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대학 전공으로 불어불문학을 선택했다. 오랫동안 글쓰기를 좋아하고 훈련한 나에게 수시 논술 전형은 수능보다 자신있었다.
최상위권 A 대학 - 불어불문학
상위권 B 대학 - 경제학
상위권 C 대학 - 전공 기억 안남
세 대학의 논술 시험을 치뤘다. A대학과 B대학에 합격했다. A 대학은 평소에 꿈꾸던 학교였다. 가고 싶었지만 과연 내가 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던 곳에 합격하다니, 꿈만 같았다. B 대학도 괜찮은 선택지였다. 강남과 학군을 비교하면 한참 밀리지만 2등의 자존심만은 기죽지 않았던 목동 학군에서 매일 옆반 oo와 비교를 당하며 공부했던 영향일까.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A 대학에 등록했다. 등록을 마치고 수능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ALL 1등급. 실전에 강한 성격 덕분에 수능 성적이 평소보다 좋았다. A 대학 전공을 무턱대고 고른 것을 후회했다. 이 성적표라면 A 대학 경영학도 노릴 수 있을텐데... 그렇다고 재수를 할 마음은 없었다. A 대학 불어불문학과에 가기로 했다.
학교 선생님도, 논술 선생님도, 부모님도 왜 굳이 불어불문학으로 원서를 넣었는지 물어봤다. 불어로 된 문학은 평소에 한 번도 접해보지 않았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딱히 외국어에 관심이 크지도 않았다. 문학보다는 에세이를 즐겨 읽었다. 소설은 거짓말이고 허구같아서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책을 늘 끼고 살았으니까 스스로를 '문학소녀'로 불렀다. 비문학 에세이를 좋아하는 '비문학 소녀'는 어째 어감이 이상하니까. 그럼에도 불어불문학의 의외의 선택이었다.
"그냥, 불어불문학 정도면 A 대학에 붙을 수 있을 것 같았어. 일단 붙고 전과하면 되잖아. 경영학이나 뭐, 사회학이나."
지금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릴만큼 부끄러운 생각이다. 모든 불어불문학도들에게 찬물을 끼얹은 만행을 사과한다. 그때는 정말 철이 없었다. 별 생각 없이 정한 전공이었지만 의외로 애정이 가는 공부였다. 국문학, 경영학과 수업에 기웃거리느라 졸업이 늦어지긴 했지만 프랑스 파리로 교환학생도 다녀오고 프랑스어 자격 시험도 꾸준히 공부했다.
어쩌다 선택한 불어불문학 공부가 의외로 적성에 맞았던 거다. 입 안에서 바람을 모아 혀 끝을 통과해 목구멍으로 이어지는 'r' 발음을 소리내는 것도 좋았고, '빠시옹!' (passion, 열정)을 외치던 노교수의 수업도 좋았다. 수시 합격자 모임에서 친해진 불문과 삼총사 친구들과 뒷자리에서 과자를 까먹으며 키득대다가 같이 쪼르르 불문과 연구실에 모여 사전을 뒤적이며 프랑스 소설을 번역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프랑스 문화 예술 수업은 어린 스무살의 지적 허영을 충족시켜주기 충분했다.
무엇이든 돈벌이와 투자로 연결짓는 34살의 내가 무색해질만큼 그때의 나는 쓸모 없어 보이는 경험에도 온 마음을 바쳤다. 명문대에 입학했다는 우쭐함과 점수 맞춰 선택한 불어불문학도의 자격지심 사이에서 방황하기도 했다. 누군가 대학 교정에서 나를 만났다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평생을 모범생으로 살았으나 대학에 들어와 공부보다는 '~척 하기' 놀이에 흠뻑 빠진 어설픈 문학도
사실 나는 재미없는 모범생이라는 것을 인정했다면 지난 15년의 시간이 좀더 쉬웠을까. 기왕 선택한 전공이니까 제대로 불어불문학 공부를 했었더라면 내 인생이 좀더 잘 풀렸을까. 3학년이 되어 사실 나는 국문과 체질이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공을 바꿨다면 내 삶을 좀더 사랑할 수 있었을까. 내가 사랑한 것이 글이라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더라면 지금 나는 글로 밥벌이를 하는 작가가 되었을까.
지금의 나는 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을 선택한 것이라고.
곽아람 작가의 <공부의 위로>를 한달 동안 읽었다. <공부의 위로>는 40대의 작가가 20년 전 대학생 때 들었던 교양 과목 공부에 대한 글이다. 돈 버는 법이 아닌 삶과 아름다움과 영혼에 대해 공부하던 시절을 회고하는 글을 읽으며 위로받았다. 일부러 매일 밤 조금씩 아껴서 읽었다. 어떤 날은 위로를 넘어 구원받는다는 기분도 들었다. 늦은 밤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는 걱정 덩어리 나에게 '괜찮다고, 나도 그렇다고, 우리 같은 사람에게는 우리만의 기쁨이 있지 않느냐고.' 말해주었다.
작가에게 이 책을 다 읽고 편지를 보내고 싶었지만 참았다. 나의 어설픈 독해가 실례가 될 것 같아서. 그럼에도 남기고 싶은 말이 많다. 나를 위로한 책이 다른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될 것을 안다.
같은 시공간을 점유하면 같은 세계를 사는 걸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같은 말을 들어도 모두가 다르게 해석한다. 똑같아 보이는 세상을 각자의 해석이라는 다른 차원에서 살아간다. 모두가 착각 속에 빠져 산다. 모두가 조금은 틀리고, 왜곡되고, 오해한 채로.
"오랜만에 아름다운 착각 속에 빠진 것 같습니다. 어쩌면 문학이 하는 일도 우리를 이러한 착각 속에 빠뜨리는 게 아닐까 생각합니다."
인간은 자주 착각하고, 착각을 진실로 믿어 가끔씩 위대한 힘을 발휘하고, 착각에서 깨어나 슬퍼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착각한다. 착각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 흔들릴 수 있는 존재라는 것, 인간의 취약성을 인정하면서 그럼에도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인문학의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공부의 위로>, 곽아람
20대, 나를 미워하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왜 나는 싫은 소리를 못할까. 왜 나는 겁이 많고 용기가 없을까. 왜 나는 끈기가 없고 쉽게 포기할까. 왜 나는 카리스마가 없고 남들의 말에 휘청일까. 왜 나는 이렇게 내향적일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날이면 Love Affair OST인 Ennio Moriconne의 [Piano Solo]를 들으며 울었다. 그렇게 눈물을 토해내면 숨이 탁- 하고 쉬어졌다. 그러면 또 나를 미워할 에너지가 생겨나 부지런히 자책했다. 동굴 속에서 나온 것은 제대로 글을 쓰면서부터였다.
'제대로' 글을 쓴다는 감각은 멋져보이는 글이 아닌 내 멋대로 쓴 글을 브런치에 올리면서 갖게 되었다. 그곳은 튼튼하고 빽빽하고 믿음직한 대나무숲 같았다. 나같은 사람이 많아서 이상할 것도 특별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쓴 글이 책이 되고, 칼럼이 되고, 강의가 되자 나도 모르게 다시 글에 힘이 들어갔다. 한참 멋져보이는 글을 쓰다가 스스로에게 물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지? 사람들이 내 글을 읽는 이유는 멋져보이기 때문이 아니라 솔직하기 때문이잖아."
아...! 그 때 알았다. 나의 불안, 자책, 방황, 눈물, 무너지는 마음이 반짝이는 무기였다는 것을.
기질적으로 평안한 사람들보다 모든 일에 몇 배의 에너지를 더 쓰고 자주 탈진하여 힘이 들지만, 그런 나를 싫어한 적은 없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감정의 스펙트럼이 넓기 때문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으며, 그리하여 글을 쓰는 사람이 될 수 있었다고 믿는다.
<공부위 위로>, 곽아람
걱정 많고 항상 신경이 칼끝 같은 성격이 원망스러울 때도 물론 있다. 그럴 때는 또 다른 의사의 말을 떠올린다. "당신이 그 성격을 유지하고 있는 건, 당신 인생에서 그 성격이 가진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기 때문이에요. 무의식적으로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의 성취는 당신을 힘들게하는 그 성격 덕이라는 걸."
<공부의 위로>, 곽아람
나는 기록 매니아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기를 쓰고, 매일 하루 동안 배운 것들을 복기해 공부 기록을 남긴다. 회사에서는 각종 대시보드를 만들고 공유한다. 기록이 너무 많아서 유튜브, 인스타그램, 브런치, 블로그 세상의 모든 SNS를 섭렵할 기세로 인터넷 세상에 흔적을 남긴다. 그래도 숨이 차지 않을 만큼 나는 생각하고, 기록하고, 기록한 것을 생각하고, 그 생각을 기록한다.
한동안은 그것을 '기억하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걸 기록하는 습관은 쉽게 잊는 성격 때문에 생겼다. 사소한 것부터 중요한 것까지 워낙 쉽게 잊어버리는 탓에 순간의 말과 행동을 기록으로 남기게 됐다. 방대한 기록을 정리하다보니 자연스레 아카이빙도 하게 됐다. 힘든 일, 아픈 일을 잊고 싶은 마음이 강해서 기억이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나의 경험과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오히려 정 반대였다. 기억나지 않는 순간까지도 붙잡아두고 싶어서 기록을 남겼던 거다. 그만큼 나는 내가 애틋하고 소중했다. 나의 모든 시간과 경험이 아스라히 흩어지고 사라지지 않기를 바랐다. 내 기억이 탈락시킨 기억도 간직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의 기억은 기록이 되고 아카이빙이 되고 인터넷 공간 구석구석 흔적을 남겼다.
내 기록의 세계에서는 사건이 시간 순서대로 흐르지 않는다. 생각의 순서대로 흐른다. 기록하고 쓰는 행위를 통해 일상적이지 않는 시간 개념을 경험한다. 나에게 글쓰기는 치유, 종교, 영적인 세계로의 연결이었다.
"신앙의 경험이 독특한 것은 일상적 시간개념과 다른 시간개념을 경험하기 때문" 이라고도 했다. 그 수업이야말로 내게는 일상적 시간과의 단절이었다.
<공부의 위로>, 곽아람
어설픈 문학도 흉내를 졸업과 함께 끝내고 다시 공부를 할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대학 졸업 후 10년이 지난 지금, 함께 매일 공부하는 모임을 이끌고 있다. 다 큰 어른들이 모여서 스스로를 위한 공부를 한다. 그냥 해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나에게 필요한 공부, 내가 좋아하는 공부를 찾아서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진짜 나를 위한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이 공부의 시작은 9년전 퇴근길이었다.
9년 전, 회사 로비를 나서는 순간부터 엉엉 울던 신입사원 시절이었다. 지하철 안에서도 갈아탄 버스 안에서도 어깨를 들썩이며 울어제꼈다. 그때 나를 다독인 건 책이었다. 현실을 피해 책으로 도망치는 거라고 생각했다. 진리와 철학, 장자, 루소,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들이 여기저기서 튀어나오는 책을 읽는 순간 묘하게 마음이 차분하게 안정을 찾았다. 지금 돌아보니 도망이 아니었다. 그때의 나는 나에게 필요한 경험을 하게 해 준 것이었다. 세상에는 다른 삶도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알려주고 싶었던 거다.
우리는 좋은 경험을 가까이하고 싶어하고, 나쁜 경험을 피하기 위해 노력한다. 내가 생각하는 "잘 사는 사람,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잘 설계하는 사람이다. 내가 어떤 경험을 해야 할지, 하고 싶은지 알아차리고 그 경험을 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꾸준히 공부하며 공부로부터 위로와 힘을 얻는 사람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경험을 알맞게 설계해나가는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시간이 나에게는 선물같은 경험이었다. 하마터면 잃을 뻔 했던 길을 헤매지 않고 찾아가라고 곽아람 작가가 등불을 단단히 쥐어주었다. 두 손으로 꽉 붙잡고 나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