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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Sep 08. 2019

찌질한 게 별로인가요?

찌질한 인간 김경희

제목부터 어이쿠...


찌질한 인간, 김경희


필명도 아니고, 아이디도 닉네임도 아니고, 실명까지 공개하고선 이래도 될까 싶었다. 맥도날드에서 4백원 더 비싼 메뉴를 고르지 못해 망설이고, 사실 별로 바쁘진 않지만 어떻게 지내냐는 말에 '원고 마감이라 바빠요'라고 말한다. 서점 손님이 생각없이 한 말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하고 뒤돌아서 뒷담화하고, 후회한다.


그러니까, 그냥 별 다를 게 없는 생활의 이야기이다. 감동적인 에피소드도, 낄낄거릴만한 웃음 포인트도 사실 없다. 김경희 작가님이 이 글을 본다면, '다들 재밌다고 해요. 다들 웃기다고 해요.'라며 목소리 높여 말할지 모르겠다. ”아니요 작가님, 저는 그래서 좋았어요.” 그냥, 나만 찌질한 게 아니구나 싶어서 좋았다.


사진출처, 출판사 빌리버튼 포스트


장기하와 얼굴들 밴드의 '별일 없이 산다' 가사를 좋아한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이 때의 별일 없음은 "너가 위안 삼을 만한 불행은 없다."는 말이다. 가까운 친구에게서도 질투를 할 수밖에 없는 찌질한 보통 인간들은, 애매한 거리의 사람들에게는 은근슬쩍 불행을 기대한다. 다른 사람들이 다 나보다 잘 살면 좀 우울해질 것 같으니까. 그래서 연락없이 지내던 친구에게 연락이 올 때, 크게 의미 없이 대답한다.


"늘 똑같지 뭐. 별일 없이 그냥 지내 ㅋㅋ" 이 얘기를 하며 노래 가사처럼 "나 잘 살고 있거든?" 심보를 내비친다.


인스타그램도 다들 그런 마음으로 한다. "봤지? 봤지? 나 별일 없이 산다! 아니, 엄청 잘 산다!"


그런데 이 말을 하고 나면 뭔가 씁쓸해진다. 별일 없이, 그냥 늘 그랬듯이 시간을 흘려보내며 살고 있구나 싶다. 마음 속에 늘 새로운 계획과 꿈들은 꿈틀대지만, 그 중 뭐 하나 나를 이 지긋지긋한 회사에서 구해줄 만큼의 능력이 없다. 내 머릿 속 꿈은 베이커리 사장, 요가 강사, 에세이 작가, 티소믈리에이지만 현실은 그냥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직장인이다. 아무리 열심히 운동을 배우고, 케이크를 굽고, 책을 읽고 글을 써도 그 현실은 나아지지 않는다. 정말 그대로다. 그러니까 별일 없이 사는 건 맞는데, 그게 또 그렇게 지겹고 찌질해 보인다.


찌질한 친구를 책으로 만나는 일은 그래서 위안이 된다. 직접 만나서 수다를 떨긴 좀 부담스럽고, 그 우울한 감정을 같이 나누어 갖기엔 나도 힘드니까. 한 두 시간 편한 소파에 앉아서 차를 마시며, 찌질한 김경희의 이야기를 본다. 그래! 책을 두 권이나 낸 작가님도, 내가 한때 꿈꿨던 서점 직원인 작가님도! 이렇게 별일 없이 시간을 보내며 사는구나.


당신도 찌질해서, 다행입니다.


제목 | 찌질한 인간 김경희

저자 | 김경희

출판사 | 빌리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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