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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Sep 12. 2022

미운 오리로 살아도 괜찮아

예민하고 고독하고 다른 삶

오랜 시간 미운 오리로 살았다. 아무리 주변을 둘러봐도 나만 달랐다. 친구들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좋아하지 않았고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것에 관심이 없었다. 재미없는 고무줄놀이와 공기놀이, 카드 게임을 꾸역꾸역 견뎌내야 했던 십 대 시절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쓰는 시간이었다. 남들을 따라 하기 바빴던 대학 시절과 사회 초년생 시절은 떠올리기도 싫을 만큼 창피하다. 아무리 따라 해도 나는 그들과 비슷해질 수 없었고 겉도는 내 모습을 감추는 일은 언제나 크고 작은 패배감을 안겨주었다.


종종 친구들은 어릴 때로 돌아가고 싶다는 한다.  말을 가만히 들으며 속으로 말했다. ' 절대 돌아가고 싶지 않은데?' 삼십 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나로 돌아왔다. 나로 살아도 괜찮다는 것은 깨닫는  자그마치 삼십 년이 걸렸다.



나는 왜 이렇게 남들과 어울리지 못할까, 왜 이렇게 재미없는 사람일까 스스로를 자책하던 시기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계기는 거듭된 회피와 외면이었다. 여러 번의 이직 경험은 '언제든 떠나면 된다'는 가뿐한 태도를 갖게 해 주었다. 어차피 스쳐 지나갈 사람들이고 내 환경은 스스로 바꾸면 된다고 생각하고 나자 굳이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 과도한 애씀의 동력이 바닥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맞지 않는 퍼즐처럼 모나고  떨어진 스스로를 인정하려고 노력하던   위로가 되어  책이 있었다. 내향인들의 바이블로 불리는 수전 케인의 <콰이어트>였다.  책을 읽으면서  성향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특정 성향을 강요하는  문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나처럼 스스로를 숨기며 연기하며 살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오랜 억압에서 풀려난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리고 올해, 그 마음에 날개를 달아주는 책을 찾았다. 스콧 베리 카우프만 & 캐롤린 그레고어의 책 <창의성을 타고나다>.


이 책에서 말하는 창의적인 마음의 10가지 작동 원리

1. 상상 놀이

2. 열정

3. 공상

4. 고독

5. 직관

6. 경험에 대한 개방성

7. 마음 챙김

8. 민감성

9. 역경을 기회로 바꾸기

10. 다르게 생각하기


나의 성향

- 현실 세계가 아닌 공상 세계에서 일정 시간을 보낸다. 상담 선생님이 나에게 "삶은 이곳에 있다."라고 말했지만 나는 "삶은 이곳에도, 저곳에도 있다."라고 말했다. 선생님이 말한 이곳은 현실이고, 내가 말한 저곳은 글로 만든 상상의 세계다.

- 좋아하는 무언가에 몰입하고 즐긴다. 꽤 자주 그 몰입의 대상은 비효율적이며 성과도 없다. 그러나 지속적인 몰입이 결과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글쓰기가 그렇다.

- 고독을 좋아하고 혼자서 할 때 성과가 더 좋다. 팀플레이보다 개인플레이가 더 좋지만 생계를 위해 회사를 열심히 다니다 보니 팀 플레이 체질로 반쯤 변했다.

-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예민하다. 특히 청각, 시각, 후각 자극에 예민하다. 유튜브보다 책을 즐겨 보는 이유다. 영상은 자극의 양이 지나치다.

- 남들과 다른 생각 때문에 비난받기도 하지만 다른 생각을 멈추기보다 비난을 감수하는   괴롭다. 종종  글에 악플이 달리지만  악플 때문에  생각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다. 요즘은 오히려 악플이 달리면 즐겁다.  글이 꽤나 괜찮은 수준이 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달라도 괜찮아


 책을 읽으면서 나의 과거를 이해하고 온전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는지 알게 되니  다른 스스로를 자책했던 마음속 응어리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창의성의 10가지 성향  '민감성'가장 위로가 되었다. 예민함 때문에  안에 혀 사는  같아서 불안했는데  예민함이 오히려 창의적 무기가   있다니 얼마나 다행인지.


민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잘 알아차리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무질서한 양상일 뿐인 곳에서 패턴을 보고, 일상생활의 소소함 속에서 의미와 은유를 찾아낸다. 이 같은 유형의 성격이 창의적 표현의 동력이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창의성을 어떤 식으로든 "점과 점을 연결하는 능력"으로 본다면, 민감한 사람들은 연결한 점과 그것들을 연결할 기회가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카우프만이 정의하는 창의성은 <무관해 보이는 개념들을 연결하는 능력>이다. 무관해 보이는 개념들을 연결하려면 멀리 떨어진 각각의 점들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그 안에 담긴 속성을 발견하고 여기에 이야기를 불어넣는 능력이 필요하다. 오랜 시간 주의 깊게 관찰하려면 외부의 소음으로부터 귀를 닫고 내적 작업에 몰입할 시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바로 이 시공간 확보 과정에서 예민하고 불안정하고 부적응자와도 같은 성향이 표출된다.


이 고독한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이야기가 다수에게 받아들여지느냐 아니냐에 따라 괴짜와 천재로 갈린다. 괴짜와 천재의 간극만큼 큰 폭의 불안정을 감내하려면 자신이 만든 이야기에 스스로 열광하고 몰입하는 열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높은 수준의 상상적 과흥분성은 극심한 불면증과 불안, "최종적인 미지의 것", 즉 죽음에 대한 공포와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위대한 미술 작품과 시, 문학 창작으로 이어져 오기도 했다. 자신의 심리 상태를 관찰하고 분석하는 내성, 독자적이고 성찰적인 사고에 몰입하기, 지적인 난제 해결에 집중하는 것은 지적 과흥분성의 일반적인 지표이다. 이 유형의 과흥분성은 호기심, 진리와 지식 추구 욕구, 이론과 분석에 대한 선호, 개념적 통합 (머릿속에서 2개 이상의 개념들이 만나 서로 달라붙어 새로운 개념을 창조하는 과정), 비평, 독서광, 예리한 관찰, 끝까지 파고드는 통찰력 있는 질문 공세 등으로 나타난다. 지적 흥분성은 지능 지수 (IQ)와 다르다. 지능 지수는 전반적인 인지 능력을 다루지만, 지적 흥분성은 지적 세계에 참여하는 것에 대한 애호와 관련되어 있다.



균형 잡기


엉뚱하고 어수선한 괴짜와 탁월한 창의성을 가진 천재 사이 갈림길에 놓인 가장 큰 표석은 '균형 잡기'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공상과 상상놀이를 열정적으로 즐긴다고 하지만 어쨌거나 그들도 현실 세계에서 밥을 먹고 몸을 움직이고 돈을 벌며 살아가야 하는 사회적 존재다. 이쪽과 저쪽, 외면과 내면, 타인과 자아 사이에서 흔들리듯 넘어지지 않는 균형감이 필요하다.


창의적 관찰은 우리 주변의 세계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과 자기 내면의 풍경에 주파수를 맞추는 것 사이의 균형을 요하는 기술이다. 지금 이 순간을 아무 판단 없이 집중해서 인식하는 마음 챙김과 마음 방랑 사이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삼십 대가 되어 비로소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게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언제 나를 드러내고 언제 슬쩍 감춰둘지 판단할 줄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십 대에는 세상을 나에게 억지로 맞추려다 엇나갔고 이십 대에는 세상에 나를 억지로 끼워 맞추다 스스로 무너졌다면 삼십 대에는 적절히 몸을 틀어 맞춰주는 척을 할 줄 알게 된 것이다.




강점을 이용하는 법


이 책에서 HSP (Highly Sensitive Person)라는 개념을 접했을 때 비로소 백조를 만난 미운 오리의 안도감을 느꼈다. HSP 정도를 측정하는 27개의 문항 중 24개가 책에 나와 있다. 24개의 질문에 나는 모두 '매우 그렇다'는 답을 했다.


<기질적 민감성>

1. 시끄러운 소음이나 무질서한 장면처럼 강한 자극에 신경이 쓰이는가?

2. 주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나고 있을 때 불쾌한 흥분 상태가 되는가?

3. 시끄러운 소음에 불편함을 느끼는가?

4. 밝은 빛, 지독한 냄새, 거친 천, 가까이서 들리는 사이렌 소리 같은 것들에 쉽게 당황하는가?

5. 강한 감각 자극에 쉽게 압도되는가?

6. 한 번에 많은 일이 벌어지면 불쾌해지는가?

7. 쉽게 놀라는가?

8. 짧은 시간 내에 처리할 일이 많을 때 낭패감을 느끼는가?

9. 이따금 신경이 너무 곤두서서 잠시 혼자 있을 시간이 필요한가?

10. 삶에 변화가 생기면 동요하는가?

11. 분주한 나날을 보낼 때 침대 속이나 어두운 방, 그 외에 자극에서 벗어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공간으로 물러나 있고 싶어 지는가?

12. 불쾌하거나 난처한 상황을 피할 수 있도록 생활을 정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가?

13.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맡게 되면 짜증이 나는가?

14. 경쟁을 해야 하거나 누군가의 감독을 받으며 과제를 수행해야 할 경우, 긴장되거나 떨려서 평소보다 안 좋은 성적을 내는가?

15. 폭력적인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은 으레 피하는가?

16. 다른 사람의 기분에 영향을 받는가?

17. 카페인의 효과에 특별히 민감한가?

18. 허기가 지면 그 영향으로 집중력이 떨어지거나 우울해지는가?

19. 통증에 한층 민감한 편인가?


<풍요로운 내면 생활>

20. 은은하거나 미묘한 향기, 맛, 소리, 예술 작품 등을 감지하고 즐기는가?

21. 미술품이나 음악에 깊이 감동받는가?

22. 주위 환경의 세세한 부분을 의식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23. 풍요롭고 복합적인 내면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가?

24. 사람들이 어떤 물리적 환경에서 불편해할 때, 한층 편안한 환경으로 만들어 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조명이나 좌석 조정 등) 잘 아는 편인가?


이미 민감하게 타고났고 이것을 바꿀 수는 없다. 민감성을 강점으로 받아들이고 잘 활용하면 된다.


민감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놓치는 주변의 사소한 것들을 잘 알아차리고, 다른 이들에게는 그저 무질서한 양상일 뿐인 곳에서 패턴을 보고, 일상생활의 소소함 속에서 의미와 은유를 찾아낸다. 이 같은 유형의 성격이 창의적 표현의 동력이 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창의성을 어떤 식으로든 "점과 점을 연결하는 능력"으로 본다면, 민감한 사람들은 연결한 점과 그것들을 연결할 기회가 더 많은 세상을 경험하고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나에게는 글쓰기가 민감성의 장점을 극대화하는 활동이다. 글쓰기는 고독하게 혼자서 외부 세계와 내면세계를 탐구하며 얻은 생각을 표출하는 행위다. 글쓰기는 고도의 몰입을 필요로 하며 때로는 기존의 체계를 전복하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이 과정을 진심으로 사랑해야 지속할 수 있다.


매우 민감한 사람은 이 같은 통찰과 관찰 내용을 표현하고 공유해야 할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는 탓에, 예술 창작은 단순한 열정이 아니라 필연이기도 하다.




진짜 타고나는 것은 창의성이 아니다


책을 다 읽고 난 후 <창의성을 타고나다>는 제목이 어딘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300쪽 내내 이 책이 말하는 창의성의 본질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타고나는 것은 창의성 그 자체가 아니라 창의성과 밀접한 연관성을 보이는 마음과 기질이다. 공상과 고독을 즐기는 성향, 민감성, 남들과 다른 생각을 타고났다고 해서 모두가 창의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열정을 쏟을 대상을 정했으면 꾸준히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적 발명이든, 글쓰기든, 영화이든 모두 똑같다.


창의적인 천재들은 여러 다양한 아이디어와 프로젝트에 동시에 몰두한다. 한층 더 중요한 요인은 그들의 어마어마한 생산력이다. 창작자는 창작을 할 뿐이다, 계속해서 끊임없이. 실제로 사이먼턴은 창의적 아이디어의 질이 그 양과 비례 관계에 있음을 알아냈다.


타고난 기질을 강점으로 만들고 창의적 성과를 내려면 애호하는 분야에서 지치지 않고 꾸준히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한다. 진짜 타고나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능력을 발휘할 때까지 지치지 않고 타오르는 마음이다.


혁신가들은 다르게 생각하려고 노력하는 데 50퍼센트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새로운 연관성을 찾아내기 위해 꾸준히 애쓴 사람들이 실제로 다르게 생각하는 데 성공을 거뒀다. 즉, 단지 노력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는 뜻이다.


에디슨은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했지만, 그의 몇 안 되는 성공작이 워낙 대단해서 기술 역사상 다른 모든 발명가들의 성과를 능가할 정도이다.


이 마지막 부분을 읽고 12살의 내가 떠올랐다. ebs 어린이 극본 공모전에 도전해서 실패를 맛본 후 "내게는 글로 먹고 살 재능은 없다"라며 일치감치 손을 털고 착실히 입시 공부에 몰두했다. 대학 입시와 취직 준비, 회사 생활을 이어오며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재능 없음"을 이유로 외면했다. 12살의 내가 한 번의 실패에 굴하지 않고 계속 극본을 썼다면 지금 나는 드라마 작가가 되었을까? 결과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한 번의 실패는 내게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 절대 알려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나에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공모전 탈락, 출간 도서의 처참한 흥행 실패 따위에 아랑곳하지 말고 계속 쓰면 된다. 앞으로도 성공보다 실패를 더 많이 경험하겠지만, 간간히 괜찮은 결과를 맛볼 것이고 어쩌면 그중 몇 개는 성공을 거둘지도 모른다. 그 과정을 깊이 사랑하고 몰입할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것이 재능의 유무보다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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