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라디오 응모] 다르게 일하고 싶은 당신에게

단단 작가가 소개하는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by 단단

몇 년 전 독일과 핀란드의 자율적인 근무 환경을 다룬 다큐를 보면서 '저렇게 일하는 게 가능해?' 라며 신기해했다. 머나먼 남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세상 일은 알 수 없다더니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코로나로 내 인생에는 없을 것 같았던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올해 여름에는 자율 출퇴근제를 시행하는 회사로 이직했다. 원하는 시간에 출근하고, 할 일을 다 마치면 일찍 퇴근하고, 몸이 안 좋으면 재택근무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전 회사를 다니던 작년부터 주 52시간 덕분에 '칼퇴의 달콤함'을 맛보았지만 칼퇴를 해보고 나니 오히려 깨달았다. 직장인은 '업무 성과'가 아니라 '시간과 공간'의 자유를 내어준 대가로 돈을 벌고 있었다는 것을. 그동안 노동력의 대가로 돈을 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공간에 있는 대가로 돈을 벌었던 것이다.



'소속된 조직 유무'라는 주요한 차이가 있지만 8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근무 형태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업무 형태는 반절쯤 프리랜서라는 생각이 든다. 한 발짝 더 나아가 정기적인 월급, 팀원들과의 협업 마저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프리랜서 생활은 어떨까. 주 52시간, 자율 출퇴근과 재택근무가 어떻게 일상을 변화시키는지 경험하고 나니 시공간을 더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프리랜서의 일상이 궁금해졌다. 그즈음 브런치에서 귀리밥(도란) 작가의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를 보게 되었다.



어떻게 일하고 생활하는지에 대해 솔직 담백하게 써 내려간 이 브런치 북은 프리랜서에 대한 이야기이면서, 회사를 다니는 내 이야기이기도 했다. 더 이상 '어떻게 일하는가'에 담긴 의미가 '보고 잘하는 법', '깔끔한 기획안 쓰는 법'과 같이 기존의 정해진 형태에 능숙하게 맞춰나가는 것을 말하는 시대가 아니게 되었다.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허물어졌다. 이전에는 회사에 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퇴근의 의미가 없었다면, 지금은 정해진 시간, 정해진 공간이라는 시공간의 분리가 허물어졌다.



작가의 글을 읽으며, 귀리밥(도란) 작가가 보내는 프리랜서로서의 일상이 요즘 직장 생활과 비슷한 모습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 초반에는 빨리 일을 해치우고 빨리 놀고 싶었는데 요즘은 요령과 탄력이 붙었달까. 직장생활을 하던 시절엔 결코 가질 수 없었던 아침의 여유를 부린다. 거실 창가 앞에 앉으면 바깥이 내려다보이는데, 출근과 등교를 위해 사람들이 한둘씩 건물에서 나오고 도로에 차량이 늘어난다. 멀리 산의 능선이 보이고, 그 주변으로 새로이 짓는 건물의 중장비들이 바삐 움직인다. 저 공사장의 인부들은 몇 시쯤 아침을 먹고 나왔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일한 만큼 돈을 받는 입장이 나와 같다고 느낀다. 어쩐지 반갑다.
3화, 프리랜서의 일과가 궁금하다면


두 번째 이직은 순전히 자율 출퇴근제 때문이었다. 일찍 출근한 만큼 일찍 퇴근할 수 있는 회사라는 게 마음에 들었다. 이직을 결심할 즈음, 읽고 쓰는 취미를 더 많이 하고 싶다는 갈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버는 돈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읽고 쓰는 시간을 더 확보하고 싶었다. 8시 출근, 5시 퇴근 후 집에 오면 늦어도 6시일 테니 저녁 먹고 집을 치우고 8시부터는 책을 읽을 수 있겠다는 계산이었다. 아니면 일주일에 3일은 10시간씩 근무를 하고, 나머지 2일은 5시간씩 근무하는 방법도 있다. 어떻게 하면 일을 빨리 해치우고 취미 생활을 누릴지 즐거운 고민을 했다. 막상 출근을 해 보니 자율 출퇴근제의 묘미는 이른 퇴근이 아닌 오전의 여유에 있었다. 그 전까지의 출근이란 머리도 채 말리지 못하고 뛰쳐나가 사람들이 가득 찬 버스에 끼어 어딘가로 실려가는 것이었다. 출근 시간을 늦추니 평일 아침의 풍경이 달라졌다.



요즘 아침의 모습은 이렇다. 느지막이 일어나 천천히 스트레칭으로 몸을 깨우고, 따뜻한 차와 과일을 먹으며 책을 읽는다. 한산한 버스에 앉아 창 밖을 보며 회사로 향한다. 이 시간에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누굴까 관찰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이 시간에 출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침의 여유만큼 저녁이 짧아지는 것 아닌가 걱정했지만 오히려 저녁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9시 출근 6시 퇴근하던 시절 출퇴근 만원 버스에 시달리다 집에 돌아오면 저녁 먹고 멍하니 텔레비전을 보거나 누워 있던 날이 많았다. 출퇴근 전쟁에서 힘을 빼지 않으니 집에 와서 이전보다 편안한 저녁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자율 출퇴근제로 그간 묶여있던 시간 숨통이 조금 트이는 기분이었다. 스스로의 리듬에 맞게 시간을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은 일에 쓰이는 시간을 최적화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에게 맞는 시간에 일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시간에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직장인은 시간 노동자이다. '연봉을 올려주는 줄 알고 이직했는데 시급으로 계산하니 줄어들었다.'는 이직 후기를 본 적이 있다. 프리랜서는 시간당 업무 효율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지만 직장인은 회사에 있는 시간을 잘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 귀리밥(도란) 작가가 오전의 여유를 통해 시간당 업무 효율을 높였다면, 나는 오전의 여유를 통해 출근 후 피로를 줄인 셈이다.


어쨌든 일을 하려면 책상이 필요하다. 요즘 디지털 노마드족이 많다 해도 디지털 기기를 얹어놓고 자판을 송송 두들길 정도의 테이블은 있어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해고를 당할 때도 '책상을 뺀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책상은 일의 기본이자 바탕, 일의 시작, 소속감을 담아놓는 보금자리다.
프리랜서 작가인 나도 당연히 책상이 필요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게 작업실의 여부를 물었다. 당황스럽지만 나는 작업실을 구할 여력이 없을 뿐만 아니라 다시 출퇴근의 압박을 받고 싶지 않았다. 일과 생활공간을 분리하는 건 프로답고 좋은 행동이 분명하지만, 단점 역시 분명하다.
5화, 테이블이 필요해



3월부터 총 3차례의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한 번 재택근무가 시작되면 최소 2달을 지속했고 합치면 올해의 반을 재택근무로 보낸 셈이다. 초반에는 식탁에서 근무를 했다. 학생 때부터 쓰던 책상을 신혼집에 가져왔는데 쓸 일이 없어서 몇 년 전에 처분했다. 집에서 노트북을 올려두고 자판을 두들길 공간은 식탁밖에 없었다. 식탁에서 글을 쓰는 작가들도 꽤 있다고 하던데 다들 어떻게 집중하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식탁에 앉아 있으면 부엌에 그릇과 냄비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모습, 거실 테이블에 방치된 커피잔, 펼쳐둔 요가매트가 눈에 들어와서 정신이 없다. 애써 식탁 밖으로 시선을 두지 않으려고 노력하니 이번에는 식탁 위에 놓인 물건들이 눈에 들어온다. 비타민, 유산균, 커피포트, 휴지통, 지워지지 않은 식탁 상판의 얼룩들. 해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더 심해진다. 바닥의 먼지와 머리카락이 반짝이는 햇살에 반사되어 '나 여기 있어요.' 존재감을 뽐낸다. 결국에는 참지 못하고 중간중간 짬을 내어 설거지를 하고, 바닥을 쓸게 된다.



코로나가 내년까지 장기화될 거라는 기사들을 연이어 보면서 결심했다. '나만의 책상을 들여야겠어.' 귀리밥(도란) 작가는 책상을 방으로 들여놓고 나서 업무 효율이 높아졌다고 했다. 나 또한 작은 방에 노트북과 책 한 권을 겨우 올릴 수 있는 책상을 들여놓은 후 전보다 일에 집중하기가 수월해졌다. 우선 시야에서 보이는 것이 달라졌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책상은 창문 커튼을 마주 보고 있다. 시야에 보이는 것이 하얀 커튼뿐이니 딴생각이 줄었다. 식탁에서 근무할 때는 집중이 잘 되지 않아 일하는 시간이 늘어져 야근을 종종 했다. 차라리 사무실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집에서도 충분히 일의 리듬을 탈 수 있게 되었다.



귀리밥(도란) 작가가 회사를 떠나 프리랜서 생활을 한 지 5년이 되었다고 했다. 그 5년 동안 회사는 참 많이 바뀌었다. 작가가 경험했던 '아파도 회사에 일단 출근은 하라'거나 '워크숍에서 춤을 추라'라고 강요하는 분위기의 회사들이 줄었다. 귀리밥(도란) 작가가 프리랜서가 되겠다는 결심을 했던 때의 마음이 같은 선택을 하는 지금의 직장인들과 다를 수도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로서의 일상을 소개하는 이 브런치 북이 여전히 의미 있는 것은 '정해진 삶의 틀에서 벗어나 보는 것'이 삶을 나답게 이끌어 나가는 데 얼마나 중요한 경험인지 알게 해 주기 때문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사업에 성공했다는 이야기보다 가깝고 편안한 이 이야기를 통해 내 인생의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보게 된다. 완전히 달라진 삶보다 조금 더 나아진 삶이 어쩌면 더 만족스러울 수 있다. 자율 출퇴근으로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었지만 고작 한두 시간 앞뒤로 움직일 뿐이었다. 재택근무로 사무실이 아닌 나만의 공간에서 일하게 되었지만 집이라는 공간이 애초에 나에게 완벽하게 맞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전혀 생각지 못했던 '옵션'이 생기고 나니 그 작은 틈에 적지 않은 변화가 들어왔다. 아침의 티타임과 독서, 출퇴근길의 텅 빈 버스, 햇살이 비치는 오후의 집 풍경, 취향대로 고른 점심 메뉴는 생각보다 꽤 즐겁고 편안했다.



물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재택근무의 어려움도 있다. 일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으니 확인 가능한 업무 성과로 나의 수고를 증명해야 하고, 말이 아닌 글로 하는 커뮤니케이션은 정확도가 떨어진다.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책상에 앉아 메신저와 메일로 업무를 할 때면 홀로 고립되어 일한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점심시간에 동료들과 커피를 마시며 나누던 소소한 대화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자율 출퇴근제도 불편한 점이 있다. 일하는 시간이 서로 달라지니 커뮤니케이션을 해야 할 때 상대가 퇴근을 해버렸거나 아직 출근하지 않아서 업무 처리가 지연되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프리랜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세상에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호기심을 갖고 스스로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어떻게 일하고 어떤 일상을 보낼 때 조금 더 자유롭다고 느끼는지? 이 자유로움이 내가 더 나답게 일할 수 있게 해 주는지?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 수 있게 하는지? 지금 나의 일상이 내가 선택한 것이 맞는지? 아니라면. 어쩔 수 없이 등 떠밀리듯 살고 있다면, 어떻게 나아질 수 있는지?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는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라고 말한다. 남들과 달라져도, 과거의 꿈과 달라져도, 주변의 기대와 달라져도, 괜찮다.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를 읽으며 당신도 스스로에게 물어주길 바란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지?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무게중심은 이리로 또는 저리로 옮겨보는 우리 모두의 변화를 응원한다.





<브런치 라디오> 시즌 2 응모합니다.

단단 작가가 소개하는 브런치북 『프리랜서지만 잘 먹고 잘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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