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 셔틀버스에서 유튜브 채널 [EO] 인터뷰 영상을 봤다. 인터뷰이인 김지윤 박사와 이재용 회계사의 말에서 한 가지 공통점을 찾았다.
장기 계획을 세우지 않는다
"미래는 알 수 없고 현재는 계속 바뀐다. 치밀한 장기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먼저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걸 하기 위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열심히] 하다 보면 장기적으로 그 방향으로 가게 된다."
그들은 그 과정에서 주어진 일을 효율을 따지지 말고 열심히 그러나 효율적인 방법으로 했다.
김지윤 박사는 보기보다 아주 솔직한 사람이었다. 뉴스나 방송에 패널로 출연하면 10만 원 정도 받는다고 시원하게 공개했다. 10만원을 받고 10분 분량을 촬영하기 위해 하루를 쓴다고 했다. 어떤 동료는 10만 원 벌려고 뭐 그렇게 열심히 하냐고 말하지만 자신은 그 10분을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열심히 준비한다고. 그러다 보니 하나 둘 불러주는 곳이 많아졌고, 이제는 정치 분야의 독보적인 스토리텔러가 되었고 말했다
이재용 회계사는 숫자를 다루는 직업인답게 가계부도, 시간 관리도 모두 엑셀로 하는 극효율주의자로 스스로를 묘사했다. 그러나 현재와 미래까지 타이트한 계획 안에서 관리하려 하는 것은 아니라고. 주어진 기회를 감사히 받고 열심히 하면서 열리는 문을 하나씩 따라가다보면 장기적으로는 계획을 세운 것보다 더 좋은 기회를 얻는다고 말했다.
김지윤 박사는 왜 정치학과를 전공했는지, 왜 대학원 전공으로 미국 정치를 선택했는지 묻는 질문에 “하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는 표현을 반복했다. 노련한 인터뷰어인 최성운 님의 정성스러운 물음 끝에 ”재밌어서 “라고 실토했는데, 이게 아주 중요한 답이라고 생각한다.
가끔 “글을 너무 쓰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되냐.” 라던지 “꾸준히 글쓰기 하는 방법이 무엇이냐.”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 그때마다 글쓰기 책이나 강의를 추천해주기도 했고 마음에 결핍이 있어야 글을 쓰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 도움 되지 않는 답이었다.
누군가 다시 똑같은 질문을 묻는다면 “글쓰기로 어떤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면, 마음 불편하게 잘 되지도 않고 재미도 없는 글을 쓰려고 애쓰지 말고 그 시간에 좋아하는 것을 더 열심히 해보라”라고 말하고 싶다.
빠르게 결과가 나오지도 않고 성과가 보장되지도 않는 일. 효율을 따질 필요 없을 만큼 재미있는 일을 더 재미있게 하기 위해 효율적으로 하는 시간이 쌓여야 비로소 결과가 생긴다. 가장 비효율적인 방식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보장한다.
비효율을 선택하는 건 아주 어려운 결정이다. [과정의 재미] 외에는 아무것도 보장된 것이 없다. 유튜브에 떠도는 [6개월 안에 OOO 되는 방법] 같은 걸 보고 따라 해야 할 것만 같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남들의 성공 방식에 나를 끼워 넣으려 애를 쓰게 된다. 정신을 차리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어느새 그러고 있다.
비효율은 나만의 성공 방식을 찾는 것이다. 나만의 성공 방식에는 꼭 비효율적인 과정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 남들이 따라 하지 못는다. 이렇게 비효율적인데 누가 따라 할 수 있을까. 아무도 없는 나의 영역에서 나만의 성공 방식이 만들어진다. 독보적인 고유함을 갖게 된다.
비효율은 그 시간의 훈장이다. 아무리 땅을 파도 물이 나오지 않는다면, 안심하자. 이 길은 나밖에 못 간다.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물을 찾아낸다면 이 길은 아주 오랫동안 든든하게 나를 지켜줄 것이다.
비효율적이기에 이 과정에서 자주 혼자가 된다. 결과가 보이지 않는 이 땅굴 파기에 누가 기꺼이 동참한단 말인가. 그 기분이 종종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외롭고 무력하게 만든다. 인스타그램을 떠들썩하게 달구는 유명인들의 존재는 그 외로움에 박차를 가한다. 나만 혼자 고민하는 것 같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자신들의 커뮤니티 안에서 시너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것만 같다.
고독한 시공간. 그 아득한 터널은 놀랍게도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이와 길이만큼 나를 우아하고 품위 있게 만들어준다. 외로움이 선물한 고독한 공간에서 나만 아는 이야기, 감정, 변화를 마주한다. 그 공간을 아름답게 가꾸는 일은 시끌벅적하게 화려한 사람들은 맛보기 어려운 행복이다.
“그리하여 누구나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오로지 자신만이 읽을 수 있는 외로운 책을 갖게 된다. 누구도 읽을 일 없는 이 책을 최선을 다해 아름답게 쓰는 태도를 우리는 품위라고 부른다.”
- [책의 말들], 김겨울
”It is easy in the world to live after the world’s opinion; it is easy in solitude to live after our own; but the great man is he who in the midst of the crowd keeps with perfect sweetness the independence of solitude.”
- Ralph Waldo Emerson
세상 사람들의 말을 따라 살기는 쉽다. 고독 안에서 내 방식대로 살기는 쉽다.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은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도 고독이라는 독립을 완벽하게 맛보는 사람이다.
- 랄프 왈도 에머슨
섬처럼 홀로 애쓰며 사는 나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느슨하고 묵직한 공동체가 있다. 읽고 쓰는 삶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공동체의 일원이다. 따로 떨어진 우리 섬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의 존재를 느끼며 용기를 얻어서 오늘도 묵묵히 읽고 쓴다.
누군가의 성장 이야기를 즐겨 본다. 어릴 때는 성공시대라는 TV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독서실 사물함에는 [16세 소녀 하버드를 쏘다] 비스무리한 제목을 가진 책이 있었다.
헷갈렸던 것 같다. 내가 원하는 성장이 무엇인지.
10대 시절, 나에게 성장은 곧 '성공'이었다. TV속에 나오는 멋진 커리어 우먼, CEO, 베스트셀러 작가들이 롤모델이었다. 경제 성장률이 워낙 높았던 시대라 큰 성공만이 성장이라고 여겨지던 시기였다.
20대가 되자 나에게는 성공이라 불릴 만큼의 큰 돈을 벌 능력도, 리스크에 올인해 볼 담력도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패러다임을 [성장]으로 바꾸었다. 그러나 성장은 성공과 기울기만 다를 뿐 여전히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돈과 영향력을 갖는 것]이라는 점에서는 비슷했다. 이 역시 시대의 영향 아닐까? 2010~2020년대에는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이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했다. 전 국민이 아닌 빅스타가 아니어도 북튜버, 뷰티 인플루언서처럼 내가 좋아하는 분야에서 유명해지면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마이크로 인플루언서를 꿈꾸며 30대가 되었다. 이제 나에게 성장이란 더 이상 더 많은 돈과 영향력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게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가치는 돈으로 교환된다. 숫자로 증명하지 못한다면 인정받을 수 없다. 나이가 들수록 연봉은 계속 올라야 하고, 경력이 쌓일수록 그 분야에서 더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야 한다. 그 구호에 맞춰서 나 역시 지금까지는 숫자를 올리고 키우며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반감이 들기 시작했다. 정말 성장이 숫자를 올리는 것만 의미하는 걸까? 일을 잘한다는 것을 연봉 상승과 인사 평가, 업계 인지도로만 증명해야 할까?
지금의 나에게 성장이란, 일을 잘하는 능력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왜 성장을 해야 하지? 왜 일을 잘해야 하지? 그 본질적인 목적이 뭘까?
나에게 성장의 기준은 [현재를 충만하게 느끼는가]이다. 매년 연봉이 오르지만 이놈의 회사에서 언제 벗어날 수 있을까 매일 고민한다면, 업계 인지도가 오르지만 일을 하는 매일이 괴롭다면 그게 정말 성장일까?
연봉은 그대로지만 점점 일하는 시간이 기다려진다면? 업계 사람들은 여전히 나를 모르지만 내 일에서의 변화를 조금씩 만들어내며 나 스스로를 대견하게 생각한다면? 나에게 성장은 [숫자의 변화]가 아닌 [내면의 변화]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지금까지 내 삶은 [예쁜 이력서와 숫자]를 만드는 데 온 시간을 바쳐왔다. 그걸 만들려고 고군분투했던 시간과 노력은 여전히 소중하다. 누군가에게는 숫자를 올리는 과정 자체가 재미이자 행복이라는 것 역시 인정한다.
내가 생각하는 [일을 잘하는 능력]은 숫자로 증명되지도 않고 숫자로 보상받을 수도 없다. 일을 잘하게 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진정한 보상은 더 높은 연봉이 아니라 일에서 얻을 수 있는 [자유]다. [효능감]과 [몰입의 즐거움]이다. 바로 그것이 내가 일을 사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회사원으로서 일을 잘하면 좋은 점이 뭘까? 내 방식대로 일할 수 있다. 일을 잘하면 똑같은 일을 해도 더 적은 시간을 들여 더 인정받는 결과물을 받을 수 있다. (물론 그러기 위해 더 많은 고민과 훈련의 시간을 통과했겠지만.) 그럼 기분이 좋다. 내가 이 사회에서 쓸모 있다는 효능감이 마구 느껴진다. 더 적은 시간에 끝내기 위해 엄청나게 고민하고 집중하면서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일에 대한 고민은 치열하게 하지만 일에 대해 걱정은 크게 하지 않는다. 얼마나 산뜻한가. 깊고 찐득하지만 산뜻한 [일하는 마음].
일을 못하면 돈을 얼마 받는지와 상관없이 출근하는 매일이 지옥일 것이다. 사사건건 내 능력을 의심하는 상사와 그런 나를 대놓고 무시하는 동료들 사이에서 일을 한다고 떠올려보라. 얼마나 버겁고 압박감이 들까.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숫자 이전에 [마음]으로 삶의 질을 결정한다. 사람은 세상에 자기 자리가 없다고 느낄 때 삶을 지옥으로 느낀다.
일을 잘하면 든든한 내 자리가 생긴다. [효능감]과 [몰입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이걸로 일을 잘하는 능력에 대한 보상은 충분하다.
물론, 그래서 나에게 "자유와 효능감과 몰입의 즐거움을 더 줄 테니 연봉 낮출 수 있겠어?"라고 묻는다면 "무슨 소리야? 지금 받는 만큼은 받아야지."라고 답할 것이다. 그게 30대 내내 나를 괴롭히는 마음이다. 숫자를 올리고 싶지는 않지만 내릴 마음은 절대 없다는 것. 서울 역세권 아파트를 포기할 마음은 절대 없다는 것.
성장에 대한 글과 영상을 한동안 보다가 한동안 쉬기를 반복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성장이 [숫자만을] 의미하는 게 아님을 알면서도 결국 숫자로 보여줄 수밖에 없는 성장이 버겁다. 딱 지금처럼 살고 싶지만, 지금처럼만이라도 살려면 지금 정도로 노력해서는 어림없다는 가르침이 숨 막힌다. 갖고 있는 것을 절대 놓지 못하는 사람이라서일까. 손에 쥔 것을 내려놓지 않고 나아가려면 결국 숫자도 챙겨야 하고 이 악물고 달려야 한다는 것을 알기에 더더욱 숨이 차오른다.
40대가 되면, 나와 성장의 관계가 조금은 더 가벼워질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