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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ul 07. 2019

살구를 오래오래 먹는 법

살구잼으로 요리하기

살구는 한 계절만 왔다 가는 과일이다. 자두나 복숭아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살구만의 맛을 느끼려면 부지런해져야 한다. 짧게 머무르는 재료를 오래 두고 먹으려면 말리거나, 절여 두어야 한다. 나는 설탕에 절인 후 졸여서 살구를 저장해 두기로 했다. 살구잼을 만드는 것이다.

살구는 껍질을 제거해야 해서, 다른 과일보다 번거롭다. 딸기잼을 만들 때는 딸기를 씻고 꼭지만 따면 되는데, 살구는 반으로 갈라 씨를 빼내고, 껍질을 벗겨줘야 한다. 서서 하기에는 힘들어서,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살구를 손질했다. 어릴 때 엄마가 왜 텔레비전 앞에서 콩나물을 다듬는지 몰랐는데, 단순 작업을 할 때에는 그만한 게 없다.

퇴근하고 회사 근처 과일 가게에서 살구 6천 원어치를 샀다. 집 앞 초록마을에는 살구 5개에 7천 원인데, 여기는 대략 1.5킬로의 살구가 6천 원이라니. 회사에서부터 이고 지고 올 만 했다. 그때만 해도 이 살구들이 얼마큼의 잼이 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수제잼은 유통기한이 짧아서, 냉장고에서 2주 정도까지 보관할 수 있다. 2주짜리의 잼을 만들어야 할 텐데 싸다고 욕심껏 샀더니 고된 노동에 엄청난 양의 잼을 얻었다.


살구잼 재료
살구 1kg (씨와 껍질 제거한 양), 설탕 450g, 레몬즙 1큰술


살구는 사실 그렇게 단 과일은 아니다. 달기로 치면 복숭아가 더 달다. 그렇다고 신맛이 중심이 되지도 않는다. 적당히 달면서도 새콤한 맛이 나는데, 단정한 느낌이 들어서 좋다. 그런 살구가 설탕과 함께 졸여지면, 살구 본연의 단맛에 설탕까지 더해져 꽤 단 맛이 난다.


빵에 잼을 발라서



잼을 먹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은 빵에 발라 먹는 것이다. 회사 근처 빵집에서 브리오슈 식빵을 샀다. 버터 함량이 높은 부드러운 브리오슈 식빵 위에 살구잼을 바르고, 그 위에 청포도를 얹었다. 살구와 청포도의 색감이 의외로 잘 어울린다. 설탕 함량을 높여서 만든 살구잼이라, 상쾌한 느낌의 재료와 함께 먹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청포도와 궁합이 잘 맞았다.


잼으로 드레싱을

잼드레싱을 만들고 난 이후부터는 드레싱을 사지 않게 되었다. 올리브 오일과 잼만 있으면 그때그때 원하는 양만큼 드레싱을 만들 수 있다. 비율은 올리브 오일 2 : 잼 1


꼭 잼이 아니어도 과일청도 가능하다. 아직 다른 재료들은 시도해 보지 못했지만 올리브 오일에 산도가 있는 다양한 재료를 섞어서 드레싱으로 먹는다고 한다.


올리브 오일과 잼을 작은 거품기로 저어주면 금방 섞인다. 이 과정을 비네그레트 (vinaigrette) 라고 한다. 정통 레시피는 올리브 오일에 레몬주스나 식초, 소금, 후추를 섞어서 만든다.


내가 시도해본 조합 중 가장 만족스러운 것은 올리브 오일과 패션프루츠청이었다. 유자청도 맛있다. 잼을 만들어두면, 한동안 잼드레싱으로 샐러드를 먹게 된다.


살구잼 롤케이크

롤케이크는 크림 장식을 할 필요가 없어서 좋다. 한창 케이크를 배우러 다닐 때, 생크림 아이싱이 너무 어려워서, 케이크는 만들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뭐든 연습하면 어느 정도 늘겠지만, 혼자 사는데 연습할 때마다 나오는 케이크를 처치하기도 곤란해서, 쿠키를 더 자주 만들게 되었다. 롤케이크는 그런 면에서 효율적인 메뉴다. 시트를 굽고, 자를 필요도 없다. 시트 위에 크림이던 잼이던 발라주고 도로로록 말면 끝. 게다가 이렇게 잼을 만들어 둔 날에는 수고스럽게 크림을 만들지 않아도 된다.


취미가 베이킹인 사람 중에 나처럼 '쉽게 만들 수 있는 레시피'에 집착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케이크도, 쿠키도 만들고 싶지만 가장 최소한의 공정과 재료로 만들 궁리를 한다. 뭐든 쉽고 편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높은 장벽은 성취감을 주기도 하지만, 자유롭게 왔다 갔다 이런저런 시도들을 하기가 어렵게 만든다.

완두콩 잼, 토마토잼, 살구잼까지 요즘 잼 만드는 일이 재밌어졌다. 잼은 생각보다 활용도가 높다. 살구를 그대로 먹는 것보다 보존기간도 길다.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는 이렇게 재료를 저장하는 다양한 방식들을 '필요에 의해서' 사용하곤 했다. 지금은 냉장고가 그 기능들을 대체하지만, 우리의 미각은 이전을 추억하고 싶어 한다. 신선한 재료들을 그냥 먹을 수도 있는데, 꼭 이렇게 절이고, 말리고, 얼려서 먹고 싶어 질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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