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단단 Oct 02. 2023

불완전한 나의 뇌를 사랑해


뇌 속임


인간의 뇌가 행복을 위해 프로그래밍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이 아주 마음에 든다. 뇌는 불완전한 동시에 완전하다. 뇌의 불완전함을 반대로 이용할 때 비로소 뇌는 완전해진다.



내가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가 [뇌 속임]이다. 



수면 중에 해마에서는 낮 동안 경험한 것을 재정리하고 통합한다. 불필요한 정보는 폐기하고 중요한 정보를 장기기억으로 보낸다. 이때 해마는 어떤 기준으로 정보의 중요도를 판단할까? 바로 [감정]이다. 강렬한 강점과 함께 저장된 기억은 중요 기억으로 분류되어 장기기억으로 저장된다.



이것을 잘 기억해야 한다. 우리가 뇌를 행복으로 채우고 싶다면,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경험에 강렬한 감정을 분출해서는 안 된다. 불쾌한 일에 분노할수록 그 일만 기억에 남는다. 정작 기억하고 싶은 정보는 스르르 사라진다.



잠들기 직전에 나의 하루에서 의미 있는 기억을 선별하는 작업은, 그래서 중요하다. 의식적으로 오늘의 [성취]와 [감사]를 일기장에 적고 그 경험에 편안하고 즐거운 감정을 보낸다. 그런 후 잠들면 해마는 그 기억을 장기기억으로 보낸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가장 열심히 하는 노력이 [그럴 수 있지]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분노할 일을 찾자면 셀 수 없이 많지만 모든 일에 강렬한 감정을 쏟으면, 내 인생은 그런 일들로 채워진다. 뇌가 나의 삶을 부정적으로 기억하고, 나는 부정적인 삶을 사람으로 나를 인식한다. 그런 사람에게는 나쁜 일들이 오게 마련이다.



연휴 직전, 일이 많은 주간이다. 퇴근길에 의식적으로 [사랑의 감정]을 머릿속으로 심상화 했다. 뇌가 깜빡 속아주었으면 하고 말이다.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샤워를 하고 황농문 교수의 [몰입]을 20페이지 읽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새로운 지식에 몰입했다. 이제 잠들면 내 뇌는 나의 하루를 [즐거운 몰입]으로 기억할 것이다. 나의 뇌는 낮 동안의 지난하고 피로한 기억 대신 지금의 뿌듯한 감정과 결부된 이 기억을 장기기억에 저장할 것이다. 뇌가 제대로 속아주기를.





작업기억 - 장기기억 - 외부기억


늘 성적이 좋은 모범생이었던 나는, 고백하자면 [작업기억] 용량이 작은 유형이다.



기억은 거칠게 분류하자면 [작업기억] [장기기억] [외부기억]으로 나눌 수 있다. [작업기억]은 한 번에 담을 수 있는 기억의 용량이다. [작업기억]이 좋은 학생들을 벼락치기 공부로도 결과가 좋다.



이 그릇이 타고나게 작은 나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장기기억]에 의지하는 수밖에. 중간고사가 끝나고 바로 기말고사를 준비하는 수밖에. A4용지를 접고 접어서 32개의 칸을 만들어 한 달 동안 공부할 분량을 쪼개고 매일 [꼬리물기]로 반복하며 외웠다. 



작고 소중한 나의 [작업기억]이 공부할 때만 나를 괴롭힐 줄 알았는데, 일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한 번에 여러 일이 쏟아지면 좁은 작업기억 그릇은 금세 넘치고 만다. 다행히도 회사에서의 시험은 오픈 북이다. 굳이 어렵게 [장기기억]에 저장할 필요가 없다. 물론, [장기기억]에 넣기 위해 반복 암기할 시간적 여유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회사에서는 [외부기억]을 적극 활용한다. 나는 일을 시작할 때 상황과 생각의 동선에 맞는 문서 틀부터 만든다. 다양한 용도의 [To-do list] [시계부] [캘린더] [대시보드] [체크리스트] [북마크]를 만든다.


개인 작업물을 모아둔 노션 [아하-카이빙]



해야 할 일을 현실적인 시간 단위로 계획하게 해주는 [시계부]



영감 창고인 글 & 배움 기록 [에버노트]


회사 업무를 한눈에 볼 수 있게 해주는 [대시보드]


해야 할 업무를 유형별로 정리하는 [To Do List]


해야 할 업무를 시간과 함께 계획하는 [구글 캘린더]



내 문서 정리의 핵심은 속도와 동선이다. A일이 던져졌을 때 15초 안에 분류해서 서랍에 착착 분류해 두는 게 핵심이다. 섬광처럼 반짝하는 생각이 머무르는 골든 타임은 15초다. 15초 안에 서랍에 넣으려면 언제라도 딱 맞는 서랍에 넣을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작업기억이 역할을 한다. 내가 만든 모든 서랍의 상세한 지도는 [작업기억]에 저장해 두었다.



단 하나, 정보의 지도만 저장해 두는 것이다.



내 목표는 [작업기억]을 지도를 제외하고는 먼지 한 톨 없이 깔끔하게 비우는 것이다. 늘 0의 상태로 유지하는 것. 그래야 쫓기는 마음 없이, 일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과 감정조차도 저장하지 않은 채 늘 새로운 마음으로 일할 수 있으니까.



체력이 약해서 루틴을 만든 것처럼, 기억용량이 작어서 시스템을 만들었다. 매일 시스템을 업데이트한다. 그리고 주기적으로 정리해줘야 한다. 시스템 지도 구석구석을 모조리 작업기억에 담아놓고 다녀야 하기 때문에 일정량 이상으로 커지면 안 된다. 그때는 서랍을 모조리 꺼내 겹치는 것끼리 합치고 필요 없어진 것을 버려야 한다.



말끔한 마음으로 단 한 장의 지도로 가뿐하게 매일을 시작하고 싶다. 매일 아침 커튼 사이 흘러든 햇살에도 "와! 드디어 오늘이 시작되었어! 오늘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설렐 수 있도록.




매거진의 이전글 삶이 하나의 거대한 프로젝트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