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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12. 2023

삶이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생각의 판을 짜는 프로젝트 템플릿


강연, 세미나와 같은 외부 행사를 준비할 때 사용하는 나만의 [프로젝트 템플릿]이 있다. 이 템플릿은 두 개의 질문으로 시작한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프로젝트를 마친 내 모습 상상하기, 내가 만든 변화 구체적으로 상상하기


이 프로젝트를 잘 해냈을 때의 상황과 감정 상상하기

성취와 성장의 감동 한가운데에 있는 나의 구체적인 모습 상상하기



이 질문에 답을 하는 것이 프로젝트 준비의 70%이다. 소요 시간이 아닌 중요도를 기준으로 말이다. 시간으로 보면 30분도 걸리지 않는 과정이지만 이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할 수 있는가에 프로젝트의 성공과 실패가 달려있다. 제대로 답했다면, 그다음 일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저절로 진행된다.


위 두 질문은 일을 시작하기에 앞서서 어떤 기대를 가지고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방향을 잡고 스스로를 설득하는 과정이다.


아래의 예시는 지난달 일산의 동네책방 [슈가메르헨]에서 책 [매일매일 채소롭게] 북토크를 준비하면서 작성한 템플릿이다.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10명의 와주신 분들이 모두 채소로운 일상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채소로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 이 화두에 모두 관심을 갖는다.

북토크가 끝나고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고 그 감정을 나눈다.


이 프로젝트를 잘 해냈을 때의 상황과 감정 상상하기   

한 분 한 분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감탄하고 공감한다. 나는 이 영광스러운 자리의 한 복판에 서 있다.



북토크로 내가 만들 수 있는 변화가 무엇인지에 집중해서 생각해 봤다. 책 [매일매일 채소롭게]를 쓸 당시 나는 이 책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출간 후 2년이 지난 지금 덧붙여 말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는지. 이 책은 일상에서 채소를 즐기는 채소 일기였지만 다시 읽어볼수록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채소가 아닌 [삶에 대한 태도]였다. 내가 가진 고유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채소롭다]라는 표현으로 풀어낸 책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채소로운 삶]이란 무엇일까? 이것을 소개하고, 북토크에 와주신 분들 마음속에 이미 단단하게 자리 잡은 [채소로운 삶]을 발견하는 시간으로 구성해 보면 어떨까? 여기까지 큰 흐름을 잡았으면 이제 물줄기의 모양을 잡아야 한다. 템플릿에는 다음 두 개의 질문이 이어진다.



협업 상대자가 나에게 바라는 것?   

북토크 컨셉이 [낭독 책방]인 만큼 낭독하는 시간이 있었으면

참여자 이벤트로 채소와 관련된 작은 선물을 주고 싶다

채소 생활에 대한 소소한 TIP이나 책, 영상 소개하면 좋겠다


내가 협업 상대자에게 바라는 것?   

책의 어떤 부분을 읽고, 어떤 협업을 상상했는지 구체적으로 알고 싶다.

인원 규모와 테이블 배치, 참여자의 성향을 미리 알았으면 좋겠다

메일과 서면으로 진행 내용을 서로 공유하면 좋겠다.



낭독 책방 컨셉인 만큼 북토크 첫 시작을 낭독으로 시작하기로 했다. 낭독할 문장을 정하기 위해, 책의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물었고 슈가메르헨 사장님이 고른 문장은 이것이었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100% 비건, 100%의 환경운동가, 100%의 인권 운동가가 아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한 일상 속 작은 변화를 만드는 것


책방 손님들의 성향을 물어보니 인권, 환경,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한다. 북토크에 오실 분들도, 저자인 나도 우리는 모두 각자 현실의 삶 속에서 완벽하지 않아도 주어진 만큼 나답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야기를 해보면 좋겠다. 100% 완벽하지 않지만 나답게 꾸려가는 [채소로운 일상]에 대해서 말이다.


여기까지 템플릿을 채우고 나니 기획 방향이 잡혔다. 북토크 자료 목차를 구성했다.



이다음은 템플릿의 핵심 질문 4가지를 계속해서 떠올리면서 살을 붙여나가는 방식이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내가 답한 맥락 안에 있어야 한다. 이야기의 틀을 설계한 후에는 미래에 펼쳐질 북토크 [장면]과 그 장면 속에서 내가 느낄 [감정]을 구체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첫 번째 질문, 이 프로젝트가 만들 변화에 대한 답을 다시 보자.


10명의 와주신 분들이 모두 채소로운 일상에 대한 자신만의 정의를 만들었으면 좋겠다.

채소로운 삶이란 무엇일까요? → 이 화두에 모두 관심을 갖는다.

북토크가 끝나고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고 그 감정을 나눈다.


북토크에서 내가 얻고 싶은 것은 "와! 단단 강의 잘한다!" 이런 피드백이 아니다. 참석자들이 [강의자]가 아닌 [나] 스스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발견하는 시간이기를 바랐다. 이렇게 말이다.


"오... 오늘 나만의 채소로운 삶에 대한 정의를 발견했어!"

"채소에 담을 수 있는 생각과 표현이 다양하구나." 

"N명의 사람에게는 N가지의 채소로운 삶의 방식이 있겠구나"


그러면서도 동시에 내가 소개하는 채소로운 일상에 대해 온전히 공감받고 지지받고 싶었다. 두 번째 질문, 이 프로젝트를 잘 해냈을 때의 구체적인 상황과 감정은 이랬다.


한 분 한 분 내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감탄하고 공감한다. 나는 이 영광스러운 자리의 한 복판에 서 있다.


그렇다면 나는 북토크와 와주실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을 떠올리며, 나의 어떤 생각을 드러내고 보여줘야 할까? 어떻게 전달해야 할까? 자연스럽게 이렇게 생각이 흐르게 된다. 


여기까지 읽어준 분들이라면, 이제 이 간단한 템플릿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눈치챘을 것이다. 나는 마치 이미 성공적인 북토크를 마치고 서로를 향해 고마움을 나누는 장면에 도착한 사람처럼, 그 충분히 만족스럽고 벅찬 설렘을 느낀다. 미래를 이미 알고 확신하는 사람처럼 온전한 성취의 순간을 상상해보고 나면 그 편안한 믿음을 바탕으로 세부 내용을 준비해 나갈 수 있다.


내가 얼마나 말을 잘하는지, 강의 자료를 잘 쓰는지 보여주겠어! 이런 마음이 들면 그건 이미 "내가 잘 못해내면 어쩌지?"라는 긴장감에 잔뜩 힘이 들어간 것이다. 나는 잘 해낼 것이라는 것을 막연하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진심으로 믿고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믿어야 한다.' 그래야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이 시간의 무게중심을 참석자에게 온전히 내어준 채로 준비할 수 있다.


자신의 기꺼이 자리를 내어주는 것은 [주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빌린 물건을 남에게 턱턱 내주는 사람은 없다. 그렇다. 이 글에서 내가 진짜로 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 셈인데, 바로 내가 주인인 삶에 대한 것이다.




내 삶이 거대한 하나의 프로젝트라면


이렇게 몇 번의 프로젝트를 준비하고 난 후, 궁금해졌다. 어쩌면 내 삶도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인 것은 아닐까? 매일매일 처리해야 할 일에 떠밀리듯 살면서 정작 내 삶에 대해서는 무엇을 기대해야 할지, 무엇을 변화시킬 수 있을지, 그것을 이루었을 때 나의 모습과 감정은 구체적으로 어떠할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 삶을 온전히 잘 살아내는 데에도 준비 템플릿이 필요한 것 아닐까? 똑같은 템플릿을 채워보기로 했다. 프로젝트명은 [내 삶]. 내 삶이 거대한 하나의 프로젝트라면 나는 어떤 마음으로 무엇을 기대하고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똑같은 템플릿에 프로젝트를 [내 삶]으로 바꾸어 질문에 답해보았다. 내 삶이라는 프로젝트로 성공적으로 만들려면 어떤 마음으로 준비해야 할까?



이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치면 어떤 변화가 있을까?

나는 아침 햇살에도 설레며 하루를 시작한다. 매일매일이 나에게는 새로운 기회와 편안한 성취로 가득하다.

자격 없는 사람이 남의 것을 향해 손을 뻗듯 불안하고 조급하게 삶을 대하지 않는다. 내 삶은 온전히 나에게 주어져 있음을 믿고 당당하고 자신 있게 나아가고 싶다.


이 프로젝트를 잘 해냈을 때의 상황과 감정 상상하기

편안하게 삶을 받아들인다. 스쳐 지나가는 불운과 어려움에 휘둘리지 않는 나 자신이 믿음직스럽다.


협업 상대자가 나에게 바라는 것?

나와 함께 있을 때 마음이 편안하고, 용기와 희망을 얻기를 바란다.

나를 통해 몰랐던 자신 내면의 힘과 반짝임을 발견할 수 있다.


내가 협업 상대자에게 바라는 것?

내가 전하는 메시지를 진지한 마음으로 듣고 대화해 주면 좋겠다.

나에 대한 편견이나 오해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



템플릿을 작성하면서 몰랐던 내 욕망과 의도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나는 사람들이 나에게서 용기와 희망, 나만의 반짝임을 발견하기를 바라는구나. 그만큼 사람들이 나의 반짝임도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기를 바라고, 그 열린 마음으로 나와 대화해 주기를 바라는구나.


그런 삶을 사는 나는 매일 아침 눈을 뜨며 커튼으로 들어오는 아침 햇살에도 설레며 하루를 시작할 수 있게 되는구나. 매일이라는 시간이 나에게 새로운 기회와 편안한 성취를 가져다주겠구나. 내 삶을 마치 빌려사는 사람처럼 불안과 초조함으로 쫓기듯 살지 않고 여유 있게 당당하게 내 삶의 주인이 나라는 것을 굳게 믿으며 살 수 있겠구나.


그 삶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참 편안하고 든든하겠다. 나 스스로 덕분에. 


앞으로 나는 계속해서 [내 삶]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이 네 가지 질문을 언제나 기억하고 싶다.




일을 잘한다는 게 뭘까?


템플릿으로 내 삶이라는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만들기 위한 마음가짐을 세우고 나니, [일]에 대한 마음도 정리해보고 싶어졌다.


일을 잘한다는 것은 뭘까? 진지한 모든 질문은 결국 [좋은 삶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으로 연결된다. 나는 반대로 좋은 삶에 대해 탐구한 후 [일]에 대한 질문을 나에게 던져보았다.


사원, 대리를 거쳐 회사 생활 7~8년 차까지 나에게 일은 잘한다는 것은 이런 모습이었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일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한다.

하고 있는 일에서 숫자의 변화로 성과를 증명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계속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


맞는 답이다. 7~8년 차까지의 나에게는 정답이었다. 그러나 11년 차가 된 나에게는 아니다. 주니어 시절 부단히 노력을 통해 위의 3가지 기준은 이제 기본값이 되었다. 언제 누구와 어디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저 3가지 질문을 자동으로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제 다른 프레임을 만들 때가 되었다.


숫자를 만들기 위해,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좋은 동료이기 위해 지금까지 [노오오오오력]과 [여어어어얼심]을 다했다. 이제는 다르게 접근해야 할 때다. 일을 [하는] 단계가 아니라 일이 스스로 [되게]하는 단계, 이제는 그래야 하지 않을까?


실수할까 봐, 성과가 나지 않을까 봐, 욕먹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일의 모든 과정을 세세하게 들여다보며 모니터 안으로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둥글게 말아 넣는 자세는 이제 고쳐 잡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일하는 연습은 충분히 많이 했다. 이제 일을 잘한다는 것은 [일이 스스로 저절로 자연스럽게] 될 수밖에 없는 틀을 만드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준비하며 그 일이 성공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거대한 4개의 질문 기둥을 세운 것처럼 말이다.




일은 #스스로 #저절로 #자연스럽게


일은 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되게 하는 것이다. 자연스럽게 일이 되도록 판을 짜놓으면 일은 저절로 된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이 악물고 애써서 해내는 사람이 아니다. 쉽게 하는 사람이다.


회사에서 경영진이 마케팅 부서에 지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기억해 보자. 적은 비용으로 마케팅 효과를 극대화하라는 것 아닌가. 일을 잘한다는 것도 같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맹점이 있다. 적은 노력으로 최대한의 성과를 내는 ‘내공’을 쌓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과 지난한 시간의 터널을 거쳐야 한다.


즉, 적은 노력으로도 최고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나만의 일의 틀을 세우기 위해 '내공'을 쌓아야 한다. 여기서 적은 노력을 들인다는 것은 고민이나 실행을 줄이라는 것이 아니다. 이 악물고 숨을 꾹 참고 일에 매몰될 만큼 일에 파묻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최소한 내가 일을 한 발짝 떨어져서 조망할 정도의 틈은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내가 말하는 [적은 노력]이다. 주말에는 일과 관련 없는 책을 읽고, 퇴근 후에는 운동을 하고, 일하는 중간 틈틈이 심호흡을 하며 생각을 전환할 수 있어야 한다. 일에만 파묻혀서 일만 한다고 일을 잘하는 게 아니다.


일에 파묻히면 일이 짐이 된다. 짐을 사랑하고 존중할 수는 없다. 일과 나 사이 적절한 균형 감각을 길러서 일을 존중할 줄 아아야 한다. 그래야 일하는 나를 존중할 수 있다. 나를 스스로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그 누구도 존중해주지 않는다. 내가 내 일을, 나 자신을 함부로 대하면 사람들은 자신들도 그래도 되는 줄 안다.


보여줘야 한다. 나는 내 일보다 더 거대한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과정에서 나는 일을 나답게 잘 [활용]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일에 짓눌리는 사람이 아니라 일을 끌고 가는 사람이라는 것을.


주니어 시절 내가 세운 일을 잘한다는 기준을 다시 가져와보겠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명확하게 이해하고 일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한다.

하고 있는 일에서 숫자의 변화로 성과를 증명한다.

같이 일하는 동료에게 [계속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


이제 이 기준이 내 안에 속근육으로 단단하게 자리 잡았다고 믿고, 그다음 기준을 세워보겠다.

복잡하게 엉켜있는 주어진 일을 나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나만의 판을 짤 수 있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무엇이 성과여야 하는지 정의할 수 있다.

같이 일하는 동료가 [나를 통해 더 일을 잘할 수 있게] 된다.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막연하게 잘 해내겠다는 마음만 앞서지 않게, 일의 의도를 먼저 세운다. 그리고 그 의도대로 일이 이루어졌을 때의 모습을 상상한다. 그 감정, 느낌을 충분히 구체적으로 느끼고 누리고 기록한다.


그런 후에 일의 판을 짠다.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다. 일이 되는 판을 만들면 일은 저절로 하게 되어 있다. 스트레스받으며 일하는 것이 아니라 물살을 타고 흐르듯 처리할 수 있게 된다. 


물살을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는 마음을 울렁거리게 만들 만큼 멋지다. 하지만 나는 이를 악물고 물길을 거스르는 연어가 되고 싶지는 않다. 몸에 힘을 쫙 빼고 편안하게 그러나 분명하게 물살을 타고 자유롭게 바다로 나아가고 싶다. 중간중간 예기치 못한 바람을 만나겠지만, 암초와 부딪히겠지만 그러면 잠시 멈추어 숨을 고르고 다시 물살을 타고서 말이다.


이 글을 10년 후에 다시 보고 싶다. 20년 차인 나는 어떤 모습이 되어 있을까? 이 마음가짐이 나에게 결국 도움이 될까. 확인하고 싶다.


나는 매일 아침 햇살에 설레며 나의 일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매일매일을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누리며 보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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