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한잔으로 내 취향 찾는 법

by 단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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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차 한 잔

아침을 여는 나만의 리추얼


아침마다 반복하는 루틴이 있다. 눈을 뜨자마자 이불을 개고 양치를 하고 물 한잔을 마신다. 유튜브로 15분 요가 영상을 따라 하고 한 줄 일기를 쓴다. 그리고 하루를 시작할 차를 고른다. 아침의 기분, 날씨, 몸 상태, 스케줄을 생각하며 신중하게 오늘의 차를 고르고 전기 주전자에 물을 올린다. 물이 끓는 동안 <차 시음 노트>에 마실 차의 브랜드와 이름을 적고 티백 봉지를 잘라 붙인다. 어릴 적 영화 티켓을 모아 스크랩북에 붙이듯이, 파스텔톤의 마스킹 테이프로 정성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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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차와 비건 과자가 있는 책방> 주인을 꿈꾸며 비건 베이킹과 티 소믈리에 자격증 공부를 했었다. 정말 가게를 차리려고 부동산 어플로 매물도 알아봤는데 준비하면 할수록 책방 주인으로서 감당해야 할 경제적, 육체적 고단함을 알게 되었고 고민 끝에 결국 행복한 소비자로 남기로 했다. 지금은 베이킹과 차를 마시는 일을 취미로 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아침 찻자리에는 내가 만든 과자가 함께한다. 주로 쿠키나 케이크와 같은 비건 디저트를 만든다. 가끔 가게에서 사 온 과자를 먹기도 하고, 과일이나 담백한 식사빵과 함께 차를 마시는 날도 있다.


<차 시음노트>에는 차의 맛과 향을 적는다. 그 아래에는 차와 함께 페어링 한 음식을 적는다. 지난주에는 구수하고 부드러운 다즐링에 진한 피스타치오 초콜릿 쿠키를 페어링 했다. 아침을 깨우는 강한 몰티향의 블랙퍼스트티에는 펑리수를 곁들여 마시기도 했다. 디저트를 한 입 베어 먹으며 후루룩 차를 마시면서 가만히 생각해 본다. "이 차는 강한 아쌈과 아프리카 홍차라 달큼함이 강한 펑리수와 잘 어울리는군, 진한 초콜릿 케이크와도 잘 어울리겠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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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래에는 이 차를 소개할 한 줄을 적는다.


다만 프레르의 다즐링 - 여행 갈 때 챙기고 싶은 차
타이푸의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 부담 없이 시작하는 아침 차


이렇게 매일 아침 차 한잔과 티푸드를 기록하면서 달라진 것이 있다. 이전에는 무조건 더 많은 차를 맛보고 싶은 욕심에 유통기한 내에 다 먹지도 못할 차를 새롭게 사 모으곤 했다. 시음 노트를 쓰다 보니 내가 어떤 차를 좋아하는지 분명히 알게 되었다. 매일의 기록을 쌓으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취향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이제는 단지 새롭다는 이유로 새로운 차를 사지 않는다. 내가 좋아하는 요소가 70% 있고, 30%의 새로움이 있는 차를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산다.


집에 차가 많이 남았을 때는 이 차와 저 차를 섞어 내 마음대로 블렌딩해 마시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지인에게 선물 받은 말린 레몬 버베나와 하동 홍차를 섞어 마셔보기도 했다. 다양하게 조합하다 보니 어떤 차와 어떤 재료가 잘 어울리는지도 알게 되었다.


230107_하다님_레몬버베나홍차.jpg 선물받은 레몬버베나 말린허브와 하동 홍차를 블렌딩했다.


이게 기록의 쓸모 아닐까? 기록은 나의 세계를 깊고 단단하게 쌓아 올리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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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계속 바뀐다

내가 그렇듯이


나는 계속 변한다. 자연스럽게 입맛도 차 취향도 계속 바뀐다. 차 공부를 시작할 무렵에는 화려한 가향차를 좋아했다. 향은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풍부하게 자극해 주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하루에도 대여섯 잔의 차를 마시다 보니 점점 강한 향의 가향차보다는 깔끔한 스트레이트티나 향이 가미되지 않은 블렌딩 티가 더 좋아졌다. 요즘에는 가향차, 스트레이트티, 블렌딩티를 구분하지 않고 좋아하는 브랜드를 정하고 그 브랜드의 차를 다양하게 마셔보고 있다.


이렇게 차를 마시면서 헤매지 않고 쉽게 내 취향의 차를 찾는 법을 알게 되었다. 오늘은 그 방법을 공유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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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맞는

차를 고르는 법



카페인 YES or NO


카페인에 민감하다면 허브차를 추천한다. 홍차/녹차/우롱차/보이차/백차에는 카페인이 들어있다. 체질이 바뀌어서 몇년 전에는 하루에 아메리카노 3잔을 마시고도 잠을 잘 잤지만 이제는 디카페인 커피만 마시는 사람이 되었다. 다행히 차는 커피보다는 카페인 강도가 약하다. 아침에는 홍차나 녹차를 마시고 저녁에는 허브차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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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브차를 마시고 싶다면 아래의 차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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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만날 수 있는 홍차


카페인이 괜찮다면 홍차부터 시작해 보자. 홍차는 웬만한 카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차다.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English Breakfast

얼그레이 Earl Grey

아쌈 Assam

다즐링 Darjeeling

실론 Ceylon


카페에서 이 차들을 한 번쯤 봤을 거다. 모두 홍차다. 무엇이든 처음에는 익숙한 것부터 시작해야 편안하게 즐길 수 있다. 리추얼 티tea로 홍차를 골랐다면 아래의 브랜드를 추천한다.


타바론 Tavalon

스티븐 스미스티 Steven Smith


이 두 브랜드는 티백 15개 기준으로 20,000 ~ 29,000원 정도로 저렴한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재료에 꽤 신경 쓰는 카페에서 주로 선택하는 브랜드라 의외로 마셔봤을 확률이 높아서 추천한다. 익숙하면서도 호불호가 없이 무난하다. 차를 추천할 때 마리아주 프레르, 다만 프레르와 같이 역사가 깊은 유럽의 브랜드보다 타바론, 스미스티, 리쉬티와 같은 미국 브랜드를 추천한다. 유럽의 차는 향을 풍부하게 사용하는 편이라 취향을 타기 때문에 어느 정도 차에 대한 취향을 알게 된 후 도전하기 좋다.



어쩌면 가장 익숙한 녹차


우리나라는 최고급 녹차 생산지다. 질 좋은 녹차를 생산하는데 비해 대중화가 덜 되었다. 차 농가의 규모가 작고 땅 값도 인건비도 비싸다 보니 가격이 높은 데다가 마케팅이나 브랜딩을 할 자본과 인력이 부족해서다. 그래도 요즘은 지자체에서 적극적으로 차를 홍보하기도 하고 국내 차를 세련되게 브랜딩해 소개하는 브랜드도 생겨나는 분위기다.



하동군에서 야심 차게 기획한 프로젝트인 하동 차편

스크린샷 2023-01-18 오후 10.35.04.png 사진 출처: 하동차편 인스타그램 @hadong_teaket



동아시아의 차를 소개하는 맥파이앤타이거

스크린샷 2023-01-18 오후 10.37.06.png 사진 출처: 맥파이앤타이거 인스타그램 @magpie.and.tiger


우리가 기억하는 가장 익숙한 녹차는 동서 식품의 현미 녹차 티백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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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 차도 부담 없이 즐기기에는 좋지만 우리는 지금 <나의 차 취향>을 찾아 나서기로 했으니 목적에 맞게 적당히 맛있으면서도 새롭고 너무 비싸지 않은 차를 소개하겠다. 연우제다의 현미녹차 삼각 티백이다. 연우제다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녹차는 대중적인 삼각티백 녹차부터 최고급 특우전까지 다양하다. 우전차도 좋지만 취향을 찾는 일이 꼭 고급 취향을 만드는 것일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삼각티백 하동녹차로도 충분히 우리나라 녹차 특유의 고소하고 산뜻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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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스텝, 우롱차/보이차/백차


홍차와 녹차에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차를 즐긴다'는 감각이 생겼다면 우롱차, 보이차, 백차를 추천한다. 이 세 종류의 차는 자신만의 색이 분명하다.


우롱차 - 화려하고 다채로운 향의 세계. 어떤 우롱차는 화장품 같기도 하고 어떤 우롱차는 보이차나 홍차 같기도 하다.

보이차 - 오래된 도서관에서 낡은 책을 펼칠 때의 냄새. #빈티지 #쿰쿰함

백차 -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가공된 차. 첫 향은 가을 낙엽이지만 마셔보면 봄의 새싹처럼 상쾌하다.


내가 마셔보고 좋았던 차를 소개한다.


우롱차

밀키 우롱: 우유를 넣지 않았으나 우유향이 나는 은은한 매력의 우롱차. 여러 브랜드에서 <밀키 우롱>, 또는 <금훤>이라는 이름으로 판매한다. 추천 브랜드는 <크리스틴 다트너>, <공부차>

피치 우롱: <타바론> 브랜드의 피치 우롱은 여름에 아이스티로 마시기를 추천한다. 갈증을 한 방에 해소하는 상큼함이 매력적이다.


보이차

이효리와 이상순이 예능에서 보이차를 마신 이후 보이차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이 커졌다.

보이차는 가격의 스펙트럼이 어마어마하게 넓지만 역시 부담이 없어야 오래 즐길 수 있다.

이왕 넥스트 스텝을 경험하기로 했으나 이번에는 티백이 아닌 잎차로 추천해 보겠다. 맥파이앤타이거의 <보이 숙차>와 <보이생차> 두 가지를 모두 비교해 보며 마셔보면 좋다. 보이차는 가공 방식에 따라 숙차와 생차로 나뉜다. 숙차가 좀 더 진한 한방차 느낌이 나고 숙차는 부드럽고 가볍다. 소화 능력이 약다면 생차보다는 숙차를 권하고 싶다.


백차

내가 가장 좋아하는 차다. 첫 향은 가을 낙엽의 쓸쓸함이 느껴지는데 막상 한 모금 마셔보면 봄의 새싹이 지닌 생명력과 설렘을 가득 품고 있어서다.

<차차>의 티 큐레이션 박스 <백차 차차함 ; 그 여름밤>을 추천한다. 백모단, 백아차, 17수미 세 종류의 차가 20g씩 들어있다. '우아한 찻자리'라는 단어가 꼭 어울리는 차다.

스크린샷 2023-01-18 오후 11.13.03.png 사진 출처: 차차 웹사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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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 없이 맛있게

차 우리는 법


본격적으로 차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가장 큰 충격은 '이제까지 차를 잘못 마시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카페에서 얼그레이를 주문하면 티백을 머그에 넣은 채로 준다. 간간히 모래시계와 함께 1분 후에 티백을 빼라고 알려주는 카페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다. 마시다 보면 티백을 빼야 할 시간을 놓치고 지나치게 우러난 차 맛은 '이게 맛있는 건가? 너무 쓴데?' 알쏭달쏭한 상태가 된다.


요즘은 차 패키지에 [90도 - 3g - 3분] 이렇게 차 우림법을 적어주기도 하지만 차 입문자에게 차를 맛있게 우리는 일은 어렵다. 차를 오래 배우고 마셔온 나조차도 바쁠 때는 끓인 물을 온도를 재지도 않고 대충 부어버리거나 시간을 놓쳐서 과하게 쓴 차를 마시기도 한다.


차를 잘 몰라도, 바쁘고 정신없어도 맛있게 차를 마시기 위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모든 차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반반 우림법이다.


티포트에 티스푼으로 차를 한 스푼 넣고

전기포트로 팔팔 끓인 물 반 + 미지근한 물 반을 붓는다

3분~5분이 지나면 티백을 빼거나 찻잎을 걸러서 마신다. 더 진하게 우리고 싶다면 좀 더 두었다가 마셔도 된다.


이 방법으로 우리면 95도, 90도, 80도를 딱 맞춰 찻물 온도를 조절할 필요가 없다. 물 온도가 높지 않아서 혹시나 깜빡해도 지나치게 우려 지지 않는다. 높은 온도에 우려야 하는 홍차나 보이차는 3분 정도 더 우려서 마시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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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차를

골라 맛보고 싶다면


다양한 차를 경험해보고 싶다면 <골라 담기> 구매를 추천한다. 한 박스에 15~20개의 티백이 든 차를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종류의 차를 소량씩 체험해 볼 수 있는 컬렉션 박스를 구매해 보는 거다. 타바론, 스티브스미스티를 비롯한 대부분의 차 브랜드에서 <버라이어티>라는 이름으로 선물용 세트를 판매한다. 각기 다른 종류의 15~20개 티백으로 구성된 세트다.


또 한 가지, 내가 즐겨 사용하는 방법은 티 전문 쇼핑몰에서 맛보기 티백을 소량구매하는 것이다. <아망티> 사이트 검색창에 <맛보기>를 검색하면 다양한 티 브랜드의 티백을 소량씩 (3개 정도) 구매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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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한잔만큼은

나를 알게 되었다


매일 반복되는 리추얼을 하다 보면 애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내가 어떤 맛을 좋아하는지, 어떤 향에 끌리는지, 미세하게 매일의 취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알 수 있다. 내가 나를 안다는 감각은 나의 하루를 내가 주도할 수 있다는 단단한 자신감으로 연결된다.


혹시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몸과 마음이 지쳤다면, 정신없이 바쁜 하루 속에서 나를 돌아볼 작은 틈을 만들고 싶다면, 차 한 잔을 마시며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 차와 잘 어울리는 디저트를 곁들인다면 달콤한 든든함까지 느낄 수 있다.


이 글을 읽으며 어떤 차를 마셔보고 싶은지 즐거운 상상을 했다면 이미 시작되었다. 차 한잔만큼 나를 알아가는 즐거움, 이제 당신의 경험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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