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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Oct 01. 2022

불안과 조급의 쳇바퀴를 타고 노는 법

세 번째 이직 준비


2021년 8월 20일


불안하다는 것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답도 없고 대안도 없을 때, 무엇이 더 나은지 알 수 없지만 걸음을 멈출 수 없을 때, 불안하다.


조급하다는 것은 답과 대안, 그리고 더 나아보이는 선택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불안함 다음 단계이다.


불안과 조급함의 여정은 이랬다. 불안함을 뚫고 꾸준히 뭔가를 하다보니 희미하지만 몇 가지 선택지가 눈에 들어왔다. 주어진 선택지들을 놓치지 않고 어깨에 메고 계속 걸어나간다. 짐이 무거워질수록 걸음이 느려졌다. 덜어내지 않으면 무게 때문에 뒤쳐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평생 불안함과 조급함을 번갈아 느끼며 살아왔다. 이제 됐구나 싶으면 어디선가 새로운 불안이 나타났고, 불안에 조금 익숙해질 때쯤 조급함이 찾아왔다. 조급함을 껴안은 채 한참을 걷다보면 새로운 문이 눈 앞에 들어왔다. 그 문을 열면 환한 빛이 쏟아졌다. 잠시 후 희미했던 초점이 맞춰지고 빛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새로운 길이 나왔다. 속는 것도 반복되면 익숙해질만도 한데 매번 깜빡 속고만다.



/

그릇을 넓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불안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안정적인 삶을 누리고 싶었다. 그래서 조금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걷는 것만 같았다. 가만히 있으면 밑으로 내려갈 것 같아서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걸어 올라갔다. 제자리였다. 거꾸로 뛰어올라갔다. 그제서야 올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뛰어올라가는 마음처럼 내 마음 그릇에 뭔가를 계속 채우면 불안함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함께하는 독학클럽>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하던 도중, 혜진님의 이야기를 듣고 머리가 띵- 울렸다.


그릇에 뭔가를 더 채우는 것보다 그릇을 넓히는 게 낫지 않을까요? 깊이 파기 위해 넓게 파기 시작했다는 스피노자의 말처럼요.


생각해보면 나는 애초에 그릇을 넓히는 데 더 무게를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회사 밖에서 나를 찾으려는 노력은 어떻게 그릇을 넓힐 수 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었다.


스타트업 이직을 위해 달리던 한 달은 OOOO 최종 면접 불합격을 신호로 끝이 났다. 이 사인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좁은 그릇이 터지도록 채우는 것만이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릇을 넓히면서 동시에 이것저것 채우며 내 길을 만들어 가는 것이 나다운 성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한달동안의 고군분투 끝에

나는 지금 서 있는 곳에서 계속 해보기를 선택했다.


이직도, 독립도, 창업도 아닌 지금의 자리에서 더 걸어가보는 것.

불안과 조급함의 파도를 신나게 타보는 것.


포기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먼저 소유해야 한다. 가진 것 없이는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다. 이긴 적도 없으면서 이기기를 포기하면 처음 시작했던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 셈인데, 그것이 바로 실패자인 것이다. 정체성을 포기하기 전에, 자신을 위해 먼저 그것을 만들어놓아야 한다. 자아를 잃기 전에 당신의 자아를 발달시켜놓아야 한다.
- <아직도 가야 할 길> 스캇 펙


지금 내가 한 선택은 '포기'가 아니다. 포기할 무엇가를 아직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긴 적이 없으므로 이기기를 포기할 수 없다. 가진 것, 이뤄낸 것이 없으므로 놓을 것이 없다. 그동안 회사에서 나는 나의 정체성을 포기했다고 생각했다. 회사의 틀에 나를 맞췄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아직 나는 포기할 정체성을 세우지 못했다.


'포기'할 것이 없기 때문에 처음 시작한 이 지점에서 '용기'를 내기로 했다.



/

용기를 내기 위한

스몰 스텝



그릇을 넓히는 법   

다른 인생을 받아들인다. <함께하는 독학클럽> 인터뷰를 지속하며 다른 삶을 배워나간다.

갈등을 피하지 않는다.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피하며 그들을 이해했다고 스스로 속이지 않을 것이다. 부딪히며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알아낼 것이다.

새로운 환경에 나를 둔다. 한달에 두세 건 정도 글쓰기, 강의, 독서모임 진행 등 제안이 온다. 회사를 다니고 있다는 이유로, 나와 가치관이 맞지 않다는 이유로 거절한 프로젝트가 꽤 있었다. 앞으로는 물리적인 시간의 한계 직전까지 다 뛰어들어 볼 것이다.


그릇 안을 채우는 법   

직무 공부를 계속한다. SQL, 데이터, 숫자 감각 강의를 듣고 내용을 정리해서 공식적으로 공유한다.

글쓰기를 계속한다. 출간 작가치고 글쓰기 실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히려 글쓰기가 막막하기도 하다. 좋은 글을 보여주고 싶어서 글쓰기를 미루게 된다. 그럴수록 더 많이 쓴다.

회사에서는 가장 좋은 에너지로 몰입한다.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이 지루하다고 느끼면 내 인생 자체가 지루해진다. 일단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을 열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나는 어디로 가고 싶은 걸까.


누가 알려주면 좋겠다는 마음과 기어이 스스로 찾아내겠다는 마음이 동시에 든다. 끝은 있을까? 끝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꾸만 "끝이 있다고 말하라고!" 누구든 붙잡고 말하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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