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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Aug 17. 2020

버스킹 하듯이 살고 싶어

미숙한 것들을 내보이며 산다는 것

비긴 어게인이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있다. 대부분의 노래는 몇달 전부터 가수들이 열심히 연습한 결과이다. 장소와 관객을 떠올리며 노래를 고르고, 같이 부를 가수들과 합을 맞춰보며 오래 준비했겠지.


계획된 노래들 사이에

가수 헨리가 불쑥 이렇게 노래를 시작할 때가 있다.


"어제 새로 악기를 샀는데요."

"갑자기 이 노래가 생각나는데."


그러고는 계획에 없던 노래를 부른다. 같이 무대에 선 가수들의 흔들리는 눈빛에서 '아 이건 정말 즉흥이구나!' 알 수 있다. 프로 가수로서 완벽한 무대만 하고 싶은 욕심도 있을 텐데, 그는 그렇게 노래를 시작한다. 준비되지 않았기에 틀리기도 한다. 그래도 거리낌이 없다. 나는 그의 그 용기가 당황스러웠다. 만약 내가 저 자리에 있었다면, 좋은 노래만 부르고 싶어서, 실수하고 싶지 않아서, 준비한 것을 더 잘 보여줄 생각만 했을 것이다.


준비 되지 않은 무대에서 하는 실수들은 그를 점점 더 멀리 데려가는 듯 하다. 마치 요리조리 퍼즐이 맞춰지듯 다양한 상황들에 대한 내공을 쌓아가는 것이다. 무엇이든 빨리 배우는 능력은 아마도 그 거리김없는 시도 덕분인 듯 하다.


한 달에 한 번, 차(tea) 워크샵을 열고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하고 싶은 일을 해보고 있다. 나에게 이 워크샵은 즉흥 공연과도 같았다. 나는 겁도 없이 나의 미숙한 것들을 내보이는 데 거리낌이 없었다. 평소의 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선택이었다. 매번 워크샵 홍보문을 올리고 나면, '내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후회가 밀려들었고, 정신없이 준비했다.


워크샵이 끝나고, 집에 와 차 도구들을 씻어 말리고 정리하고 소파에 앉으면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몰려온다. 나를 믿고 와준 분들에 대한 고마움, 너무 큰 에너지를 받아서 벅찬 마음, 내가 줄 수 있는 것을 모두 내어보낸 뿌듯함, 다음을 생각하면 드는 막막함.


불쑥,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뭘까.

버스킹하는 헨리를 보며 생각해본다.


지금을 살고 싶어서.

지금 내가 좋다고 느끼는 것들을 나누고, 나에게 와준 사람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고, 손을 잡고 싶어서.

지금 내가 맞는지, 잘하는지. 그것보다 중요한 것을 알고 싶었다. 내가 나를 벗어나서 무엇이 될 수 있는지 알고 싶어다.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나, 자신있게 내보일 수 있는 나를 넘어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티 워크샵을 몇 번 진행하면서 내가 찾은 것은 이 정도이다.


함께 하면 조금 더 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조금 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하는 일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 같이 얘기해보면 더 나아진다는 것. 스스로 중심을 잡는 것은 중요하다. 중심을 완전히 잃고 무너지지 않는 선에서 움직여본다. 내가 디딜 수 있는 발판 위에 우뚝 서 있는 것보다 위태로워도 옆으로 한발 옮겨보면 이전과 다른 것들이 보인다.


즉흥 연주는 완성도는 낮지만, 기대치가 낮은 분위기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다. 힘을 잔뜩 주고 제대로 활시위를 당겨야 할 때는 절대 할 수 없는 시도들을. 회사를 다니면서, 이것저것 새로운 일들을 벌여보는 일은 마치 버스킹의 즉흥 연주같다.


버스킹하듯이,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마음껏 내 안의 것들을 내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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