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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25. 2019

시간으로 만드는 요리

간단하게, 좀 더 건강하게

뭔가를 해결하며 살기 어려운 시대지만, 여전히 시간이 해결해주는 것은 많다. 요리에서도 그렇다. 힘 들이지 않고, 체력과 시간을 아껴서 요리하려면 시간의 힘에 기대어야 한다. 직장인 요리 생활자라면, 더더욱. 때론, 스스로 모든 걸 할 수 없다는 걸 받아들일 때 조금 더 할 수 있게 된다.


햇볕과 바람에 말린다


채소를 말리는 건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용되던 조리법이다. 버섯은 특히나 반나절은 꼭 말려서 쓴다. 살짝 말린 버섯은 식감도 꼬들꼬들해져서 맛있고, 좋은 성분도 응축된다. 버섯을 말리는 일은 집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다. 맑고 해가 잘 들어오는 낮, 거실에 두면 금방 잘 마른다.


나물도 말려서 먹으면 아주 좋은데, 특히 나물밥을 만들 때 말린 나물을 이용한다. 나물은 따로 사서 말리지는 않고, 말린 나물을 쓴다. 버섯 말리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지만, 나물은 손이 많이 간다. 요리는 무조건 쉽고 간편해야 자주 하게 된다.


차갑게 우린다.


여름에는 음료를 만들어두는 것을 좋아한다. 퇴근하고 집에 와서, 운동 끝나고 냉장고를 열었을 때, 차가운 음료가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행복이다. 밀크티를 우유나 귀리우유에 냉침해 두기도 하고, 홍차나 녹차를 냉침해 두기도 한다. 차를 냉침해두는 이유는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얼음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다. 집에서 얼음을 얼리면 아무리 보관을 잘해도 냉동실 냄새가 난다. 그래서 웬만하면 음료에 얼음을 넣지 않는다. 대신 차를 냉침해서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바로 먹는다. 얼음이 없어도 시원하다. 얼음을 넣어 먹다 보면 점점 맛이 흐릿해지는데, 냉침한 음료는 그럴 일이 없어서 좋다.


무엇보다, 냉침하는 것이 따뜻하게 우리는 것보다 훨씬 쉽다. 물병에 찻잎을 몇 스푼 넣고 찬물을 부은 후 냉장고에 넣으면 끝이다. 저녁에 만들어 두면 아침에 먹을 수 있고, 아침에 만들어 두면 퇴근하고 먹을 수 있다.


소금이나 설탕에 절인다


김치만 해도 그렇다. 일단 배추나 무를 소금에 절인 뒤에 어느 정도 수분이 빠져 말랑말랑해지면 양념에 무친다. 계절 과일은 설탕에 절여 청으로 만든다. 여름엔 매실을 설탕에 절여둔다. 100일이 지난 매실절임은 훌륭한 반찬도 되고, 음료도 되고, 조미료도 된다.


술에 담가 숙성시킨다


과자를 만들 때 많이 쓰는 방법이다. 케이크에 들어갈 말린 과일은 술에 조금 불린 후에 사용하면 훨씬 풍미가 좋아진다. 베이킹에 사용되는 술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에서 럼을 가장 좋아한다. 구하기도 쉽고, 활용도도 높다. 럼에 무화과나 크랜베리, 건포도 등을 하룻밤 절여두면 풍미가 깊어진다. 오븐에 들어가면 알코올은 날아가고 풍미만 남는다. 알코올 향이 그대로 살도록 럼 레이즌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계속 먹다 보면 취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럼에 절인 무화과로 스콘을 만들었다


손질해둔 재료를 얼린다


어차피 할 노동이라면 덜 바쁠 때 해두는 게 낫다. 혼자 지내다 보면, 재료를 한 개만 사도 남는다. 양배추 하나를 사면 일주일 내내 양배추만 먹다가 물려서 버리곤 한다. 냉동실은 그럴 때 마법의 창고가 된다. 물론 이것저것 남는다고 다 얼리다간 냉동실 가득 재료가 쌓여서 찾지 못하고 잊히는 사태가 발생한다. 냉동실 문을 열었을 때 한눈에 들어오는 정도까지만, 재료를 미리 손질해서 얼려두면 적당하다. 양념이 되는 재료들은 늘 냉동실에 구비해둔다. 마늘, 청양고추, 멸치, 다시마.


밥은 한 공기씩 얼려두었다가 해동시켜 먹는다. 햇반이 더 맛있다는 사람들도 많지만, 밥에 이것저것 넣어 먹는 걸 좋아하는 편이라 내 스타일대로 만들어 먹는다. 남은 과일도 얼려두는데, 아침에 스무디로 갈아 마시기 좋다. 그 외에도 남은 재료가 있으면 고민 없이 얼려본다. 해동해서 요리해보고 식감이나 맛에 문제가 없다면, 다음번엔 마음 놓고 손질해서 냉동해둔다.



요리는 정성이라고들 한다. 손이 많이 갈수록 맛이 있다고. 누군가의 손길이 가득 담긴 요리를 맛보는 일은, 그래서일까 위로받는 기분도 든다.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는 것은 차곡차곡 쌓아둔 마음을 전하는 것과도 같다.


그렇지만, 매일 그렇게 마음과 손길을 꾹꾹 눌러 담은 요리를 할 수는 없다. 퇴근하고 최대한 빨리 휘리릭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하는 날도 있다. 몸도 마음도 지쳐 있을 때 요리를 하는 건 무거운 노동이다. 오늘 절대 요리는 안 할 거야 생각하며 김밥 한 줄을 사다 먹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꼭 속이 더부룩하다. 괜히 더 속상해진다.


시간의 힘이 필요하다. 나 대신 시간이 요리를 해 준다. 그동안 나는 돈도 벌고, 더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그리고 돌아와 시간이 만들어둔 요리를 먹는다. 간단하게, 그래도 건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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