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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Aug 07. 2016

제주 살아서 어때?

아직 잘 모르겠다. 하지만 그래도 더 살아볼 만 하다.

제주에 산지 이제 막 5개월로 접어들었다. 겨우 한 계절을 보냈다. 입추인 오늘, 이제 두번째 계절을 보내 줄 준비를 한다. 제주의 봄은 추웠다. 제주의 여름은 덥기도 더웠지만 인생의 최대 위기처럼 느껴지는 습기 문제가 더 컸다. 그리고 아직 더 더운 날들은 입추와 관계없이 남아 있다. 휴.


내가 제주에 산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들을 제주에서 만나거나 서울출장, 혹은 개인사정으로 올라가 만나면 나에게 항상 같은 질문을 한다.

"제주는 어때? 살만 해? 좋아?"와 같은 것.

처음엔 무조건 좋다고만 대답했다. 서울에서 시달리던 불면증도 사라졌고 무엇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많아져서 좋고. 그런데 지금은 또 여러가지 대답을 하고 있으니 제주에 살아 좋은지 안 좋은지는 사실 더 살아봐야 알 것 같다.


#1 약속해도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다는 것.

타지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외로움, 혹은 고독감과 같은 텅 빈 마음 일거다. 사람들과 어울려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하루를 보내던 나와 같은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조건일거다. 약속을 한다한들 만날 수 있는 친구가 없는 섬에 갇혀 있다는 것 말이다. 그렇다고 이 곳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귄다는 것이 그 외로움, 혹은 고독함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걸 이제는 안다. 만나는 사람이 한정적이고, 업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전부이다 보니 그들과 나눌 수 있는 이야기는 미팅 후 타지인이면 지금 살고 있는 어려움 정도, 제주 사람이면 제주는 어떤 곳인지 묻는 정도의 개인사가 전부 일 수 밖에 없다. 나도 그 만큼 나이가 먹었고 나를 만나는 누구들도 다 하나같이 무언가 털어놓고 친구가 될만큼 순수한 때는 지났기 때문에.

새로운 환경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모습을 선사한다.

생애 첫 독립을 제주에서 한 나는 하루가 지루하지 않다. 사실 그 외로움과 고독감이라는 텅 빈 감정보다는 제주에서 나의 생활을 다져나가기 바쁘다. 일을 해야 하고 집안일을 해야 하며 건강을 챙기고, 책도 보고 , 바다도 보고, 산도 보고, 아, 그냥 하릴없이 보일 만큼 바쁘다. 가끔 어울려 회사 동료들과 술 한 잔 하고 나면 그냥 그걸로 만족된다고나 할까. 나는 이런 모습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구나. 생각을 하게 만든다. 하루가 지루할 틈이 없이 바쁜 것은 아니다. 굳이 그럴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일주일치 밀린 빨래와 청소를 하고 창 밖의 풍경을 벗 삼아 커피 한 잔 마시면 그게 딱 이 곳 제주에서 내가 살고 있어서 좋다는 느낌을 팍팍 주니 말이다.

그러나 마음 한 쪽에서 경계하는 무언가가 있다. 그건 이렇게 홀로, 혼자 사는 것에 대해 익숙해지는 것이다. 굳이 누가 내 삶으로 들어오고 내가 굳이 누군간의 삶에 들어가지 않아도 별 문제 없이 굴러가 지는 것.

애인의 문제도 아닌 그저 사람. 마음을 나눌 누군가 한 명 쯤도 없이 살게 될 삶은 어쩐지 아무리 좋은 풍경의 제주에 산다해도 초라해보이기 그지없다.


#2 '넌 제주 날씨 같아' 라고 한다면 어쩜 그건 험담일지도 모른다.

제주의 날씨는 변화무쌍하다. 돌, 바람, 여자 많기로 유명하고 대문, 도둑, 거지 없기로 유명한 곳은 우리가 그냥 알고 있는 그 뿐.

제주는 볕이 강하고 습기로 인해 온통 반사되는 빛마저도 강해서 한 번쯤 피부가 뒤집어지고 축축한 티셔츠를 입었다 벗어내야 하는 곳이라는 건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특히 한 계절이 아니라 2-3계절 정도.

창 밖으로 저 멀리 범섬과 구름이 섬을 이뤄 장관을 보여주다가도 몇 시간 이내에 먹구름이 끼고 장대비가 내렸다가 집 주변이 온통 안개로 덮히는 날이 부지기수다.

봄의 날씨는 더 가관이다. 일교차가 심해 나는 5월까지 목도리, 스카프를 하고 다녔다. 우리는 남쪽이기 때문에 여름엔 더울 각오를, 겨울엔 따뜻할거라는 기대를 하고 온거였는데 말이다. 여름엔 덥다. 비도 많이 오고, 습하고 그리고 겨울은 길다.

동쪽으로 가면 비가 오지 않다가도 서쪽으로 가면 장대비가 쏟아지고, 평지에선 차가 폭발할 거 같이 덥다가 성판악 어디쯤이면 시원하게 비가 내려 차를 식혀주면서 마음도 식혀주는 그런 곳이 제주다.


#3 도시의 불안함과는 다른 ........

우리가 알고 있는 시골은 어떤 느낌인가? 슈퍼를 나가려면 10여분을 걸어야 하거나 마트를 가려면 차를 타고 나가야 하는 그런 곳.

제주에 여행 올 때는 그런 곳을 찾는다. 들어가는 길에 다시 나오지 않게 먹을거리를 사서 가야 하는 곳.

그러나 걸어서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을 찾는다. 그런 숙소가 여행엔 제격이니까.

밤 9시쯤 되면 알게 된다. 아 시골이구나. 주변은 깜깜해지고 그런 낭만을 찾기 위해 온 숙소는 11시면 전부 취침하기를 원한다. 왜냐 사람들이 사는 곳 그 어딘가에 그런 숙소들이 있으니 말이다.

제주라고 해서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중문이나 제주시 한 복판은 밤에도 정신없고 울긋불긋 네온사인이 도통 이 곳에 시골인가 싶을 정도로 번화한 느낌을 준다. 하지만 그건 어디나 있을 법한 도시의 모습일 뿐. 제주의 80프로는 그런 곳과는 다르다. 어디든 그림이고 가는 곳곳마다 이쁘다면 그건 아직 그만큼 사람들의 손때가 덜 묻은 것이지 않은가. 여기 와 선크림은 꼬박 발라도 메이크업은 익숙치 않고 샤랄라한 옷을 원래도 입지 않지만 굳이 그런 것이 의미가 없고 밤 9시에 버스가 끊기고 관광단지가 아니고선 음식점도 10시 이후까지 하는 곳을 찾아보기란 어렵다. 카페는 그나마 11시까지 정도?

서울에서의 밤보다 제주의 밤은 길고 지루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래서 좋다. 소음과 꺼지지 않는 불빛이 없는 곳으로 오니 불면증이 사라졌다.

현대인의 불면증은 스트레스와 야근 등에 있기도 하지만 실제로 원시시대의 사람들도 10시간 이상씩 잠을 자긴 않았다는 것이다. 수면의 질. 그것이 문제인거다.

나는 제주에 살면서 9시 이후엔 주위가 조용한 것이 한 편으론 무섭게 느꼈졌던 시간도 있지만 어느새 잠든 나를 발견하고선 이 소음과 꺼지지 않는 도시의 불빛이 나에게는 불안함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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