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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Nov 25. 2023

제자리를 맴도는 줄 알았는데


파티 초대를 거절하고


6시, 사내 메신저 알람이 울렸다.


"OO 파티 가실 거예요?" 



이게 무슨 소리지? 후다닥 들여다봤다. 회사 밖에서 이런저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회사 동료였다. 혹시나 하고 메일함을 열어 보니 한 커뮤니티의 프라이빗 연말 파티 초대장이 있었다. 나와 그 동료는 모두 그 커뮤니티에서 활동을 간간히 하고 있었다.



이전에 한 번 그 모임에 가본 적이 있다. 대기업 임원, 스타트업 대표, 유명한 작가들도 초대된 꽤나 화려한 파티였다. 그런 곳에 초대되다니 정말 영광스럽고 기뻐야 할 텐데 그곳에서 나는 잘못 들어온 사람처럼 안절부절못하고 억지 미소만 잔뜩 짓고는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며칠 동안이나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스스로가 너무 못나 보였다. 왜 나는 거기서 어울리지 못했을까? 왜 그 사람들이랑 나를 비교하고 처음부터 대등한 관계라고 생각하지 못했을까? 



어찌 보면 당연했다. 그 모임 참석자 90% 이상이 20년 이상의 경력을 가진 분들이었으니까. 20년 이상 자기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뤄온 사람들과 11년 차 회사원인 내가 [일하는 여성들의 모임]이라는 타이틀로 만난다면 주눅 드는 게 당연하지 않은가.



오히려 그 위축되는 감정에서 그때 정말 중요한 발견을 했다. 누군가는 그럼에도 그 모임에 참석하는 것 자체를 신나는 경험이라고 느낄 수도 있을 텐데. 와! 내가 이런 분들이랑 같은 자리에 초대받았어!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걸 크게 깨달았다. 만약 그분들이랑 독서모임이나 글쓰기 모임을 한다고 하면 흔쾌히 참석해서 즐겁게 이야기했을 것 같다. 그런데 일하는 여성들의 네트워킹 파티는 내가 가고 싶은 자리가 아니었다.



퇴근길 지하철에서 여러 생각이 머릿속에서 싸웠다.



"역시 나는 내성적이야. 이래 가지고 사회생활을 어디 잘하겠어?"


"왜 꼭 그런 방식으로 네트워킹을 해야만 해? 왜 꼭 밥 먹고 술 마시면서 경험과 지혜를 공유해야 해? 책 읽고 글 쓰면서도 할 수 있잖아."


"이게 뭐라고 그냥 가면 되지 이렇게 고민해?"


"거기 가면 나를 한없이 잃어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


"그렇게 생각하는 거 자체가 이미 내가 없다는 거야. 내가 단단하게 있으면 어디에 있든 누구랑 있든 당당할 수 있잖아."



집에 돌아와 씻고 노트북을 열어 리추얼 방에 들어갔다. 공부 리추얼 메이트 L님이 김혜자 배우의 수상 소감과 책 속 문장을 공유했다.



"후회만 가득한 과거와 불안하기만 한 미래 때문에 지금을 망치지 마세요.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자신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살아가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예술이며, 그는 자기만의 예술을 현실의 삶에서 실현해 가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 봤다. 그냥 지금, 나만의 세계관과 가치관으로 살아간다면?



그 모임 안 가고 싶다. 그 시간에 책 읽고 글 쓰고 하루를 정돈하고 싶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충분히 고민하는 사람이지만 내가 하는 일이 얼마나 멋진지 나를 잘 모르는 사람을 상대로 설득하고 싶지는 않다. 그만큼의 에너지나 욕심은 없다. 소극적이고 유치한 생각이라고 해도 뭐, 어쩔 수 없다. 이게 나인걸.



그 모임의 주축을 이루는 분들처럼 20년 이상의 업무 경험을 가지고 내 분야에서 무언가를 이루었다고 느끼는 때가 온다면 자연스럽게 그런 자리에 가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아직 내 그릇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연기하듯 그릇 안에 물이 찰랑찰랑 흘러넘치는 척을 할 수가 없다. 그런 재능이 나에게는 없다.



퇴근길 1시간 내내 누군가에게 "갈까? 가지 말까?"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미 그걸 타인에게 묻고 싶다는 것 자체가 "아... 가기 싫은 거구나?"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런 내가 더는 실망스럽지 않다. 아주 느리게, 고단할 만큼 정성스럽게, 애쓴 티를 내지 못하고, 돌아 돌아 길을 나아가는 사람이 나라는 것이 사실 무척이나 좋다. 그렇게 천천히 나아가기에 중간중간 여유롭게 쉬기도 하고, 딴짓도 하고, 길에 잘못 들어 우연한 행운을 발견하기도 하니까.



(+) 퇴근하고 집에 오니 남편이 프렌치토스트를 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그냥 이런 소소한 삶이 좋은걸.






늘 제자리에 있는 사람



나에게 스타벅스는 10년 전부터 쭉 들어왔던 음악 같은 존재다. 더 맛있는 커피도 많고, 더 분위기 좋고 감각 있는 공간도 많지만 스타벅스는 오래된 루틴 같다. 익숙하고 편하다. 무엇보다 라떼 맛이 15년째 똑같다는 게 아주 마음에 든다.



15년 전, 대학교 1학년 때 처음 스타벅스에서 라떼를 마시고는 "와... 이거 뭔데 이렇게 맛있어? 우유 거품이 어쩜 이렇게 보드라워?"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때 당시 학교 카페 라떼가 2,200원이었으니까 3,600원짜리 스타벅스 라떼는 꽤 비싼 커피였다. 바람처럼 커피만 사서 나오는 요즘과 달리 테이크아웃은 생각도 못했다. 그때는 커피 한 잔 시켜놓고 주구장창 앉아있었다. 과제도 하고, 수다도 떨고, 자소서도 쓰고, 소개팅도 했다.



그 시절 나에게 친한 친구의 기준은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눠먹을 수 있느냐였다. "나랑 반씩 계산하고 한잔 시켜서 나눠 먹을래?"라는 말을 민망하지 않게 건넬 수 있다면 찐친 인정! 스무 살의 내가 홀짝홀짝 마셨던 라떼의 맛이 정말이지 하나도 변하지 않아서 좋다. 그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게 나만은 아닌 것 같아서 반갑다.



세월을 함께한 브랜드가 계속 잘 되고 진화하기를 바라면서 동시에 그대로 머물러 주기를 바란다. 더 세련된 지지 않았으면. 더 새로워지지 않았으면. 10년 전에 산 옷을 여전히 입고 다니는 나처럼, 15년 전에 듣던 노래를 여전히 반복해서 듣는 나처럼, 오래된 것들을 좋아하는 나처럼, 그 자리에 계속 있어주었으면 좋겠어.



사실 그 15년 동안 스타벅스는 계속 변해왔다. 인테리어도 메뉴도 굿즈도 바뀌었다. 스타벅스의 전략이 '늘 그 자리에'가 아니라면 미안한 해석이지만 내가 보기에 스타벅스의 주요 타깃은 20대가 아니라 3040일 것 같고 밤낮없이 트로트를 틀어주는 공중파 방송사처럼 브랜드와 함께 나이 들어가는 우리의 눈높이를 계속 맞춰온 게 아닐까.



그 자리에 그대로인 것처럼 보이려면 정말 하던 대로 하는 게 아니라 계속 변해가는 고객들과 발맞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심지어 늘 똑같은 맛이라고 느끼는 신라면도 알고 보면 계속 맛을 업데이트한다던데. 사람들 입맛이 세월이 흐름에 따라 계속 변하기 때문에 맞춰서 업데이트를 해줘야 '역시, 옛날 그 맛!'이라고 사람들이 인지한다고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너무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세월이 가는 속도에 맞춰서 변해주기를 바란다. 나는 확실히 빠름보다 느림을 좋아하는 사람인가 보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멈추지 않고



지난달부터 금요일 밤 12시가 되기만을 일주일 내내 손꼽아 기다린다. 바로 바로! 새로 연재를 시작한 브런치북에 글을 올리고 싶어서다. 일주일 내내 기다렸다는 대목에서 눈치챈 독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지난 토요일에 두 번째 글을 올린 후 주말 동안 미리 세 번째 글을 써두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미리 해버리는 계획적인 나 스스로가 내심 아주 마음에 든다. 그 덕분에 이 일주일의 시간이 "아악! 글 써야 해! 어떡해! 언제 쓰지? 뭐 쓰지?"가 아니라 "으으 써놓은 글 빨리 올리고 싶다! 기대된다!"가 되었으니까.



대문자 J도 숨 막히게 만드는 극단적인 J인 내 성향을 부끄러워한 적도 많았다. 그만큼 조급한 사람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까. 해야 할 일이 생기면 굳이 마감이 오기도 전에 끝내버리고 마감까지 멀뚱멀뚱 카운트다운을 하는 이 성향 덕분에 어떤 일이든 절대 늦은 적이 없지만 그만큼 고민할 시간이 적을 때가 많았고 그래서 결과가 별로인 경우도 많았다.



신입사원 시절 회사에서 사수에게 들었던 충고가 "지금 너 정도 연차에서는 속도보다 중요한 게 완성도야. 빨리빨리 하지 말고 천천히 다시 해서 다시 보여줘." 얼굴이 새빨개질 만큼 부끄러웠다. 나름대로 고민해서 한 건데, 대충 한 게 아니라 나는 원래 속도가 빠른 건데, 일단 끝내놓고 더 고민하려고 했는데. 그래도 이 정도도 괜찮지 않나? 아니었구나. 내 보고서 완전 별로였구나...



그래도 다행스러운 점은, 지난 11년간 회사 생활을 하며 완성도는 낮지만 빠르게 일을 하는 그 반복적인 과정을 꾸준히 [기록]했다는 것이다. 일단 50% 수준으로 완성시키고, 일이 끝나면 보완할 점을 기록했다. 다음번에는 그 기록에서 출발해서 보완하고, 끝나면 다시 개선점을 기록하고, 적용하고 이 과정을 뫼비우스의 띠처럼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기록은 루틴이 되었고 루틴은 생각과 행동을 바꾸었다. 돌아보면 그게 아주 큰 자산이 되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봐주지 않아 며칠이 지나도록 좋아요가 한 개도 달리지 않던 블로그 시절이 있었다. 사실 그때 글을 지금 보면 꽤나 우습다. 아니 이렇게 써놓고 왜 잘 썼다고 뿌듯해한 거야 대체? 그래도 뭐, 쓰고 싶으니까 계속 썼다. 그 시간과 기록이 쌓여서 요즘에는 글감이 떠오르면 일단 이전에 쓴 글부터 찾아본다. 워낙 이것저것 많이 써두어서 웬만한 주제로 글 한 편쯤은 써두었다. 그리고 그 글에서부터 생각을 이어나간다. 0에서부터 시작하지 않고 2나 3 정도에서 시작하는 거다.



그러면 무리하지 않게 된다. 매번 일을 할 때마다 0에서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면 얼마나 막막하고 힘들고 스트레스받을까. 11년째 회사 생활을 하면서 세 번의 이직을 했고 팀을 옮기 적도 있고 HR에서 마케팅으로 직무를 바꾼 적도 있다. 그래도 가수에서 화가가 되는 정도의 급격한 변화는 아니었다. 새로운 일을 맡을 때마다 과거의 내가 차곡차곡 쌓아둔 기록들이 나를 도와준다. 겁먹지 않고 무리하지 않고 시작할 수 있었다. 겉으로는 맨땅에 헤딩하느라 고생하는 티를 내면서도 속으로는 느긋하게 계획을 세우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이전 연재글) 회사 업무 기록 방법


내 기준에서 일 잘하는 사람은 같은 일을 더 쉽고 가볍게 해내고 퇴근하는 사람이다. 임원들이 매번 "돈 안 들이면서 성과 내는 마케팅 플랜 가져오라."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더 적은 시간과 에너지로 같은 일을 하면서 성과를 낼 수 있어야 똑똑하게 일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 초반의 기초 작업과 정기적인 업데이트는 필요하다. 기초 공사와 보수 기간을 제외하고는 물속을 유영하듯 한껏 여유롭게 집중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무리하지 않고 멈추지 않고 번아웃 없이 오래 일할 수 있다. 오래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는 굳건한 내 자리가 생긴다. 일부러 척할 필요도 설득할 필요도 이 악물고 어깨에 힘줄 필요도 없다. 꼭 나여야만 하는 내 자리가 생기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결과다.






성장폭보다 성장세



"우리 회사 올해 흑자 전환 못 하면 어떻게 될까요? 정말 구조조정이라도 하려나요."


팀 리더들과 점심을 먹으며 물었다. 


"흑자 전환, 올해 못할 수도 있죠. 그런데 그래프의 좌표값만큼 중요한 게 기울기예요. 성장세를 입증할 수 있다면 흑자 전환을 못하더라도 내년에 괜찮을 거예요."



그렇다면 나의 성장세는 무엇으로 만들 수 있을까? 바로 스스로의 가능성을 굳게 믿는 나의 [에너지]다. 나의 생각이 나의 환경을 어떻게 인식하고 해석하고 의도하는지에 따라 세상은 바뀐다. 이것은 그저 믿음의 영역이 아니다. 과학적으로 우리의 의식은 시공간을 창조한다. 내가 어떻게 삶을 대하느냐가 내 삶을 창조한다.



우주에는 빛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이는 것들이 있다. 있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많다. 물질을 이루고 있는 전자나 중성자 같은 미립자들이다. 전자는 빛처럼 한 방향으로 쭉 가는 것이 아니라 반사되어 앞뒤로 움직인다. 이러한 좌충우돌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며 에너지를 물질 상태로 바꾼다. 물질은 에너지가 응축된 것이다. 이러한 에너지의 응축이 곧 ‘들뜬상태’다. 좌충우돌의 상태가 멈추면 다시 에너지로 돌아간다. 우주의 모든 물질의 기본 상태는 에너지다. 전자의 좌충우돌 상태가 일정한 패턴을 지니게 되면 물질이 탄생한다. 이처럼 물질과 에너지는 본질적 측면에서 같은 것이다. 에너지의 응축이 곧 물질이 되고 시간과 공간을 탄생시킨다. 따라서 순수한 에너지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의식은 물질이 아닌 순수한 에너지다. 따라서 의식에는 시간도 공간도 없다. 의식이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내는 것이지 시간과 공간에 의식이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의식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 물질을 에너지로 변화시키고 다시 에너지를 물질로 변화시키는 매개체가 바로 ‘의미’라는 것이다.

[내면소통], 김주환



의식도 에너지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물질세계가 바뀌는 것이다. 우리가 세상에 부여하는 [의미]가 물질세계를 변화시킨다. 나의 미래를 의심하지 않고, 그 누구도 아닌 내가 직접 나의 작은 성장과 변화를 믿어줄 때 우리는 자란다. 조금씩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멈추지 않고 계속



연남동 근처에 살면 문을 닫는 카페, 새로 생긴 카페, 늘 그 자리에 꿋꿋하게 있는 카페를 보게 된다. 



1. 장사가 잘 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길게 늘어선 대기줄과는 다르게 뒤로는 남는 돈이 없어서 힘들었다던 카페.

2. 손님도 많고 순이익도 괜찮았지만 몸을 갈아 넣으며 일하다가 어느 날 돌연 멈춰버린 카페.

3. 지나갈 때마다 텅 비어 있어 걱정했는데 신기하게도 3년째 장사를 하는 카페.

4. 5년 전만 해도 나만 아는 작고 소중한 공간이었는데 알음알음 유명해져서 매장을 확장한 카페.



그 카페들 중에서 내 마음에 남은 것은 단연 마지막 카페였다. 유명해지기 전 그 카페는 텅 비어 있는 날도 종종 있었다. 티클래스도 하고 자체 제작한 홍차에 정성스러운 쿠키와 케이크까지 판매하는 그 작은 카페에 사람이 없는 모습이 신경 쓰였다. 여기 쿠키 전문점이라고 해도 될 만큼 스콘이랑 쿠키 정말 맛있는데. 겨울에 창가 자리에 앉아서 차이티 한잔 마시며 책 읽으면 기분 정말 좋은데. 벽면에 한가득 진열된 홍차 박스 사진 찍으면 잘 나오는데. 



내가 이렇게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게 혼자 조용히 그 근처를 지날 때마다 가게를 기웃거리며 오늘은 잘 되고 있는지 들여다보았다.



정작 나는 그렇게 멀리서 조용히 지켜보고 있으면서 누군가 나를 같은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는 것을 자주 잊는다. 내 글은 왜 이렇게 좋아요가 적을까. 브런치 메인에 잘 소개되지 않을까. 인스타그램 팔로워는 왜 안 늘어날까. 이번달 리추얼 신청자는 왜 적을까.



1년 반동안 열심히 운영하던 뉴스레터를 그만두며 마지막 레터를 보냈던 날, 가장 많은 답장을 받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작 응원하고 있다고 잘 보고 있다고 말할 걸 그랬어요. 그러면 뉴스레터를 안 그만두셨을까요." 반응이 없어서 그만둔 것은 아니었지만 그날에서야 비로소 내가 실제로 받고 있는 응원은 느낄 수 있는 응원보다 훨씬 크다는 것을 알았다.



꾸준히 잘 되어야만 계속할 수 있다고 믿었다. 오늘 백만 원을 벌면 내일은 만원이라도 더 벌어야 성장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꾸준함의 진짜 의미는 계속 잘 되는 게 아니라 안 될 때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었다.



[밑미]의 공부 리추얼을 쉬지 않고 매달 계속하는 이유는 바로 그 답장 덕분이었다. 리추얼을 2년 가까이하면서 신청자가 많아 조기 마감되는 달도 있고 신청자가 없어서 고민되는 달도 있었다. 어느 시기에는 정말 진지하게 이렇게 계속 갈 수 있을까 매달 신청자가 늘어야 할 텐데 왜 이렇게 왔다 갔다 하는 거야, 나 잘하고 있는 것 맞아? 고민으로 잠에 들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안다. 내가 받고 있는 응원이 신청자수 딱 그만큼이 아님을. 매번 가게 앞을 지나며 애정 어린 관심을 듬뿍 보내면서도 정작 매장에서 홍차를 마시는 건 계절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나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나의 공부 일기와 공부 리추얼을 지켜보고 있다. 내가 언제든 이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면 언젠가 우리는 만나게 되어있다.



신청자수에 연연하지 말고 나는 나의 공부를 하고 기록을 남기고 이 공간을 지금처럼 언제나 사랑하고 아껴주면 된다. 그래야 무리하지 않고 가볍고 경쾌한 마음으로 계속할 수 있다. 계속하다 보면 결국에는 도착한다. 그곳이 어디든 내가 믿고 바라는, 나를 위한 미래에 도착할 것이다.



제자리를 맴도는 것 같아 보여도 우리의 원은 조금씩 커지고 있습니다.

『일하는 마음』 제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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