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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Oct 25. 2019

우리가 그저 다를 뿐이기를

각자의 모습으로 피어난 꽃이기를

동그란 통밀 쿠키를 만들었다. 쿠키 위에 장미 꽃봉오리를 얹어 주었다. 고소한 통밀향과 장미 꽃향이 함께 느껴진다.



동그란 틀로 찍어낸 이 예쁜 쿠키들도 가만보면 저마다 모양이 다르다. 난 이런 모습을 보는 게 재미있다. 어디선가 읽었던 “화엄경”이 떠오른다.



산에 흐드러지게 꽃이 피어 온 산을 덮었는데, 그 꽃 모양이 모두 다르더라.



만 개의 꽃이 만 개의 모습으로 피어나 살아간다니, 얼마나 예쁠까. 온 산에 서로 다른 모양의 꽃들이 바람에 흩날리는 상상을 한다. 서로 다른 향기가 한데 어우러져 바람을 타고 나에게 오는 것을 상상을 한다.




출근길에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을 바라본다. 누구는 작은 미니백에 운동가방에 커피까지 바리바리 들고 종종걸음으로 걸어간다. 누구는 걷는 와중에도 휴대폰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또 어느 누구는 큼지막한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즐긴다. 그리고 그 뒤에 그들을 관찰하는 내가 걸어간다.


사무실 도착해, 자리에 앉아있는 벌집 속의 벌들 같은 사람들을 바라본다. 별 것 아닌 일들로 짜증을 자주 내는 사람, 결정을 잘 못 내려서 눈치만 보는 사람, 늘 웃는 얼굴이지만 단호하게 거절을 잘하는 사람, 열심히 하는 것 같지는 않은데 의외로 맡은 일을 척척 해내는 사람. 장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몇몇 사람들과 장점과 단점이 혼란스럽게 섞여 있는 대다수의 사람들.


그들이 서로 다른 모양의 꽃인지, 애초에 꽃이 아닌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과연 나는 그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어질지 감이 오지 않는다. 매일 누군가에게 욕을 먹고 살지도 모르겠다. 뭐, 그걸 안다고 해서 내가 어찌해 볼 수는 없지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고, 마음을 주고받고, 상처도 나눠가진다. 그렇다고 해서, 서로를 잘 아는 것은 아니다. 너무 달라서 모르기도 하고, 비슷할 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달라서 또 모른다. 결국 서로를 모른다는 결론만 명확히 알 뿐이다.


가끔 누군가의 퇴근 후의 모습들을 생각한다. 회사 안에서의 나는 회사 밖에서와 다르다. 회사 밖에서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만 만나고, 좋아하는 일들만 하니까 밝고, 에너지가 많고, 즐겁다. 회사 안에서는 유동적으로 벽을 만들어 둔다. 함부로 선을 넘지 못하게, 함부로 생각은 할지언정 함부로 행동하지는 못하게 거리를 둔다. 내가 보는 저들도 그렇겠지? 내가 보는 것과 다른 표정으로, 다른 말투로, 다른 이야기들을 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마치 우리가 이 전쟁터에서 연극을 하는 것만 같아 우습기도 하다.




꽃을 선물 받았다. 잘 관리하면 2주 정도는 꽃병에 두고 볼 수 있다고 하던데, 나에게는 일주일이 한계다. 매일 물을 갈아줘도 일주일이 지나면 꽃병 주위에 마른 꽃잎들이 떨어진다. 꽃병 안의 꽃들은 애써 모양을 유지하고 있지만 꽃잎 가장자리가 시들어 말려있거나 갈색으로 변해간다.


종종 어떤 마음이 들어 스스로 꽃을 살 때도 있지만, 꽃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니다. 금방 시들어 버리는 게 싫어서다. 시든 꽃을 치우고, 꽃병을 씻고, 그 주변을 정리하는 게 귀찮아서다. 그런데도 아주 가끔 꽃을 사고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날, 꽃이 시들 것을 생각하며 사지는 않는다. 단 며칠일 테지만 나를 향해 활짝 피어날 꽃을 생각하며 산다. 은은한 향기가 집을 가득 채워줄 것을 생각하며 산다. 그것을 바라보며 흐뭇해할 나를 생각하며 산다.


그냥 사는 게 그랬으면 좋겠다. 어차피 시들어버릴 걸 알지만, 시들기를 기다리며 살고 싶지는 않다. 오늘도 당신과 내가 어쩔 수 없이 부대끼고, 언성을 높이고, 얼굴을 붉힐 것을 알지만, 그 생각을 하며 당신을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언젠가 시들어버릴지라도 그런 일은 오지 않을 것처럼 살고 싶다. 내내 활짝 피어나 주변을 향기로 가득 메워서, 내 곁에 있는 사람이 흐뭇해하길 바라며 살고 싶다. 그래서 꽃을 샀다.


만 개의 꽃이 만 개의 모습으로 피어나

저마다의 향기로 주변을 가득 메우기를


우리가 그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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