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쑥두유와 오메기산도
빵과 과자를 만들 때는 밀가루, 우유, 버터, 계란 등으로 맛과 식감을 낸다. 이 기본 맛이 밋밋하게 느껴질 때는 맛과 향을 풍부하게 해주는 재료들을 추가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초콜릿과 녹차. 디저트의 세계에서 바닐라, 초코, 녹차는 제일 인기 있는 맛이다. 그다음으로 다양한 맛들이 있는데 홍차, 딸기, 커피, 치즈, 딸기, 망고 등등이다.
나는 왜 이 대열에 '쑥'이 들어가지 못했는지 궁금하다. 쑥은 씁쓸한 맛이 특징이다. 봄나물들이 그렇듯 약초 같은 향도 난다. 된장국과 잘 어울려서 어릴 적에 엄마는 봄이면 쑥을 가득 넣고 된장국을 끓여주었다. 신기한 건, 된장과 잘 어울리는 이 씁쓸한 쑥이 디저트의 재료로 쓰이면 아주 다른 차원의 맛과 향을 표현해낸다는 것이다.
마치 쌉싸름한 말차를 진하게 차로 우려서 마시는 것과 말차를 넣은 디저트를 먹을 때의 느낌이 다른 것처럼. 쑥이 단맛의 설탕이나 메이플 시럽과 함께 어우러져서 디저트로 만들어지면 쑥 자체가 가진 매력 중 씁쓸함은 부드러워지고 그 위에 단맛을 단단하게 받쳐낸다.
우리 전통 과자와 떡에서 쑥을 많이 사용한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봄이면 집집마다 쑥갠떡, 쑥버무리 등을 해먹었다. 물론 나도 경험해 보진 못한 할머니 시절의 이야기지만, 쑥을 넣은 떡은 늘 반갑다. 떡집에서 쑥갠떡과 쑥버무리, 쑥인절미, 망개떡과 같은 메뉴를 보면 하나씩 집어 오게 된다.
쑥두유
쑥을 가장 간편하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방법은 '쑥두유'를 해 먹는 것이다. 미리 쑥을 씻어 데친 후 얼려두면 더욱 편하다. 두유와 데친 쑥, 메이플 시럽을 넣고 믹서에 갈아주면 끝! 생쑥을 사용하지 않고, 쑥가루를 물에 개어서 쑥두유를 만드는 방법도 있다. 쑥가루로 만든 쑥두유도 맛있지만, 조금이라도 덜 가공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생쑥으로 쑥두유를 해 먹는다.
제철 채소들은 철이 지나면 구하기가 쉽지 않다. 쑥도 그렇다. 쑥을 좋아하는데, 한 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라는 것이 아쉽다. 쑥을 내내 두고 먹고 싶다면, 쑥을 데쳐서 얼려두면 된다.
제철 재료로 요리를 하고 나서 장을 보러 가는 것이 더욱 재밌어졌다. 특히 봄은 더욱 그렇다. 겨울 동안 보지 못했던 초록색 채소들이 눈에 보인다. 더욱이 초록의 빛을 내며 통통하게 기운이 오른 채소들을 보면 나까지 힘이 난다. 제철에는 가격도 저렴해서 자주 먹고 많이 먹는다.
이전에도 제철 채소라는 말을 알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마트에 가면 다 있겠거니 생각했다. 그때는 사시사철 보이는 샐러드 채소나 수입과일을 사다 먹었던 시절이라 철이 지나면 먹기 어려운 채소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지 못했다. 몇 주 전에 냉이로 된장죽을 해 먹었던 게 생각이 나서 저녁에 동네 마트에 갔다. 지금이 두릅 철이라, 마트에는 두릅이 많이 보였다. 두릅, 냉이, 부추 사이로 냉이가 어디있나 눈을 크게 뜨고 찾아봤는데 냉이는 없었다. 냉이는 3~4월에 나는 채소였다. 4월 말인 지금은 냉이를 볼 수 없는 것이다. 벌써 냉이를 볼 수 없다니, 몇 번 못 먹었는데. 내심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년 봄에는 냉이를 자주 해 먹어야지! 정해진 때에만 만날 수 있다는 것은 아쉽기도 하지만, 만나지 못하는 기간 동안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다시 만날 때 참 반갑다.
화장품에 쑥만큼 기특하게 쓰이는 채소도 없을 거다. 진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알려지고, 쑥을 함유한 크림과 에센스가 많이 나왔다. 피부 진정 외에도 '여자한테 좋다'라고 알려져 있다. 여성 청결제나 생리대에도 쑥이 사용되고 뜸으로도 쓰인다. 혈액순환, 콜레스테롤 수치 완화, 해독 등등 봄나물 중에서도 효능이 많은 채소다. 그렇지만 이른 봄에 난 쑥이 몸에 좋은 효능이 있고, 음력 3월이 지난 쑥은 효능이 떨어진다고 한다. 역시 쑥은 제철에 많이 사 두고 데쳐서 얼려두어야 하나보다.
제철 재료의 매력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초반에는 '돈을 번다'는 생각에 신나서 이것저것 사들이는 것에 재미를 붙였었다. 일정 범위 안에서이지만, 사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살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엄청난 일이었다. 요리를 처음 시작할 때도 그랬었다. 요리책을 잔뜩 샀고, 인스타그램에 올릴만한 비주얼의 요리들을 만들었다. 그런 요리들은 대게 수입 식품 코너에서 재료를 구입해야 했다. 제철도 아니고, 바다 건너와야 하는 수입재료들이니 당연히 비쌌다. 한 끼에 외식보다 훨씬 비싼 재료비가 들었다. 무엇보다 만드는 과정이 수고로웠고, 설거지 거리도 많았다. 그래도 예쁘고 맛있으면 괜찮다고 생각했다.
제철 재료들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일상을 보는 관점에도 변화가 조금씩 일어났다. 나의 에너지와 시간을 정말 중요하고 좋아하는 것들에 쏟고 싶어 졌다.
수입식품점에 가려면 운전하고 장 보는데 2시간이 걸린다. 그렇게 대대적으로 장을 보면 한 번에 많이 사게 된다. 두 손 무겁게 재료들을 안고 집에 돌아오면 '대단한 요리를 하겠어!'라는 생각이 든다. 요리하는데 또 한 시간이 흐른다. 만들고 사진 찍고 먹고 설거지하고 나면 한 끼 식사만으로 온몸이 지친다. '이래서 다들 사 먹는 건가' 싶다.
요즘에는 퇴근길에 동네 마트에 간다. 그날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채소가 뭔지 본다. 지금 제일 많이 보이고 저렴한 채소가 '제철 재료'가 된다. 그 재료 딱 하나만 산다. 그리고 집에 가서 된장, 간장, 고추장, 들기름, 낫또 등등 늘 집에 있는 기본재료들과 함께 요리한다. 그릇도 최소한으로만 사용한다. 요리하면서 생긴 설거지는 기름기가 없으면 물로 휘리릭 씻는다. 요리를 마치고 식사를 다 하고 나서도 힘과 시간이 남는 것이다.
남는 시간에 내가 요리만큼 좋아하는 다른 일들을 한다. 책을 읽고, 요가를 하고, 차를 마시고 이렇게 브런치에 글을 쓴다. 봉태규 작가가 [우리 가족은 꽤나 진지합니다]에서 쓴 한 대목이 떠오른다. 아내인 하시시박이 임신을 하고 여전히 사진작가로서 활동을 하는데, 사람들은 아내가 체력적으로 힘이 부칠 거라고 생각하고 일을 안 주려고 한다고. 그러나 정작 하시시박은 자신의 체력의 범위 내에서 전보다 더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고. 심지어 필름 카메라로 촬영했던 날, 단 한 장의 사진도 버릴 것이 없었다고. 하시시박은 그렇게 효율적으로 작업을 하고 남는 시간과 에너지를 가족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다. 나와는 그 사용처가 다르긴 하지만, 나도 내 일상을 좀 더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데' 사용하고 싶어 졌다. (김신지 작가의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게 취미'라는 책도 정말 좋아한다.)
내가 요리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스스로를 위해 만들어 먹는 즐거움 때문이다. 그렇다면 굳이 운전을 해서 수입식품점에 갈 필요도, 복잡한 과정의 어려운 요리를 할 필요도 없다. 좋은 재료로 간단하지만 건강하게 만들어 먹으면 그만이다.
제철 재료가 좋은 이유는 쉽게 구할 수 있다는 것 말고도 많다! 내가 가장 열광하는 부분은, 재료가 가진 매력과 장점이 가장 극대화된 상태로 먹을 수 있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나 '딱이다' 싶은 시기가 있다. 제철 재료를 먹는 일은 채소들의 전성기를 함께하는 것이다. 매일매일 누군가의 '가장 빛나는 시기'를 함께 한다는 것, 정말이지 감사한 일이다. 나는 채소에게 늘 감사한다. 오늘도 나를 위해 너를 내어줘서 정말로 고맙다고.
제철 채소가 좋은 또 하나의 이유는 '저렴하다'는 것! 쑥, 방풍나물, 미나리, 냉이, 두릅 이런 제철 채소들은 한 봉지에 대개 2~3천 원이다. 곁들일 두부나 낫또, 현미밥의 원가가 추가되어도 역시 저렴하다! 제철 채소 식사를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생활비가 줄어드는데, 그 돈으로 좋아하는 요리나 베이킹, 티(tea) 클래스들을 들으러 다닌다.
쑥 오메기 산도
쑥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면, 쑥은 디저트로 먹을 때 가장 매력적이다. 쑥 티라미수, 쑥 크림 케이크, 쑥 라테 등등 쑥은 양과자에도 녹차만큼이나 잘 어울리지만, 한식 과자에서 그 매력이 제대로 발휘된다고 생각한다. 대표적인 것이 오메기떡! 앙금을 쑥떡으로 감싸고 겉에 팥배기를 묻힌 그 맛을 나는 정말이지 좋아한다. 제주도에 놀러 갈 때면 꼭 오메기떡을 사 먹는다.
오메기떡을 케이크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쑥가루와 생쑥을 넣어 케이크 시트로 구워 내고 오메기의 핵심인 앙금을 사이에 샌드 했다. 그 이름은 '오메기 산도'!!! 오메기 산도를 만든 그다음 평일에 매일매일 오메기 산도 먹을 생각에 들뜬 마음으로 퇴근을 했었다.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의 저자 이나가키 에미코는 냉장고 없이 산다. 당장 냉장고를 없앨 생각은 없지만, 이나가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냉장고 없이 사는 삶도 가능하겠구나 싶다. 냉장고 없는 삶은 단순히 '냉장고만 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일상을 단순화함으로써 정말 나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는 것이다. 모두 그녀처럼 살 필요는 없다. 나는 냉장고를 없애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조금씩 일상을 '넣고 빼고'의 기술로 단순화시키고 있다. 심플해진 내 일상이 좋다.
"이게 없으면 안 돼" "이게 있으면 편해" "이게 있으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어"하는 말에는 지쳤다. 그래서 우리는 정말로 행복해졌을까?
내게 무엇이 필요한지 결정하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나가키 에미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