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혼여행을 스페인으로 떠납니다.
4년 전 5월, 그나마 꽤 오래 다닌 회사를 때려치우고 '파리에 가서 살 거야!' 했다.
그 꿈이 무산되곤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생일을 앞두고 유럽여행을 계획했었다. 서른 살 내 생일에는 파리 에펠탑을 보고 싶었던 기억으로 다시 여행을 준비하는 것에 박차를 가했다. 부랴부랴 숙소를 알아보고 끊어 놓은 비행기보다 더 싼 가격의 직항이 나오자마자 수수료 따위는 안중에도 없이 새로 끊었다. 무한도전의 하하가 끌고 나온 캐리어가 사고 싶다고 수소문해서 택배가 아니라 바로 가서 살 수 있는 곳을 알아보곤 거금을 들여 사 오기도 했었다.
아직도 나의 블로그 여행기는 끝이 나지 않았고 4년 하고도 4개월이나 지난 지금 새로운 여행을 떠난다.
신. 혼. 여. 행
지난 유럽여행에서 아쉬운 점이 있다면 좀 더 글로 남길 수 있을만한 콘셉트가 있었으면 좋았을 걸 하는 점이었다. 하지만 여행이라는 것이 내가 무슨 직업 작가도 아닌데 그렇게 될 리 만무하다. 이번에는 좀 그래 볼까 해도 너무 나도 명확한 콘셉트를 가진 여행. 신혼여행이라.
밤마다 파티가 열린다는 민박이나 호스텔은 쳐다보지도 않은 채로 안락하고 서비스 좋은 다시는 묵지 못할 숙소를 고르고 있으니 그저 이번에는 그 명확한 콘셉트에 충실해야지 싶다.
여행을 준비하는 일은 굉장히 설레는 일이다. 하지만 신혼여행은 좀 다른 것 같다고 하면 이 글을 볼 신랑이 슬퍼할까?! (어떻게 다른지는 쓰지 않을 테다.)
나에게 여행이란 떠나면 그만이다. 떠난다고 했으면 나머진 그냥 알아서 되는 거다. 딱히 보고 싶은 것도 없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다. 그냥 이 일상에서 나가는 것. 모든 것이 낯설기만 한 곳에서 낯설지 않은 것처럼 누비는 것. 그 이상의 여행도 없고 그 이하의 여행도 없다. 딱 하나 지난 여행의 결과로 보건대,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오는 것이 필수다.
떠난다는 것은 돌아오기 위해 떠나는 거다. 이왕 떠나는 거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온다면 그 여행은 그걸로 완벽해지는 거라 믿는다.
이번 여행은 두 사람 다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오는 것이 목표다. 혼자 일 때는 더 겁나고 힘든 일이 많지만 둘이어서 괜찮겠지라는 건 방심이다. 중요한 건 타지, 타인으로부터 오는 공포나 두려움에서 무사해지는 것도 있겠지만 같이 가는 동행자와의 관계도 역시 건강하고 무사히 돌아와 져야 한다. 끊임없이 그 생각을 한다. 싸우지 말자.
하지만 쉽지 않다. 혼자 하는 여행이 익숙한 나에게 누군가와의 동행은 짧으면 짧을수록 좋고 적당히 떨어져 지낼 줄 아는 사람이면 더 좋고, 오다가다 여행지에서 몇 시간 동행하는 정도라면 더더욱 좋다.
반면에 같이 잠을 자고 같이 걷고 같이 먹고 같이 쉬어야 하는 일정을 함께 하는 건 나뿐이 아니더라도 누구에게나 고역일 수 있다. 여행을 가본 사람들 대부분이 느끼는 일말의 감정 중 하나가 '혼자 와보고 싶다.' 일 것이다. 혼자가 좋아서는 아니다. 혼자가 주는 편리성 때문이다. 돈은 좀 들더라도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장점이 일상에서보다 배가 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이다. 타지에서 생기는 억울하고 힘든 일이나 예상치 못한 일들 앞에 서면 당연히 혼자여서 너무 힘들었다고 할 수밖에..... 나 역시 첫 파리에서 그러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둘이 떠나야 하고, 둘이 가야 더 멋질 수밖에 없는 신혼여행을 간다. 숙소를 잡고 교통편을 미리 알아보는 여러 상황들이 연신 두통을 유발하지만 그래도 지금 이 순간은 떠난다는 그 사실 하나 만으로 너무 좋다. 아무 생각 안 하고 싶을 만큼.
프랑스,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체코, 독일, 벨기에, 영국을 다녀왔던 지난 여행에서 내가 유일하게 뺴 놓은 곳 스페인. 신혼여행지는 바로 이 스페인이다. 스페인을 빼놓은 여러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신랑이다.
그 사람과 몇 번의 해외, 국내 여행으로 알게 된 것 중 여러 내용들을 종합해 봤을 때 나의 판단으로 그에게 스페인이 잘 맞을 거라는 생각이었다. 사실 아무도 모른다. 나 조차도 직접 같이 가 봐야 아는 것이니,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안 가본 곳이기 때문이다. 가 볼 수 있었지만 첫 번째 이유로 빼놓았고 그래서 두 번째 이유를 만든 격이다. 안 가본 나라.
그리고 신혼여행이라는 점.
우리가 떠나는 11월은 동남아의 성수기가 시작되는 시기다. 물과 휴양을 좋아하는 신랑과 유적, 역사, 도시를 좋아하는 나의 취향이 적절하게 만나지는 곳.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
11월에 본격 떠나는 우리의 신혼여행은 파리를 통해 들어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그라나다,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 테네리페 섬, 마드리드로 가는 일정으로 14박 15일을 보낸다.
명확한 콘셉트는 신혼여행이라는 점. 타지에서 타인으로부터, 그리고 우리 서로의 관계로부터 무사히 건강하게 돌아올 것을 기대하며 여행기의 첫 글을 남긴다.
여담이지만 명확하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신혼여행도 어차피 그냥 여행인 것을. 느끼고 오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