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지친 당신에게

차차, 사천 녹차

by 단단

아침 출근의 피곤함을 떠올리면 이보다 괴로운 일이 있을까 싶지만, 출근길보다 힘든 게 퇴근길이다.


다 떨쳐내지 못한 스트레스를 껴안은 채 어둑해진 밖으로 나온다. 주 52시간 시행 이후, 칼퇴근은 대체로 보장되었지만 업무 시간의 강도는 더 세졌다. 배가 고픈 건지 소화가 안 된 건지 알 수 없는 위장 상태를 느끼며 비좁은 버스 안으로 들어간다. 혹시나 회사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까 싶어 휴대폰이나 책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꽤 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창 밖을 보면 여전히 회사 주변을 벗어나지 못했다. 무슨 차가 이렇게 막히나, 한숨을 쉬다 책을 좀 보다가, 휴대폰을 이리저리 뒤적인다. 버스를 갈아타고, 또 생각보다 오랫동안 낑겨있다 보면 집에 도착한다.


아 대체 이게 피곤한 건지, 짜증이 난 건지, 배가 고픈 건지 알 수가 없다. 그럴 땐 가장 빠르고 확실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일단 집에 있는 음식들을 먹기 시작한다. 최대한 빨리 먹으려면 아무래도 탄수화물이다. 그렇게 정신없이 배를 채우고 나면 비로소 정신이 돌아온다.


내가 뭘 한 거지?


점심 먹고 내내 앉아 있느라 더부룩해진 위장은 더욱 더부룩해졌다. 배는 찼지만, 피곤과 짜증은 나아지지 않은 채로 쌓인 설거지거리가 눈에 들어온다.


이 패턴을 끊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할 일을 찾기로 했다. 일단 샤워를 할까, 스트레칭을 할까, 그러다 차를 마시기로 했다.


집에 돌아오면 우선 전기 주전자로 물을 끓인다. 옷을 갈아입고, 가방을 정리하고 나오면 끓은 물이 조금 식어 있다. 바로 그 온도에서 가장 맛있는 차가 있다. 녹차.


녹차는 70도에서 85도 사이의 물에 우렸을 때 가장 맛있다. 녹차는 제다 (차를 만드는) 과정에서 찻잎을 산화, 발효시키지 않는다. 홍차나 보이차보다 여리고 섬세하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 우리면 떫은맛이 우러나고 연한 녹찻잎 특유의 단맛과 감칠맛을 느끼기 어려워진다.



편한 옷을 입고 식탁에 앉아 녹차를 마신다. 한국의 녹차는 일본이나 중국과 같은 다른 산지의 녹차와는 다른 매력이 있다. 섬세하고 달다. 떫은맛이 특징인 일본 녹차는 그 떫은맛이 '감칠맛'으로 표현되고, 그 특유의 맛을 즐기는 사람도 많다. 한국 녹차는 은은한 풀향이 느껴지면서, 입에서 휘감겨지는 달콤한 맛과 향이 있다.


오늘 마신 녹차는 경상남도 사천에서 올해 첫 새싹으로 만든 햇차이자 우전 차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찻잎을 따는 시기'에 따라 차를 분류한다. 24절기 중 '곡우' 5일 전 이른 봄에 딴 찻잎을 덖어서 만든 차인 '우전'은 첫물차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차 산지라고 하면 '보성'이나 '제주'가 떠오른다. 사천 녹차는 최근 많은 관심을 받오 있다. 보성녹차보다 단맛이나 감칠맛이 더 느껴진다.


요 며칠은 퇴근하고 식탁에 앉아 녹차를 마신다. 우아한 연둣빛을 더 잘 보기 위해 하얀 찻잔에 녹차를 따라 마신다. 코를 가까이 대어 향을 느끼고, 차를 입 안에서 굴린다. 최대한 생각은 비운 채로. 그러다 보면, 흥분해서 음식을 먹게 되는 일이 줄어든다. 아무래도 배가 고파서가 아니라, 지쳐서 저녁을 많이 먹었던 게 분명하다. 차를 한 잔 마시고 나서 저녁을 먹으니, 이전보다 적게 먹게 된다. 스트레칭을 하거나 집안일을 할 때 몸이 덜 무겁다.



녹차는 홍차에 비해 담백한 과자와 잘 어울린다. 비건 쿠키들과도 꽤 잘 어울려서, 요즘은 녹차와 콩비지 비건 쿠키를 먹는다. 지난달, 쿠키를 한 번에 많이 만들어 얼려두었더니 든든하다. 쿠키를 세 개 꺼내어 녹차와 함께 먹고, 따뜻한 샐러드를 먹었다.



어제는 보성녹차, 오늘은 사천 녹차를 마셨으니 내일은 하동녹차를 마셔봐야겠다. 내일도, 허겁지겁 저녁을 먹지 않기를. 차 한 잔 하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기를.


브랜드 | 차차

제품명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녹차 차차함)

가격 | 28,000원 (보성/사천/하동 녹차 각각 3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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