행위는 모두 유통이다. 손글씨로 쓴 원고를 주변 친구들이 돌려 보는 것도 유통이고, 블로그나 브런치에 올리는 것도 유통이다.
유통 다음 단계는 수익화다. [생산-유통]에서 끝나는 콘텐츠가 있고 [생산-유통-수익화]까지 연결되는 콘텐츠가 있다. 꼭 수익화를 해야 할까? 이 지점에서 명확히 해야 한다.
본업이 있고, 그 본업을 그만둘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본업을 더 잘 알리고 싶어서 만드는 콘텐츠라면 수익화를 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공짜로 유통시켜서 더 많이 바이럴 되는 게 좋다. 작게라도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콘텐츠를 마케팅 툴로 활용할 수 있다. 자신에게 콘텐츠가 마케팅 수단이라면 수익화에 대한 고민은 미뤄둬도 좋다.
콘텐츠가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때부터는 아무리 초기라도 할지라도 수익화를 염두에 둬야 한다. 콘텐츠를 만든다는 것은 즉각적인 가치를 제공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만드는 것과 다르다. 명확한 '효용'을 설득하기가 어렵고 읽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고 가격이 달라진다. 좋은 글을 쓰며 기다린다고 해서 알아서 수익화가 되는 게 아니다. 수익화 될 만한 글을 수익화 될 만한 구조로 써야 한다.
수익화를 고민하지 않고 글을 쓰려면 생계를 위한 활동을 하고 남는 시간에 써야 한다. 글쓰기 활동에 바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야 한다. 일기를 쓰는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한다. 아무도 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써야 한다. 그러나 애써 글을 쓰고 세상에 보내 놓고선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한다면 왜 쓸까? 왜 전할까? 쓰고 나면 어떤 형태로든 대답이 듣고 싶어 진다. 자본주의 시대에서 가장 진심 어린 응답은 구매다.
짝사랑에 중독되는 사람도 있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자신의 절절한 마음이 좋아서다. 응답 없는 글쓰기에 빠져들 수도 있다. 치유를 위한 글쓰기를 하듯이 쓰는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정확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 정말로, 진심으로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도 괜찮은가?
누군가 내 '글'을 들어주길 바란다면, 글로 무언가를 팔려는 게 아니라 글쓰기 활동 자체를 지속하고 싶다면 수익화를 생각해야 한다.
올해 초, 거창한 이름의 파일을 만들었다.
콘텐츠로 회사 밖에서 버는 돈의 종류와 금액을 점차 늘려가는 게 목표다. 세부 금액을 공개할 수는 없어서 총액, 항목, 비중을 공개한다. 나의 파이프라인은 크게 두 갈래이다.
처음에는 콘텐츠로 버는 소득의 비중이 10%도 되지 않았다. 독서모임, 리추얼 모임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버는 돈이 90%를 넘었다. 일주일에 1개씩 꾸준히 글을 발행하다 보니 플랫폼에서 정산해주는 원고료가 조금씩 늘고 있다. 반대로 커뮤니티 소득은 그대로다.
커뮤니티를 기획하고 운영하는 건 '내 시간'을 공유하는 일이다. 동시에 여러 모임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한 달에 운영할 수 있는 모임이 정해져 있다. 콘텐츠는 다르다. 똑같은 글을 여러 플랫폼에 올릴 수도 있고, 2월에 썼던 글이 3월에도, 4월에도 정산된다. 글쓰기 소득은 복리이자처럼 쓰면 쓸수록 쌓인다. 대신 꾸준히 써야 한다. 콘텐츠 플랫폼의 알고리즘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체로 꾸준히 쓰는 크리에이터가 노출에 유리하다.
매달 꾸준히 정산되는 콘텐츠 소득을 보면서 욕심이 나기 시작했다. 플랫폼을 더 늘려서 운영해보자!
그렇게 플랫폼을 늘려갔고 매월 금액은 늘어났다.
누가 숫자를 차갑다고 말하나? 숫자는 뜨겁다. 숫자에는 인간의 욕망이 가득 담겨있다. 매월 편차는 있지만 대체로 우상향 곡선을 그려가고 있다. 그리고 어제, 무작정 플랫폼 늘리기를 그만두기로 했다. 한 플랫폼과 맺기로 했던 계약서에 도장을 찍지 않기로 했다.
플랫폼의 존재 목적은 내 글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 아니다. 플랫폼에게는 자신만의 존재 목적이 있다.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누군가의 글이 필요하다. 플랫폼의 수익구조를 보면 플랫폼이 크리에이터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북저널리즘: 주요 콘텐츠는 플랫폼 소속 에디터의 글이다. 크리에이터의 글을 노출하는 [저널] 영역이 있다. 구독료의 일부를 저널 작가에게 나눠준다. 크리에이터 글 생산에 관여하지 않는다.
퍼블리: 주요 콘텐츠는 크리에이터의 글이다. 크리에이터 선정, 콘텐츠 생산/편집에 플랫폼이 참여한다. 출판사와 비슷한 개념으로 구독료 수익의 일정 비율은 크리에이터와 나눈다.
브런치: 브런치는 카카오의 자회사다. 브런치 글은 누구나 무료로 볼 수 있다. 양질의 글을 공짜로 보기 위해 트래픽이 모인다. 이 트래픽으로 뭔가를 하려면 늘 양질의 콘텐츠가 충분히 유통되어야 한다. 콘텐츠 수익이 없는 모델이니 구독료를 정산해줄 수는 없다. 대신 기회를 제공한다. 여기서 열심히 활동하다 보면 책을 낼 기회를 주겠다는 전략으로 작가 지망생들을 모으는 전략이다.
펀딩 플랫폼: 생산에는 참여하지 않고 유통 판로만 제공하며 수수료가 플랫폼의 수익이 된다.
출판사: 전통적인 플랫폼이다. 크리에이터와 공동 작업해서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 유통한다. 판매 수익의 일부를 작가에게 지급한다.
온라인 클래스: 코로나 이후 급격하게 성장한 플랫폼이다. 크리에이터와 공동 생산하기도 하고 크리에이터가 완성한 콘텐츠를 유통만 시키기도 한다. 플랫폼이 생산에 얼마나 참여하는지에 따라 수수료가 다르게 책정된다.
내 콘텐츠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속에는 두 가지 욕망이 있다. 그리하여 돈이 돌아오거나, 새로운 기회가 돌아오거나. 그러나 돌아온 돈과 기회에 플랫폼의 몫을 제외하고 나면 남는 게 생각보다 적다. 매일 열심히 읽고 쓰면서 그저 읽고 쓰는 것 만으로 만족하는 시절이 지나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이 스멀스멀 생기기 시작했다.
여전히 플랫폼의 도움이 필요하다. 플랫폼이 내 글을 트래픽 유입 매체로 활용하는 것까지는 감수할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플랫폼이 글의 저작권, 지식재산권을 넘어 2차 활용 저작물의 저작권을 자신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순간 위험을 감지했다.
"이제 여기서 나갈 때가 됐구나."
내가 만드는 콘텐츠는 '글'이다. 때로 사진과 영상을 생산하기도 하지만 글을 더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 이상은 아니다. 글이 플랫폼으로부터 독립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다.
사실 콘텐츠는 그 자체로 이미 매체다. 누군가의 생각을 전하기 위한 매체다. 사진, 영상, 글의 표현 방식은 모두 다르다. 표현 방식에 따라 콘텐츠가 결정되기도 한다. 그래도 어쨌든 콘텐츠의 본질은 '메시지'다.
메시지를 전하는 매체 중 가장 자본의 영향이 적은 것이 글이다. 읽고 쓰는 것이 찍고 상영하는 것보다 돈이 덜 들기 때문이다. 글로 독립하는 것이 영상으로 독립하는 것보다 쉽다. 영상 매체는 플랫폼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플랫폼의 영향력이 너무 크다.
글 중에서도 종이책이 독립의 의미에 가장 잘 부합한다. 책은 돈도 안 되고 구시대적이다. 휘둘리고 싶어도 휘두르려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독립이 쉽다. 거기다 실체도 존재한다. 만질 수 있다는 것만큼 확실한 존재감이 어디 있을까?
이슬아 작가는 '메일'과 '자가출판'으로 생산과 유통 독립을 실현했다. 입소문과 SNS를 마케팅 수단으로 잘 활용했다. 글쟁이가 실현할 수 있는 최선의 독립이 아닐까. 어쩔 수 없이 나도 같은 길을 가기로 했다.
생산 독립은 쉽다. 그냥 혼자 공책에 쓰면 된다. 문제는 유통 독립이다. 독립 출판을 한다고 해서 누가 바로 읽어주는 게 아니다. 지금 이 글만 해도 이렇게 플랫폼 서비스를 통해 유통된다. 계속해서 SNS에 꾸준히 내 이야기를 쌓아야 하는 이유다.
플랫폼에서 생산, 유통하기로 했던 내 콘텐츠 이야기를 독립 출판으로 만들기로 했다. 돈도 안 되고, 알려지지도 않을 방법, 굳이 선택하고 싶지 않았던 길을 가기로 했다. 내가 콘텐츠를 만들고 싶었던 마음의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서.
생산의 독립
유통의 독립
힘으로부터의 독립은 내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다. 평생을 힘의 구심력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는데 다시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포장해도 누군가에게 이 선택은 포기다. 그러나 포기는 도전이고 용기다.
콘텐츠를 수익화하는 방법은 좋아하는 일로 먹고사는 법과 원리가 똑같다.
내가 [가진 이야기] & [좋아하는 이야기] & [사람들이 원하는 이야기]의 교집합을 찾아내는 것이다. 조합의 묘미는 확률이다. 여러 가지를 조합할수록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 여러 가지를 조합할수록 내 이야기는 고유해진다.
요리 에세이
요리 = 1개 키워드
회사를 다니며 퇴근 후 요리하는 에세이
회사 X 요리 = 2개 키워드
회사를 다니며 매일 한 가지 채소로 요리하는 에세이
회사 X 요리 X 매일 X 채소 = 4개 키워드
키워드를 조합할수록 이야기는 재미있어진다. 머릿속에 특정한 상황이 그려진다. 사람들은 훌륭한 이야기를 바라지 않는다. 타인의 삶이 눈에 그려지는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세상에 이야기가 넘쳐흐르는 시대다. 굳이 나까지 운동장에 나가 목소리를 보태야 할까? 힘껏 내지른 소리에 돌아온 답이 나의 메아리뿐이었던 시절, 글쓰기가 너무 어려웠다.
글에 나를 드러내는 일은 내가 가진 다양한 키워드를 조합하는 과정이다. 솔직하게 나를 쓰고서부터 세상에 필요 없는 이야기는 없다는 것을 알았다.
돈이 "더" 되는 글과 "덜" 되는 글은 존재한다. 내가 쓴 글 중에도 돈이 안 되는 글, 소소한 돈이 되는 글, 매우 돈이 되는 글이 있다.
돈이 안 되는 글
삶의 태도에 대한 콘텐츠
삶을 장기적으로 바라보는 글 (평생의 관점)
대개 브런치나 블로그에 올린다.
소소한 돈이 되는 글
일하는 태도에 대한 콘텐츠
삶을 중기적으로 바라보는 글 (대략 10년의 관점)
일 잘하는 법, 구체적인 일 경험 에피소드
대개 북저널리즘이나 퍼블리에 올린다.
쏠쏠한 돈이 되는 글
당장 돈을 벌어주겠다는 글.
하루 1시간 글 써서 월 50만 원 버는 법 같은 글
돈을 벌어준다고 약속 하는 글
어떤 형태든지 이런 글은 투자 콘텐츠가 될 수밖에 없다
삶을 단기적 관점으로 바라보는 글 (1년 안에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
독자의 삶에 얼마나 빠르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지에 따라서 글쓰기의 수익성이 결정된다.
추가적인 변수가 있긴 한다. ‘유명세'이다. 일상에 대한 긴 글이라고 할 지라도 도달 타깃 범위가 넓다면 돈이 된다. 도달 타깃 범위를 넓이는 방법은 두 가지다.
마케팅 비용을 크게 쓰는 것, 글쓰기 전에 이미 유명해질 것. 대형 출판사와 출간 계약을 하거나 책을 내기 전 이미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10만이 되는 경우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당장 실현하기에는 어려우므로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단계적으로 쓰는 것이다.
내 일과 삶에 대한 글을 꾸준히 쓰기.
매일 짧게라도 글을 쌓아 어딘가에 올린다.
매일 일기를 쓰면서 가끔 일 얘기도 하는 전략이다. 일상 글쓰기에 힘이 실리려면 솔직해야 한다. 일에 대한 글쓰기에 힘이 실리려면 쓰려면 당연한 얘기지만 일단 일을 하고 있어야 한다. 불행히도, 그리고 다행히도 세상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요즘은 20대도 트렌드를 쫓아가기 어려워한다. 누군가 어떤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의 세계를 자세히 기술하는 것만으로도 꽤 관심 가는 콘텐츠가 된다.
그렇게 계속 쌓아나가면서 소소한 기회들을 만나면 그 기회를 역시 구체적으로 글로 기록한다. 그 기록이 모이면 [매일 30분 글쓰기로 한 달에 50만 원 벌기] 같은 글이 된다.
이 과정은 이런 선순환 구조가 된다.
일상에 대해 매일 씀 > 일 이야기도 가끔 씀 > 일 이야기를 소개한 기회가 생김 > 일에 대한 짧은 글을 계속 씀 > 소소한 돈이 됨 > 소소한 돈을 버는 법을 글로 씀 > 쏠쏠한 돈이 됨 > 쏠쏠한 돈 버는 법을 글로 씀 > 꽤 큰돈이 됨 > 글로 독립하기
선순환 구조에서 나는 소소한 돈을 버는 법을 글로 씀 단계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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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쏠쏠한 돈이 됨으로 넘어가려면 플랫폼의 힘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게 싫은 거다. 애초에 나를 위해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글쓰기를 위해 나를 희생하라니까 내키지 않는다. 나를 잃지 않고 계속 나를 위해 쓰고 싶다.
전략을 바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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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해서, 무지하게 돌아가겠다는 거다. 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에게서 시작되어서 나에게로 돌아오기 위해서다. 나로부터 출발한 글이 나를 떠나 저 멀리 헤매는 것을 두고 볼 수 없다. 어쩌면, 그럭저럭 회사를 다니면서 이렇게 실컷 글을 쓸 수 있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글로 독립한 거 아닐까?
역시 인생의 참맛은 정신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