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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Nov 01. 2016

잡기로 사는 인생

조금씩 나는 빛나고 있어?!

내가 알던 그는 직업이 지금까진 족히 7개가 넘는 사람이었다. 당시 만났을 때만 해도 그가 가지고 있는 직업은 5개가 넘었다.

하지만 그는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은 아니었다. 음악, 영화, 술을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다.

여러 아픔들이 있었고 겉보기에만 자유로운 영혼처럼 보일 순 있다고 이제야 생각하지만 

그때 이십 대였던 나는, 나도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리라는 다짐을 또 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나에게 포켓볼, 사진을 알려줬던 또 다른 이는 회사를 자주 옮겨 다니고 인생 불만이 가득해 보이지만 남들에 비해 해 볼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어김없이 하는 사람이었고 많은 걸 호기심 있게 배우러 다녔던 사람이다.


그들 외에도 많은 사람들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서 그들이 하나같이 나에게 했던 이야기는 

재주 많은 녀석이었다.


고등학교 시절 기자가 되고 싶다고 방학 때 강의를 찾아다니던 나는 너무 비싼 수강료들 틈새에서 5천 원짜리 기자 강의를 발견했다.

한 시민단체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기자단과 같은 것이었다. 직접 취재해서 기사를 쓰기도 했고 이후엔 몇 년이 흘러 인터넷신문으로 나름 기자라는 이름을 달고 이곳저곳을 다니며 청소년 관련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그때 주로 내가 했던 일은 기사를 쓰는 일도 있었지만 사진이었고 만평이었다.

어쭙잖은 그림 솜씨로 청소년 만평을 그렸고 무겁디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온 학교를 뛰어다녔다.

간혹 잘 나온 사진들은 타 중앙 언론에 실리기도 했으니 나름 쾌거라 할 수 있겠다. 그 뒤로 나름 사진에 대한 감각을 익혔다. 사실 사진에 대한 감각은 얼마큼 많이 찍어보느냐, 무엇이든 찍느냐와 관련한 것 같다.


어려서부터 뛰놀기 좋아했던 나는 대학에 가서는 남자들과 숱하게 체력전에서 절대 밀리지 않는 주당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다 보니 당구, 사격, 남자 친구들과 어울려 노는 일들이 많았고 내가 운동신경이 꽤 있어 금방 배운다는 사실도 알았다.

그렇게 술자리 '잡기'가 늘어만 갔다. 대학 동아리를 가입하면서는 멋진 선배로부터 잔뜩 받은 팝과 힙합을 들었고 그렇게 나름 '해외'음악에 눈 뜨기 시작했다. 


사진, 음악, 술, 그렇게 연결고리가 된 것들이 똘똘 뭉쳐 하나도 나의 관심사에서 빠짐없이 꼬박 십여 년 이상을 채워왔다. 이렇다 할 자격증은 없지만 조금 다룰 줄 아는 포토샵과 일러로 대학시절엔 선거 리플릿을 만들기도 했고 스스로 운영하는 블로그를 꾸며보기도 했다. 돈을 버는 일은 없었다. 돈이 될 만한 재능도 아니었고 그저 재주에 그칠 뿐이었다.

술자리에서 배우는 것도 있다. 다양한 사람,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어울리던 나에겐 그 자리를 즐겁고 신나게 그리고 상대에 맞게 꾸려갈 줄 아는 재주도 있었다.

진행 본능이라고나 할까, 몇 명이든 상관없었다. 덕분에 청소년 행사에서 많은 부분, 진행을 하게 되기도 했다.


그런 시간을 거쳐 제주로 온 나는 잡기에 능한 인물로 통한다.

운전을 할 만한 사람이 없던 제주 출장에선 나는 1종 보통, 12인승을 몰고선 어른들을 모셨고

맛집, 관광, 여행에 관심이 많은 덕에 바로바로 척척 사람들을 실어 나를 수 있었다.

리플릿도 만들고, 디자인도 하고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나는 괴로웠다. 글을 쓰고 싶어 하는 내가 지금껏 꼬박 배워온 잡기들로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주로 한 동생이 찾아와 '전문직이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한 순간
내 가슴은 철렁 내려앉았다.
나도.....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기 때문이다. 나도... 나도 그러길 원했다.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 직장 경험, 사람 경험, 돈은 안 되지만 기부할 정도는 되는 잡다한 재주들이 이십 대 내내 나를 괴롭혔었다. 이걸 어디다 써먹어? 왜 이런 거에 시간을 보내고 있니?

그렇게 채워진 나의 이력서는 낙서장 같아 보였다.

영어도, 그렇다고 할 줄은 알지만 자격증 없는 디자인 실력도, 전공을 살린 그 무엇도 없었다.

그 철렁 내려앉은 가슴을 다독이며 나도 그렇다는 말보단 '때가 있다'라고 말했다.

그럼 그때란 무엇이란 말인가. 참 위로 같지 않은 위로. 


나는 지금의 내 자리, 내가 있는 이 조직 안에서 살아남은 것은 내가 전문인력이어서도 아니고 자격증이 많고

커리어가 화려하며 외국어를 잘하는 누가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이제야 생각한다.

이래서 인생은 알 수 없다 하는 거라면 조금은 고달파도 앞으로 더 살아볼 만하다 생각할 수 있다.


잡기로 먹고사는 인생.

아는 것 빼고 모르는 삶.

낯설어하지 않고 남들 앞에서 주목받기를 좋아하는 사람.

스스로가 세상의 기준에 비춰 모자라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자꾸 중심에 서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때로는 무척 이기적이고 방어적이지만 사람들을 아끼고 좋아하는 진심.



아무래도 난 그러한 태도들 때문에 지금껏 입에 풀칠은 하고 있지 않나 싶다.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든다. 내게도 십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놓지 않고 띄엄띄엄이라도 해온 재주들에 대해 단순히 재능기부 하지 만은 않고 싶다는 생각.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구로부터 인정받은 적 없는 실력이기 때문에 결국 나는 프로가 아니니까 라는 말로 내 시간의 일부분을 재능기부로 쓰겠지 싶다. 그렇게 또 십여 년이 흐르겠지.


서른이 넘고 서른 중반을 향해 가는 나에게 있어 새롭게 알게 된 이 마음은, 혹은 합리화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내가 그저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만은 않았구나 하는 작은 위로.

남들보다 한 가지 조금은 빛나는 것이 있구나 라는 위안.


그래서 나는 오늘도 술자리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길 원하며 브런치를 쓰며 사무실에 앉아 있다. 

그리고 그리다 만 그림을 마무리 지을 것이며 제주를 돌아다니며 찍은 사진을 정리하고 

누군가에게 따뜻한 말 대신 한 곡의 노래를 줄 수 있게 리스트를 정리하고

심난한 아침, 힘이 되는 캘리그래피 한 장 써주기 위해 붓을 들 것이다. 

또 뭐하지?라는 고민을 하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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