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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28. 2019

결국 혼자라는 게, 슬픈가요?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저는 아이는 안 낳을 거라서...”


“에구 지금은 젊으니까 둘이서도 재밌지, 나이들어봐 외로워진다니까”


나는 이 말이 아주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한참을 정신없이 온 힘을 다해 아이를 키워내고 나면, 아이는 떠난다. 완전히 어딘가로 가버리는 것은 아니지만, 더 이상 내 품안의 어린이가 아니게 되는 것이다. 나의 기대와 희망과 멀어지고, 물리적 거리도 멀어지고, 연락도 뜸해진다. 뭐, 물론 아닌 관계도 많지만 우리 엄마 아빠와 나만 봐도 그렇다.


사람들의 말에 따르면, 사십대까지는 남편이랑 둘이 놀아도 즐겁지만, 대충 50살부터는 심심하고 무료해진다고 한다. 그건, 아이가 있어도 똑같은 거 아닐까? 서른 즈음에 아이를 낳아 대충 20-30년 정도 정신없이 먹이고 입히고 재우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되는거 아닐까?


어차피 혼자가 될 건데, 그 사이에 어떻게 사느냐의 문제라고 느껴진다. 뭐, 물론 자녀의 자녀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육아 시계가 다시 돌 수도 있지만,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해서 그 아이가 아이를 낳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나는 너가 결혼이라도 해서 다행이다. 결혼도 안 하고 혼자 산다그랬으면 어쩔뻔 했니.”


우리 엄마가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남편이라도 있어야지 혼자 살면 얼마나 힘들고 외롭냐고. ‘엄마, 정말 그래? 나한테 한 삼십년간의 하소연은 다 뭐야?’ 이 말이 목구멍에 맴돌았지만 꾹 참았다.


남편과 그럭저럭 괜찮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애초에 이 사람이 나를 외로움에서 구해줄 거라는 기대를 버리는 편이 좋다. 내 남편은 다정하고 세심한, 보기 드문 사람이다. 그렇지만 그는 나를 완벽하게 이해해줄 수 없고, 그걸 바랄 수도 없다. 일단 나부터가 그를 온전히 알아줄 수 없는데, 뭘 이해까지 바라고 살까.


남편이랑 같이 살면서도, 혼자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나를 외롭게하기 때문이 아니라, 나는 정말 애초에 나 혼자 이기 때문이다. 어리광도 아니고, 우울감도 아니다.


나는 혼자라는 것을 받아들임으로써, 주변 사람들을 더 잘 수용하게 되었다. 우리 엄마는 내가 회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요즘은 무엇이 힘든지 묻지 않는다. 사실 내 친구들은 내 고민에 깊이 공감하지 못한다. 다들 그런다. 그러나 나는 그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살 수밖에 없다. 내가 혼자이듯이 그들도 결국 혼자이니까, 자기 생각하면서 사는게 당연하다.


이 소설의 주인공, 모모코는 73세 할머니다. 아이 둘을 키워냈고, 남편은 15년전에 갑작스런 병으로 죽었다. 혼자 오래된 집에서 살고 있다. 처음에는 쥐와 벌레가 나타나면 무서웠지만, 이제는 쥐라도 인기척을 해주지 않으면 허전하다.


애초에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부모고, 자식인가. 부모 자식 하면 아이가 엄마 아빠 손을 잡고 걷는 장면이 떠오르는데, 인생은 자식이 성인이 되고 난 뒤가 훨씬 길다. 옛날 부모들은 막내가 성인이 될 무렵 세상을 떴다지만, 요즘 부모는 자신이 늙는 건 물론이요 자식이 늙는 것마저 본다. 그렇게 긴 세월이다 보니 언제까지고 부모 자식에 구애받지는 않게 됐다. 어느 한 시기를 함께 보내다 이윽고 서로 다른 방향으로 갈라져 헤어진다.
p.51


부모님 세대는 노후 준비라는 개념을 일찍부터 생각하지 못했다. 자식 잘 키우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아빠가 정년 퇴직을 하고, 자식들을 독립시켜보내고, 엄마와 아빠는 처음 경험하는 고요한 삶 앞에서 당황했다. 나와 언니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재촉하는 것은 아마 그 적막함을 감당하기 어려워서일 것이다.


결국 인생은 쓸쓸하고, 외롭고, 혼자이다. 잠시 어느 한 시기를 누군가와 함께 보내기도 하지만 영원하진 않다. 그럼 사는 건 슬픔을 향해 달려갈 뿐인가?


모모코는 죽은 남편의 산소를 가기 위해 도시락을 싼다. 아침 일찍 일어나 평소와 달리 재빨리 움직였다. 씻고 옷을 갈아입고, 찻물을 끓이고, 나갈 준비를 한다. 모모코는 즐거운 기분을 알아차린다.


목적이 있는 하루는 즐겁구나, 라고 소리 내 말하곤, 그래, 나한테 필요한 건 목적이었어, 라고 응답하며 부랴부랴 부엌으로 가 맨 먼저 찬장에서 양은 도시락을 꺼낸다. 모모코 씨가 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님이 사 주신 오래된 물건이다. 연분홍 바탕에 튤립이 있었지만 지금은 다 긁혀 벗겨지고 표면도 울퉁불퉁하다. 이런 것도 멋이다. 아이들 도시락은 예전에 버렸지만 이건 버릴 수가 없다. 실은 애들보다 내가 더 소중했던 거야. p.100~101


사람들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고 사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모모코를 보면서, 그게 아니라 목적을 만들기 위해서 였구나 싶다. 그때그때의 목적이 있어야 우리는 힘이 나니까. 의미가 생기니까. 그래서 결혼이라는 목표를 세우고,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목표를 세우며 사는 걸까.


그럼 내 인생의 목적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아이를 키우지 않아도 외롭지 않을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중요하고 가치있는 인생의 목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목적을 선택할 수도 있다.


인생의 사명을 만든다는 것. 어느 한 시기에 누구와 함께이던, 함께이지 않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내가 살아갈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그것을 실현하며 산다면 결국 혼자가 된다고 해도 슬프거나, 절망적이지 않을 것 같다.


지금까지 내가 고민해본 나의 사명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세상이 더 나은 세상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각각의 시기마다 내가 속한 상황 속에서 얼마든지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다. 지금은 같이 일하는 동료들을 좀더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 쓰레기를 줄이는 것,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나누어 먹는 것, 좋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 그 정도이다.


내가 사는 목적을 세우고 나면, 혼자이어도 외롭지 않게 된다. 게다가 그 목적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연대하고 협력해야 하니, 혼자일 수가 없다. 사는 건 결국 혼자이기 때문에 슬픈 것이 아니라, 삶의 목적, 인생의 사명을 찾지 못해서 혼란스러운 게 아닐까.


제목 | 나는 나대로 혼자서 간다

저자 | 와카타케 치사코

출판사 | 토마토 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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