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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Aug 05. 2015

어리석었던 일이지만.....

친구를 만나고 돌아오던 날, 그 녀석이 내게 남긴 잔상

파리로 떠나고자 했던 내게, 친구가 불어 원서 책과 함께 편지를 남겼다.

남들로부터 더 이상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파리로 가면 아는 사람이 없으니 알고 지내던 누군가의 사정이나 이야기로 상처 받을 일은 없으리라.

나를 알고 있던 사람들도 나를 서서히 잊어가겠지.

그리고 난 새로운 삶의 퍽퍽함으로 그들에 대한 그리움이 한없이 생기고 돌아오는 길,

그들에 대한 충만한 사랑으로 돌아오게 되겠지.

하지만 돌아와서도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 다고 탓을 하며 각자의 고민에 훈수를 두고 있겠지.



함부로 남의 인생에 끼어들지 말하야 한다는 걸,

나이 서른이 넘어 이제서야 나는 반성한다.

낯선 곳을 여행하는 동안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었다. 내가 무척 방어적인 사람이라는 것을.

맞벌이 부모 밑에서 혼자 선택하고 해내야 했던 일이 많았던 나는 늘 누군가가 내 인생에 들어와 주길 바랐던 것 같다. 홀로 침묵해야 하는 아픔이 생겨날수록 난 웬지 남에게 특별히 동화되고 공감하는 마음이 있다고 여겼다.

모든 인생엔 이유가 있고 살아 있는 생명은 모두 소중하다는 걸 난 잘 알고 있다고 여겼다.

무엇보다 내 감정에 솔직하다고 그래서 내가 이 시간에 집중하고 있는 상대에게 진심을 다해 생각하는 바를 전해야 했다. 그러나 때론 그것이 소주 한 잔 기울여 주는 것보다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지 않았다.

했어도 내 마음과 머리, 입은 온통 상대에게 맞춰져 있었다.

좋은 마음이었지만 어쩔 때는 결과가 좋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만 몰랐던 건 아닐까.


세상의 모든 상담은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 맞춰져 있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말을 해준다 해도 난 전문가도 아니니 나의 생각만을 전달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 선택은 자신의 몫이니 내가 아무리 떠들어 댄다하더라도 결과 역시 자신의 몫임을 사람들은 대부분 알거라 생각했다.

어떤 때는 주제 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지나치게 무관심하기도 했던 관계들을 떠올려 보면 난 정말 함부로 사람들의 인생에 껴들었던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 모든 것은 내가 이러면 누군가도 나에게 이렇게 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을터.

참으로 어리석은 짓을 수도 없이 반복하며 살아왔다. 속상하고 지나간 시간들이 의미 없이 느껴지는 좌절감이 밀려온다.

이 와중에도 나는 그래도 최선을 다했고 내가 하고자 하는 말을, 마음을 잘 전달했다고 위안해야 하는 것일까.

때로는 침묵이 더 강하다는 것을 왜 몰랐을까.

관계는 끊임없이 오해를 푸는 과정일 뿐이라는 생각 덕에 오해가 있다면 이해가 될 수 있는 과정으로 만들어 가야 한다는 강박으로 살았던 건 아닐까.

5포세대라 불리는 집단이 관계를 포기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오해를 풀 일이 없는 단순한 인생을 위해서 인 것이다. 하지만 끊임없이 어리석은 짓을 반복해왔다고 생각하면서도 내가 오해를 푸는 일련의 과정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누군가도 나에게 나처럼 다가와주지 않을까 하는 병적인 외로움이 아닐까.


편지를 썼던 친구는 뭐 하나 되는 일 없어 보일 만큼 걱정을 불러일으킨다. 다사다난한 녀석의 삶을 보면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을 자연스레 찾게 되었던 시간들로 관계가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다시 만난 만남에서 우리 관계는 생각보다 더 많은 이유로 친밀하다는 것을 느낀다.

비록 나만의 생각일지라도.


복잡하고 힘들며 괴로운 일들의 한복판에서 만나야 진정한 친구인 것처럼 알았던 시간에 대한 반전이다.

그 모든 파도가 지나가고 잔잔해진 바다의 노을을 그저 나란히 앉아 지켜보는 그런 관계.

우리는 소용돌이 속에서 같이 허우적되지 않고 녀석은 녀석대로, 나는 나 대로 자신의 시간 속의 거친 파도를 어느 정도 이겨내고 편하게 서로를 대하는 시간 속에서야 얼굴을 마주본다. 그것이 처음엔 모른 척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서로의 삶에 대해 무관심한 것 같으면서도 어찌할 바를 몰랐던 나로선 낯선 관계이다.

조심스럽기도 했고 배려이기도 했던 것인데... 무엇때문에 그렇게 안달났었던 것일까.

녀석의 인생에서 꼭 내가 무언가를 해결해주지 않으면 없어질 것 처럼 말이다.

애정이란 이름으로, 걱정이란 마음으로, 친구란 감투로 다가가 수도 없이 가까운 사람들의 인생을 헤짚고 다녀도 외로움이란 감정이 사라지지 않는 다는 것을 왜 이제야 알게 된 것일까.

내가 아닌 남에게 인정받기 위함이 벌인 참혹한 잔상이다.

선택에 대한 결과가 어찌 되었건 간에

나에게 고민을 털어놓은 사람들에게 단호하고 잔혹한 대답을 한 것은 항상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그 허물까지 벗어내지 못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시간을 보낸 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누군가와의 관계를 포기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침묵이 때로는 강하고 힘이 된다는 것을 새롭게 알았을 뿐.

새롭게 알게 된 이것이 어리석은 일이 되지 않도록 난 좀 더 섬세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관계를 포기하는 여러 이유가 주고 받은 것이 안 되고 각자의 사정이라는 것이 때로는 너무 버겁고 복잡하기 때문인데..... 그래서 아주 얇은 유리를 다루듯 섬세해야 하기 때문인데... 그렇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포기되는 것일텐데..


그래도 끝내는 속으로 말하지 않던가.

누군가 내게 손 내 밀어 주길,

누군가 조용히 술잔을 기울여 주길,

누군가 내 앞에 앉아 있어주길,


내.. 이야기를 들어주길.



비굴하고 졸렬한 방법으로 사람의 마음을 얻으려 했다는 걸 알고도 나는 생각한다.

그래도 나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는 걸.


그래도 술은 잔을 부딪혀야 맛이고

밥은 마주보고 먹어야 하며

길은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게 인생의 맛이라고


방법은 어리석었을 수도 있겠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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