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질한 인간 김경희
제목부터 어이쿠...
찌질한 인간, 김경희
필명도 아니고, 아이디도 닉네임도 아니고, 실명까지 공개하고선 이래도 될까 싶었다. 맥도날드에서 4백원 더 비싼 메뉴를 고르지 못해 망설이고, 사실 별로 바쁘진 않지만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원고 마감이라 바빠요'라고 말한다. 서점 손님이 생각없이 한 말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뒤돌아서 뒷담화하고, 후회한다.
그러니까, 그냥 별 다를 게 없는 생활의 이야기이다.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낄낄거릴만한 웃음 포인트도 사실 없다. 김경희 작가님이 이 글을 본다면, '다들 재밌다고 해요. 다들 웃기다고 해요.'라며 목소리 높여 말할지 모르겠다. ”아니요 작가님, 저는 그래서 좋았어요.” 그냥, 나만 찌질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좋았다.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의 '별일 없이 산다' 가사를 좋아한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 때의 별일 없음은 "너가 위안 삼을 만한 불행은 없다."는 말이다. 가까운 친구에게서도 질투를 할 수밖에 없는 찌질한 보통 인간들은, 애매한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은근슬쩍 불행을 기대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보다 잘 살면 좀 우울해질 것 같으니까. 그래서 연락없이 지내던 친구에게 연락이 올 때, 크게 의미 없이 대답한다.
"늘 똑같지 뭐. 별일 없이 그냥 지내 ㅋㅋ" 이 얘기를 하며 노래 가사처럼 "나 잘 살고 있거든?" 심보를 내비친다.
인스타그램도 다들 그런 마음으로 한다. "봤지? 봤지? 나 별일 없이 산다! 아니, 엄청 잘 산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면 뭔가 씁쓸해진다. 별일 없이, 그냥 늘 그랬듯이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고 있구나 싶다. 마음 속에 늘 새로운 계획과 꿈들은 꿈틀대지만, 그 중 뭐 하나 나를 이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구해줄 만큼의 능력이 없다. 내 머릿 속 꿈은 베이커리 사장, 요가 강사, 에세이 작가, 티소믈리에이지만 현실은 그냥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배우고, 케이크를 굽고, 책을 읽고 글을 써도 그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정말 그대로다. 그러니까 별일 없이 사는 건 맞는데, 그게 또 그렇게 지겹고 찌질해 보인다.
찌질한 친구를 책으로 만나는 일은 그래서 위안이 된다. 직접 만나서 수다를 떨긴 좀 부담스럽고, 그 우울한 감정을 같이 나누어 갖기엔 나도 힘드니까. 한 두 시간 편한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찌질한 김경희의 이야기를 본다. 그래! 책을 두 권이나 낸 작가님도, 내가 한때 꿈꿨던 서점 직원인 작가님도! 이렇게 별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사는구나.
당신도 찌질해서, 다행입니다.
제목 | 찌질한 인간 김경희
저자 | 김경희
출판사 | 빌리버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