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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Jan 09. 2017

서귀포에서 살았었어요.

떠나지 못하고 제주를 헤매는 어떤 이야기

작년 3월 그렇게 오고 싶어 하던 제주에 왔다. 두어 번의 게스트 하우스를 다니면서 사람들은 직장이 제주로 옮겨와 살 둥지를 튼 듯한 나를 부러워했다. 하지만 지금 난 쓸데없어 보이는 짐을 한 차에 가득 실고 집도 없이 매일 어디로 가야 할지를 고민하는 신세가 되었다. 


물론, 선택으로 인한 백수다. 회사의 사정도 있고 나의 선택도 있는 그로부터 비롯된 자유. 백수.


퇴사가 결정 난 뒤부터 일주일간은 회사를 정리하고 사람들과 차분히 인사를 나누기도 하면서 새해를 맞이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롭게 무언가 시작하기 위해 길을 나섰지만 딱 몇 시간 나와 있는 이 길바닥에서 난 무엇을 저렇게 잔뜩 짊어지고 나왔나 싶어 차를 들여다보게 된다. 3월에 내려와 한 달 반 가량은 쉐어 하우스에서 방 한 칸 빌려 살았고 그러한 삶도 나와 같이 사는 누군가에 녹록지 않았는지 그때 역시 자의반 타의반으로 그곳을 나왔다. 그렇게 '나의 집'이라 명할 수 있는 곳을 만났고 보자마자 이 곳에 살아야겠다 했다.

중개인은 다른 집들도 보여줬지만 도무지 나는 그 집을 놓칠 수 없었고 바로 계약했다.


창가 옆에 놓인 침대에 누워 잘 때면 아침에는 눈부신 햇살이 떨어졌고 가로 놓인 길고 긴 반대편 창가에선 저 멀리 바다로부터 반사되는 빛과 함께 선명하게 수평선이 보이는 곳.

제주에 살면서 사람들과의 술자리에서 밤마다 했던 질문이 있다. ' 저거 별일까요? 위성일까요?'

별이 저렇게 선명하게 보인다는 것, 매일 어떤 날도 다르지 않을 것 같은 풍경 같지만 꼭 하나 다른 것을 짚자면 구름. 바람에 밀려 초마다, 분마다 모습을 바꾸는 구름, 해가 지지도 않았는데 보이는 달.

이 모든 것은 하늘이 그만큼 맑아서라는 생각을 떠나기 전에 다시 한번 해본다. 왜 그런지 몰랐던 것이 그로 인해 이해가 되는 지점이었다. 시간이 느리게 가는 이유, 그것 말이다.

차를 달리는 동안도 구름을 쫓아가거나 저 멀리 지평성, 수평선을 향해 달리는 기분은 한 시간을 달렸어도 그만큼의 시간이 흐른 것 같지 않았고 저녁 6시면 해가 지고 주변에 네온사인 하나 없이 어둠이 내리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참, 느리게 가네?!라는 느낌.


서울에선 불면에 시달릴 때가 많았다. 불빛이 많았고 서울의 야경은 화려했으며 시끄러웠다. 마음이 그러했듯 내 귀가 그러했듯 어지러웠다. 이 곳에 살면서 내가 자신 있게 말하는 하나 더는 불면증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외로울 줄 알았다. 그렇게 자주 가던 펍도 없고 이렇다 할 유흥거리도 없고 친구도 없이, 애인도 가족도 다 저 멀리 두고 홀로 와 있는 것 자체가 외로울 줄 알았다. 하지만 내겐 불면증으로 괴롭던 서울보다 한 숨 푹 자고 나면 달라진 하늘과 구름, 날씨를 선사하는 이 곳이 주는 감흥이 더 컸나 보다.


그래서 결국 난 바로 이 곳을 떠나지 못하고 차 한 가득 짐을 싣고 제주의 길바닥으로 기어 나왔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집을 떠나지 못해 중개인에게 내일 짐 뺄게요. 아, 내일 뺄게요. 하다가 결국 오늘은 이렇게 서귀포시를 떠나 제주시를 떠돌고 있다. 구천을 떠도는 귀신처럼. 아니 천국을 헤매는 귀신이라고 해야 적당할까?


제주에 대한 예찬은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SNS에서, 여러 글들 속에서 많이 볼 수 있다. 제주의 색다른 맛을 찾으러 길을 나선 것도 아니며 누군가의 책처럼 '제주는 그런 곳이 아니야'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다름'이라는 것을 조금 알았고 섬이 가진 문화, 특성들에 대해 더 많이 알게 된 것도 없다. 하지만 나는 홀로서기라는 점, 외롭지 않았다는 점, 결국 떠나지 못하고 이 곳에서 시간을 유예하고 있다는 점.

매일 어떤 하늘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신비롭고 아름답다고 말하고 싶었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출근할 직장이 없다는 것에 대한 걱정 따윈 이 곳에서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내게 주어진 시간을 이 제주에 알차게 써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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