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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ul 23. 2022

위험을 무릎쓰지 않는 삶은 가치가 없다고?

책 <삶의 한가운데>



"모든 것을 걸 만한 위험이 없는 삶이란 아무 가치가 없어."




<삶의 한가운데>는 니나를 위한 소설이다. 니나는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위험으로 몰아붙인다. 거리낌없이, 자유롭게, 당당하게. 안정적인 삶보다는 극단의 삶을 추구한다. 니나는 작가 루이제 린저 자신이기도 하다. 1944년, 루이제 린저는 반나치즘 활동으로 체포되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감옥 생활을 했다. 그는 위험에 맞서면서도 정치적 뜻을 굽히지 않았다. 1950년, <삶의 한가운데>를 출간했다.




루이제 린저는 저항, 격동, 위험, 신념을 지지했고 격렬하게 사랑했다. 자신과 닮은 니나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그리며 그가 얼마나 니나에게 애착을 느꼈는지 알 수 있었다. 책 속 니나의 격동적인 삶은 그를 한 없이 매력적으로 만들었다. 소설 속 니나는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시들지 않는 빛이었다. 니나를 18년간 사랑했던 슈타인의 편지를 빌려, 니나 언니 마르그리트의 생각을 빌려, 루이제 린저는 니나가 얼마나 삶의 정수를 살아내는지 표현했다.




마르그리트 (니나 언니) 가 니나를 향해


제대로 살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너라는 생각이 들어. 너는 네 안에 있는 자아들 중의 하나에다 너를 고정시키지 않았잖아. 너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니나와 나는 매우 닮았다. 누구나 우릴 보면 자매라고 여길 것이다. 똑같은 얼굴이다. 그러나 나는 내 얼굴이 훨씬 예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우리가 나란히 걸어갈 때 니나를 쳐다본다. 내 얼굴은 말끔한데 니나의 얼굴은 표정이 가득하다. 바로 이것이다. 니나는 이 얼굴을 위해 비싼 대가를 치렀다.




슈타인이 니나를 묘사하는 단어


우아함, 생기, 지성, 마녀적이면서 요정같은, 활기, 빛나는, 재능 있는


그녀를 묘사할 때마다 이 단어들을 사용했다.




팜므파탈,  대담하고 용기있는 정치활동가, 재능이 넘치는 작가, 정력적으로 삶을 사랑하는 여인.




루이제 린저가 만든 '니나'는 니나 신드롬을 일으킬 만 했다. 당시 청년들은 니나의 매력에 푹 빠졌다. 1950년부터 1980년대까지 정치적 격동의 시기에 니나가 얼마나 시대적으로 인기를 끌만 했는지 짐작할 만 하다. 올바른 정치와 사회에 대해 소신 있는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는 지성인이 멋져보이던 시절이었으니까.




그러나 지금은? 여전히 니나는 청년들에게 사랑받을만한 인물일까?




니나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면서, 아니 정확히는 루이제의 세계관을 지켜보면서 자주 고개를 저었다. 정치적 탄압, 경제적 빈곤을 겪지 못한 세대라고 비난한다면 할 말은 없다. 어쩔 수 없다. 2022년의 청년에게 니나는 부담스럽다. 지금 청년들은 대의를 위해 현재를 인내하고 희생하는 삶보다 지금을 누리기를 원한다. 방탕하게 살겠다는 게 아니라 불확실한 내일보다는 확실한 오늘의 안녕을 위해 살자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니나의 언니인 마르그리트가 하는 말에 더 공감이 갔다.




"너는 일이 극단까지 치우쳤을 때, 극단까지 가서 네 힘이 부칠 때 행복을 느끼는 것 같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나는 니나가 아닌 것이다. 나에게는 나의 인생이 있다."




"나는 그를 사랑한다. 나의 집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의 달콤한 습관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는 나의 습관이다."




마르그리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경제적 안락함과 안정감에 만족한다. 자신의 파트너인 남편과의 관계에도 만족한다. 니나가 마르그리트에게 남편을 사랑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남편을 습관처럼 사랑한다고 했다. 이 말이 좋았다. 순간의 격정, 들끓는 에너지로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습관처럼 사랑한다는 말에서 그녀가 남편과 나누는 사랑과 신뢰의 크기를 알 수 있었다. 습관을 만들기는 어렵다. 습관이 쌓이면 그 시간과 경험, 노력의 크기는 다른 경험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다. 누군가를 자신의 습관처럼 사랑한다는 것만큼 진실한 사랑이 또 있을까.




마르그리트가 니나와 다른 자신의 삶을 인정하는 부분도 좋았다. 니나의 자유로움, 위태로움, 정열이 그녀를 매력적으로 만들어주는 장치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안정을 추구하면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 위험을 무릎쓰지 않고도 삶의 정수를 맛볼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시련을 경험하지 않고도 삶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다.




어쩌면 니나 신드롬은 스스로 결코 선택하지 않을 길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알고 있다. 니나와 같은 인물은 외부자의 시선으로 볼 때 가장 매력적이다. 정작 니나의 삶을 살라고 하면 누가 기꺼이 선택할 수 있을까? 




마르그리트는 계속해서 니나의 삶을 동경하고 자신의 안정적인 삶을 낮추어본다. 제대로 된 삶이 아니라고 말한다. 슈타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무려 18년간이나 니나를 열렬하게 사랑한다. 삶에 자신을 내던지는 니나를 보면서 자신은 소극적이고 평가한다. 그러나 인생의 마지막에 서서 그는 고백한다.




"10년 전에는 나 자신을 지금만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의 강렬한 감정의 폭발이 니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 대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없었다."




니나를 사랑하는 감정은 니나가 아닌 자기 자신을 향한 것이었다는 것을. 니나의 삶을 통해 자신의 삶을 탐구하는 과정이었다는 것을. 




니나는 그런 그에게 잔혹하게 말한다.




"나는 생명을 가진 모든 것을 사랑해요. 그러나 당신은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은 한 번도 살아본 적이 없으니까요. 당신은 삶을 비켜갔어요. 한번도 모험을 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신은 아무것도 얻지고 못했고 잃지도 않았어요.




나는 당신이 나의 인생을 당신 인생처럼 만들려고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요. 당신의 인생은 마치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 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 같아요. 얼마든지 나를 부박하다고 생각하세요. 아마 삶에 대한 당신의 불안이 삶을 사랑하는 내 방식보다 더 부박할지 몰라요."




제대로 살아본 적도 없는, 불안한 삶이라는 말을 듣고 무너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은 같이 있음으로서 "잘 살고 있다"는 믿음과 기쁨을 확인시켜주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니나는 불편하고, 독선적이고, 잔혹하다. 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모험을 하지 않은 당신, 삶은 당신을 비켜갔다."고 말하는 니나는 정말이지 너무하다. 일요일을 망쳐버리는 재미 없고 어려운 학교 숙제가 문제인 게 아니라, 학교 숙제로 일요일을 망치는 사람의 태도가 문제인 것 아닌가? 학교 숙제를 재미있고 즐겁게 해낼 수는 없는 걸까?




지금 시대는 지루한 하루에도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사람을 원한다. 사소한 경험에도 깨달음을 발견하는 사람,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즐거움을 만들 줄 아는 사람, 마르그리트나 슈타인 같은 사람. 스스로에게 안정과 습관을 선물할 수 있는 사람.




니나의 독선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 중 기억에 남는 문장들이 있다. 고통 속에서 기쁨을 찾는 태도, 개인의 자유를 지지하는 생각이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어린아이들도 가끔 그렇게 해야만 해. 그것을 허락해야만 해. 아이들의 거짓말은 아무나 호기심을 가지고 건드리고 파괴하지 못하도록 아이들이 그들의 삶 위에 펼쳐놓은 베일이야."




"고통의 한 가운데에는 아무리 심한 고통도 닿지 않는 보호 구역이 있어. 그리고 그곳에는 일종의 기쁨이 있어. 나는 그것을 용납이 가져다준 승리의 구역이라고 이름 붙이겠어."




<삶의 한 가운데>를 무려 한 달 동안이나 읽었다. 니나에게 마음을 주지 못해서 매일밤 조금씩 끊어서 읽었다. 300쪽이 넘는 책 한권을 다 읽고도 여전히 나는 니나가 조금은 밉다. 얄미운 멋쟁이 선배 같다. 당당하고 똑똑하고 매력적이지만 가시돋힌 말을 툭툭 내뱉는 차가운 선배.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상처와 절망과 고통으로 뒤범벅이 된 선배. 




니나, 나에게 니나는 연민하기에는 멀고, 동경하기에는 뜨겁다. 어쩌면 이 마음이 니나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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