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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단 Jan 30. 2021

편견으로 시작한 책이 있나요?

슬픔이여 안녕, 프랑수아즈 사강

18살에 쓴 첫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런 천재들이 쓴 글에는 공통점이 있다. 글이 굉장히 '감각적'이라는 것이다. 풍부한 경험과 지식이 쌓여 빛나는 글이 있고, 반짝이는 감각만으로도 눈 부신 글이 있다. 천재들의 글은 감각적이고 망설이지 않는 속도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한 동안 읽지 않았다. 내가 갖지 못한 재능이 부러웠고, 그래서 그 '감각'을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이라고 생각해버렸다. 말도 안 되는 열등감이었다. 열등감은 비교 가능한 대상에게 품어야 하는 건데, 나는 천재 작가들을 상대로 나 자신을 비교했다.


프랑수아즈 사강


글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나는 글이 시대를 담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시대를 관통하는 고전이 오래도록 사랑받는 이유는 시대를 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간이 아닌 감각만으로 이루어진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굳이 작가와 작품을 연결시키는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좋은 작품'을 찾아읽기보다 '좋아하는 작가'의 팬이 되어 그의 책을 연달아 읽는다. 사강이 평생도록 보여준 순간적인 삶의 방식이 나는 '좋아지지' 않았다. 끊임없이 사랑을 찾아 헤매고, 마약과 도박으로 채운 그의 일상을 먼저 접하고 그의 첫 소설 '슬픔이여 안녕'을 읽었으니 작품에 대한 편견을 먼저 가지고 시작한 것이다.


팔로우 하던 독서 계정 여럿에서 최근 부쩍 사강의 책 후기가 올라왔다. 대체 사강의 작품이 어떻길래? 사강의 첫 작품 『슬픔이여 안녕』은 그렇게 읽게 되었다.


나는 18살의 사강을 떠올리며 책을 읽었다. 중산층의 여유와 권태, 이지적인 여성에 대한 감탄, 사랑에서 마음과 육체를 분리하는 초연함. 그리고 18살의 나를 떠올렸다. 한창 대학 입시 공부를 하던 시절의 나 또한 주인공 세실과 비슷하게 공상에 자주 빠졌다.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을 짐작하고, 머릿 속으로 어른들의 심리를 분석하고, 스스로의 롤모델을 만들어 감탄했다. 따뜻한 사랑을 하기보다 뜨겁게 사랑받고 싶었고, 어떤 관계에서든 우위에 서고 싶었고,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다는 상황이 감사보다는 권태롭기도 했다. 공부란 대개 열정보다는 권태와 더 흔하게 어울리니까.


육아 프로그램에서 어린이의 거짓말에 대해 이야기한 것을 보았다. 어린이들이 "괴물을 만났어요." 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은 거짓말이 아니라 진실이란다. 그들은 상상으로 만들어낸 존재를 현실의 자신과 연결한다. 그것이 어린이들의 세계관이다. 그리고 어른이 되면서 이 상상력을 차츰 잃어간다. 18살의 세실은 어른이 되기 직전을 겪고 있다. 어른이 되기 위해 천진함, 상상력, 현실성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는 마지막 시기이다. 그리고 이 시기가 어떻게 끝이 나느냐면 그때까지 경험하지 못한 크나큰 절망과 슬픔을 만남으로써 끝이 난다. 이 책의 제목 『슬픔이여 안녕』은 goodbye가 아니라 hello다 (원제 Bonjour Tristess) 여름을 지나면서 세실은 어떠한 사건으로 큰 슬픔과 절망을 겪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다가온 슬픔을 향해 인사한다. '왔구나, 슬픔. 이제 시작되었구나.'


사강은 평생토록 사람들이 작품과 자신을 연결짓는 시선에 불쾌해했다. 사강이 이 시대의 작가였다면, 그 성적인 필터와 조롱에 시원하게 일갈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닌가. 여전히 작품을 읽고 작가의 연애사나 캐는 사람들이 있으니, 인간의 어쩌지 못하는 지질한 욕구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굳이 읽을 필요 없다고 여겼던 작품이었지만, 읽으며 자신의 떠올리고, 인간의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을 보면 오래도록 읽히는 작품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다. 역시 무엇이든, 누구든 만나기 전에 판단하고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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