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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Nov 22. 2020

자율 출퇴근하는 회사로 이직했더니

하루가 더 짧아진 건 왜일까

자율 출퇴근제


지금이야 코로나 이후 재택근무를 시작으로 다양한 근무 형태가 보편화되었지만 코로나 직전인 올해 1,2월까지만 해도 자율 출퇴근제는 멀고 먼 이야기였다. 그 당시 다니던 회사는 대기업에 걸맞게 '자율 출퇴근제'를 2년째 시행하고 있었지만, 어린아이를 둔 팀의 몇몇 선임급 직원들이 눈치 보며 쓰는 수준이었다.


8시-5시

9시-6시

10시-7시


세 개의 시간대 중에 하나를 골라야 했고, 분기별로 신청을 받았다. 미취학 자녀 가정 지원 제도 정도로 쓰이고 있었다. 아이가 없는 직원들, 결혼하지 않은 직원들은 눈치껏 9시-6시 퇴근을 선택했다. 그래도 우리는 만족했다. 기대하지 않던 주 52시간 정책 덕분에 매일 칼퇴를 했고, 급한 일이 있을 때는 반차나 반반 차를 쓸 수 있었기 때문에 크게 생활에 제약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우리 회사는 자율 출퇴근제야. 10시-3시 사이에만 사무실에 있으면 되고 그 나머지 시간들은 말 그대로 자율이야. 10시 출근해도 되고 3시 퇴근해도 돼. 한 달 단위로 [근무일수 * 하루 8시간]만 채우면 돼. 월초에 몰아서 야근하고, 후반부에 매일 일찍 집에 갈 수 있는 거지!"


그게 가능하다고? 기사나 책에서 다른 회사들의 정말 유연한 유연 근무제를 접했지만 가까운 사람의 생생한 후기를 들으니 부러워졌다. 지금 누리던 칼퇴로는 역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연한 기회로 바로 그 회사로 이직을 하게 되었다.


입사 전 나의 계획은 이랬다. 8시 출근 5시 퇴근을 기본으로 하고, 가끔 야근을 해서 금요일이나 월요일은 3시 퇴근을 해야지. 그리고 집 근처 카페에서 책 읽고 글을 쓰다가 남편 퇴근할 시간 즈음 집에 가면 되겠다! 그 회사에 다니던 이전 회사 동기는 7시-4시 근무를 하고 있다고 했다. 7시 출근... 은 힘들 것 같고 8시 출근은 가능할 것 같았다. 마침 옮긴 회사의 위치가 집에서 가까워서 출근 시간이 50분에서 30분으로 단축되기도 했다.


단 한 가지 내가 크게 간과한 사실만 빼면 계획은 완벽했다.


나는 강제하지 않으면 아침잠을 깰 수 없는 사람이었다.


첫 직장은 8시 출근을 해야 하는 곳이었다. 집이 멀어서 매일 5시 반에 일어나 6시 15분에 집에서 출발했다. 한 시간 조금 넘게 지하철을 타고 회사에 가면 7시 40분이었다. 그 생활을 2년 동안 하면서 단 한 번도 지각한 적이 없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스쿨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7시 10분 버스를 놓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대학시절 나는 9시 수업을 습관적으로 지각하다가 결국 재수강을 했다. 아침 수업을 듣느니 차라니 마지막 수업을 듣는 것이 편했다. 느지막이 일어나 모두가 나간 텅 빈 집에서 나 홀로 느릿느릿 나갈 준비를 했다.


해야 하는 일이라면 몸이 부서질 것 같아도 꾸역꾸역 해내지만 강제성이 없으면 그 누구보다 게으른 사람. 나는 그런 성향이었다. 나의 동력은 좋은 것을 하고 싶다는 마음보다는 나쁜 것을 피하고 싶은 마음 쪽이었다. 미움받는 기분이 싫어서, 남한테 피해 주는 사람이 되기 싫어서 새벽형 인간인 척하며 지내기도 했지만 나의 본성은 '느긋함'이었다.


결국 아무도 강제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출퇴근하는 회사에서 나는 가장 늦게 출근하고 가장 늦게 퇴근하는 사람이 되었다. 마지노선인 10시는 아슬아슬하다는 생각으로 노력한 결과는 9시 반 출근. 자율 출퇴근이라고 하지만 대부분의 직원들은 9시 이전에 출근한다. 그만큼 집에 일찍 갈 수 있다면 차라리 일찍 일어나는 게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은 한다. 몸이 안 따라줄 뿐이지.


일찍 출근하고 일찍 퇴근해서 나만의 시간을 확보하자는 계획은 그렇게 맥없이 실패로 돌아갔다.


도저히 이렇게는 더 이상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미라클 모닝 챌린지'를 시작했다. 6시 이전에 일어나 하루를 더 길고 알차게 보내자는 것이다. 좋다, 정말 좋다. 그래서 벌써 2주째 시도하고 있다. 성공한 적이 없어서 문제지만.


일찍 일어나기 위해 잠드는 시간도 바꿨다. 새벽 1시에 잠드는 습관을 바꾸려고 그 좋아하던 커피를 끊었다. 하루에 커피를 한 잔도 마시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집 청소를 마치면 간단한 스트레칭을 하며 잠의 기운을 불러일으켰다. 매일 11시에 잠들었다. 10시나 9시에 잠에든 날도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똑같았다. 수면 시간만 늘어났을 뿐이다. 물론, 컨디션은 좋았다. 하루를 가뿐하게 보낼 수 있었다.


자율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아주 당연한 논리를 몸으로 경험했다. 어떤 자율은 강제보다 더 어렵다는 것을.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선 지루한 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것처럼. 매일 시도하고, 실패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는 나를 보며 남편은 조심스럽게 말한다.


"이제 포기할 때도 되지 않았을까..."


그렇네. 차라리 포기하고 마음 편히 잠을 자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올해가 가기 전 새로운 습관을 만들어 봐야지. 8시 반 출근 5시 반 퇴근.


나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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