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한정 티(tea), 루피시아 LANIKAI
그 때의 그 바다가 마지막일 줄 몰랐다.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일 년에 한 번쯤, 남들처럼 휴가를 내고 비행기를 타고 이국의 바다를 마음껏 볼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몇달 전만해도 코로나나 잠잠해지면 곧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거라고 믿었으니까.
코로나가 확산되기 직전, 올해 1월 말에 하와이에 다녀왔다. 신혼여행으로 가장 많이 가는 곳이 하와이와 몰디브다.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온 친구의 강력한 권유로, 나도 몰디브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나보다 늦게 결혼한 친언니는 하와이를 다녀왔는데, 기대하는 모든 것이 있는 곳이라며 하와이는 꼭 가봐야 한단다. 그 말을 증명하듯 언니는 결혼 기념일 여행으로 또 하와이에 다녀왔다.
남편이 2년 반의 해외 근무를 마칠 무렵 회사에서 복귀 휴가 비용을 지원해준다고 했다. 휴가를 어디로 가고 싶냐는 남편의 물음에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남의 돈으로 가는 거라면, 더더욱 하와이지!"
누군가는 와이키키 해변을 큰 해운대 바다라고 했다. 여행 좀 다녀본 이의 은근한 자랑일 것이다. 직접 가본 와이키키 바다는 애니메이션 '모아나'의 풍경이 떠올랐다. 해변가의 상업적인 가게들이 바다를 침범한 것만 같아 아쉬웠지만, 상점가를 등지고 바라본 저 먼 바다의 수평선 끝은 아득하게 아름다웠다. 뜨거운 태양에 반짝이는 물결, 파도가 일렁이는 수평선에 늘어선 크고 작은 섬들. 우거진 섬의 숲에는 모아나 가족들이 살 것만 같았다.
여행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평화로운 자연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기 위해 여행을 간다. 도시의 시간과 다른 시간으로 움직이는 듯한 자연을 보며, 아웅다웅 부대끼며 산다는 게 별 것 있나 싶다. 한없이 그렇게 시간이 멈추길 바란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바람을 느끼고, 바다의 소리를 느끼고, 카페의 북적이는 움직임을 느낀다. 바다를 보며 차 한잔 마시는 즐거움이 아쉬워 자연을 보러가도 카페를 찾아가게 된다.
여행보다는 일상을 살자고, 소비하는 여행보다는 생각하는 여행을 하자고 마음 먹는데, 막상 여행을 가면 꼭 사게 되는 것이 있다. 그 지역에서만 판매되는 차(tea)다. 하와이에서는 티 브랜드 루피시아가 '하와이 한정 블렌딩 티'를 판매한다.
제주도 스타벅스에만 있는 메뉴처럼, 루피시아도 하와이에서만 판매되는 메뉴가 있는 셈이다. '하와이'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인 열대과일과 바다를 중심 주제로 표현했다. 그 중에 눈에 들어온 것은 틴 케이스에 파란 바다와 물고기가 그려진 <LANIKAI>.
A peach, orange and mango flavored black tea. Its sweet and fruity flavor goes well with milk.
한 줄의 짧은 설명으로 추론하자면 분명 가벼운 열대과일 홍차인데, 밀크티로 마시면 어울린다고? 샘플 틴케이스를 열어 향을 맡아보니 예상치 못한 향기가 느껴졌다.
"이건 바다 냄새잖아!"
인공향을 첨가한 건지, 과일향의 조합만으로 바다 향을 만든 건지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알 수 없지만 분명 이건 바다의 향이다. (루피시아는 블렌딩 재료에 대한 안내가 부족해서 아쉽다. 브랜드의 자산이라 공개할 수 없겠지만, 리쉬티나 스미스티처럼 시원시원하게 재료의 배합을 공개하는 티브랜드도 있어서 이럴 때는 괜히 야속하다. 힌트라도 좀 주지.)
여행에서 돌아와 지난 바다를 추억하며 LANIKAI를 다시 우려 마셨다. 살 때는 보지 못했는데, 블렌딩 재료 중에 하늘색 별사탕이 있었다. 수레국화 꽃잎도 보인다. 푸른 바다의 이미지를 풍부하게 전달하기 위해 추가된 재료일 것이다. 우린 차에서도 달콤한 바다의 향기가 난다. 복숭아, 오렌지, 망고라는 특징이 다른 세 가지 과일의 조합이 달콤한 바다 향기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것 같기도 하다.
먼 바다를 향기로 기억해본다. 오감 중 가장 오래 기억되는 감각은 후각이라고 한다. 우리는 향기로 지난 사랑을 기억하기도 하고, 오랜 고통을 마주하기도 한다. 뜻하지 않은 순간에 향기가 길어올린 기억을 마주하고 당황한 경험이 있다면 알 것이다. 향기가 얼마나 강력한 기억 매체인지. 이제 다시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간다고 해도 시간이 많이 흐른 뒤일 것이다. 한 세대 안에서 이렇게 급격하게 문화와 상식이 바뀐 적이 있었을까.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너무도 빠르고 예측 불가능해서 맞추어 따라가기도 벅차다. 남에게 민폐가 되지 않으면 다행이다.
생각해보면 나이대별로 다른 문화와 상식 안에서 살아왔다. 10대를 보낸 학교, 20대를 보낸 대학과 첫 직장, 30대의 회사 생활은 모두 다르다. 맞고 틀린 것들이 휙휙 바뀌어간다. 예전이 그립다거나, 언제가 좋았다거나 하는 말들을 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소속된 곳이 바뀌면 스스로도 바꾸어야 하는데 매번 맞을 수을 없으니 억지로 끼워맞추며 보낸 시간도 있었다. 잘 맞는 사람들과 들뜬 마음으로 보내던 시기도 있었다.
살면서 점점 더 나아지기를 바란다. 그러기위해 애쓰며 살고있다. 2년 반을 떨어져 지낸 남편과 나는 일주일간의 하와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새로운 일상을 시작했다. 어느새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해졌지만 다시 두 사람의 리듬을 맞추어야 했다. 거기다 갑작스런 코로나 확산으로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고 모든 시간을 둘이서만 보내게 되었다.
오랜만의 밀도있는 신혼생활을 보내면서 우리는 떨어져 살던 2년 반의 기억을 각자의 머릿 속에서 지웠다. 남편은 50도가 넘는 사막을 잊었고, 나는 홀로 이겨내야 했던 고독을 잊었다. 소파에 누워 저녁 메뉴를 고민하고, 요리를 하고, 청소하고 빨래하는 일상이 재미있다는 것을 기억해냈다. 더 돈을 벌고, 더 많이 여행을 가고, 맛있는 것을 더 먹고, 많이 누릴 수 있다고 해도 떨어져 사는 것보다 지금이 나을 것 같다.
물론 말도 안 되게 아름다웠던 그 먼 바다에 다시 가고 싶기는 하다. 와이키키 해변을 바라보며 코나 커피를 마시고, 과일을 먹고, 호텔 수영장에서 수영을 하고, 어깨가 화끈거릴 때까지 일광욕을 하고 싶기는 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일상이 더 소중하다. 지금은 바다향이 가득한 이 한잔의 차로도 충분하다.
직접 고르고 구매해서 마셔본 차를 소개합니다.
브랜드명 | 루피시아티 (LUPICIA)
제품명 | LANIKAI
가격 | 12달러 (50g, 하와이 매장에서만 판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