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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Jan 23. 2017

언제나 제주여행의 시작 혹은 끝이 될, 종달리

제주를 떠나지 못해 헤매는 어떤 이야기_구좌읍 종달리

하도리에서 떠나던  수요일 오후, 바로 옆동네 종달리로 간다.

서귀포에서 살던 어느 날, 쉬이 오기 힘들었던 제주시에 갔다 오는 길에 가보고 싶었던 식당에나 들르자는 마음으로 갔던 두 곳이 전부 휴무였다. 다시 검색에 검색을 거쳐 도착한 곳은 오후 5시 종달리에 위치한 <종달리엔> 심야식당(오후 5시 부터 12시까지 영업)이었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다 보이는 큰 테이블에 혼자 온 여자여행객 세 명이 각기 식사를 하고 있었고 난 이 곳이 혼술과 혼밥을 응원한다는 메시지에 따라 어떤 거부감도, 거리낌도 없이 누군가의 맞은편에 앉았다. 차가 없었다면 분명 하이볼도 한 잔 하고 맥주도 한 잔 하고 에라 모르겠다 숙박도 잡았을지 모르는 그런 곳이었다.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던 곳. 어느 일본 동네 마스터가 해주는 밥을 먹고 있는 느낌 덕분인가....

아쉬움에 고로케 포장 주문을 하고 동네 산책에 나갔다. 이미 어둠이 짙어 뭘 볼 수 있을까 싶었지만 그 어둠 사이로 고즈넉한 마을의 전경은 그리운 이에게 전화 한 통 하게 만들었다.

' 우리 여기서 살자.' 대뜸 그 말이 나올 만큼 산책은 끝이 나질 않았다. 이미 "종달리엔"에선 앞에서 서성이던 내가 없어져 고로케는 어쩌지 싶었나 보다, 가게 들어서니 '금세 없어지셔서... ' 라고 말하더라.
그 기억으로 나는 하도리에서 시작한 여행의 본격적인 장소로 종달리로 왔다.


# 수요일 오후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종달리에 왔다. 다른 곳에서 밥을 먹고 올 수도 있었지만 무작정 종달리로 왔다. 그리고 "순희밥상"에서 따뜻한 미역국 정식 한 상 먹고 근처 카페 동네로 향했다. "카페 동네" 창가 자리에 앉아 말미오름, 알오름을 보고 마을 내려다 보는 그 시간은 평온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바라보기엔 풍경이 뜨겁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커피 한 잔, 한라봉 주스까지 마시면서 나는 그 곳을 나올 줄 몰랐다.

창문 한 쪽에 '당신의 동네는 어디냐' 는 물음에, "여기 였음 좋겠네요.",

'모든 자연은 작품이어라' 라는 글 귀에 "암, 그렇고 말고" ,

'다 그 순간이 좋은 거니까' , "그렇지! 지금이 너무 좋네요"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릴 없이 카페 창 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종달리는 하루 4시간 정도면 충분히 다 돌아 볼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올레 1코스와 21코스가 만나는 시작이자 끝인 지점에 있는 마을이고,

나 만큼이나 이 마을을 좋아하는 다른 사람들은 "제주의 끝 마을, 제주 동쪽의 끝 마을, ' 등으로 종달리를 말한다.

각자 조금씩은 다르게 느낄 수 있지만 좋은 풍경, 따뜻한 사람들 곁에선 어쩜 전부 닮아가고 쓰는 언어의 온도도 비슷해지는 것 같다.

나 역시, 종달리는 나의 여행의 시작 혹은 끝으로 마음에 두고 있으니 말이다.


종달의 수요일은 조용하다. 나를 이 곳에 머물고 싶게 만들었던 <종달리엔>도 쉬고, 몇 안되는 테이블에 코스 요리를 하는 <이스트엔드>도 쉰다.

인절미 토스트, 약밥과 커피를 파는 <미남미녀병과점>도 쉰다. 매서운 제주 바람의 덕도 있겠지만 이렇듯 쉬는 곳이 많은 수요일 오후, 종달리는 바람소리만 가득했고 나 혼자 전세낸 듯 아무곳도 들어가지 못한 채 마을 어귀를 방황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좋았다. 그래도 따뜻했다.


# 목요일 오후


겨울 제주여행을 하면서 가장 빌었던 부분은 하루 몇 시간만이라도 바람이 잔잔해지는 것이다. 제주의 1월은 12월까지도 겨울이야? 아니야?를 묻게 만들다가 매서운 바람이 갑자기 닥쳐온다. 그 바람은 그렇게 1월 부터 거세게 불기 시작해서 4~5월까지도 살을 파고 들다, 더워지는.

다행히도 목요일 아침은 바람이 너무 잔잔했다. 따듯한 조식 한 그릇 뚝딱 하고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동네 산책 가듯 길을 나섰다.

숙소에서 나와 마을 밖으로 크게 도는 해맞이 해안로는 올레 21코스다. 마을 안은 조용하고 고즈넉하지만 새삼 이 곳도 허물고, 지어지는 곳이라는 걸 알 수 있는 곳이 해맞이 해안로 근처 어디쯤이었다.  종달리 해맞이해안로는 우도와 성산 일출봉 사이로 올라오는 해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종달항까지 걸어가는 길은 도보로 1시간 정도 뿐이니 그만한 산책이 없다. 종달항에서 우도 가는 배가 있다는 것도, 그 앞에 맛있는 보말칼국수 한 그릇 먹을 수 있다는 것도 참 즐거운 일이다. 순식간에 변하는 하늘도 아니고 그냥 길고 긴 바다가 있는 곳인데도 불구하고 산책의 발길은 쉽게 끝이 나질 않았다.

마을 지도를 그릴 것처럼 종달항에서 다시 마을입구로 들어서 제주에서 핫하다는 가게들<이스트엔드, 프렌치터틀, 미남미녀병과점, 치저스, 등>을 지나쳐 마을 초입에 다다르면 이미 나의 숙소는 저 반대편에 있다. 그렇게 아침 산책이 1시간이면 될 것을 2시간이나 걸었다.

아침, 사람들은 게스트하우스에서 나와 짐을 챙겨 또 어디론가 향해 가려 분주했다. 짐을 잠시 맡겨두고 마을 산책에 나선 두 여인네에게 밥집과 몇 곳을알려주는 게스트 하우스 주인의 다정한 목소리를 지나쳐 다시 마을의 중심인 폭낭 나무 곁으로 왔다.


중학교에서 만난 친구들과 자주 어울리면서 우리는 미래에 어떤 직업을 가질 것인가, 그리고 꿈은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많았다.

한 친구는 영화감독, 한 친구는 자신의 레스토랑, 또 다른 녀석은 축구선수를 꾸릴 만큼의 다산, 저명한 물리학자, 제1기업의 컴퓨터 전문가,

그리고 나는 3층 건물에 1층 카페, 2층 책방, 3층 내 집 정도를 몇 년간 서로 만날 때마다 이야기했더라.

사실 잊고 있었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꼭 그 기억만 지운 것처럼......

<소심한 책방>의 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다시 누군가 내게 기억을 불어넣는 것처럼 그때 그들과 웃고 떠들며 나눴던 이야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치면서 쾅 하고 어딘가를 맞은 기분이었다. 주인이 좋아하는 책을 판다는 곳, 가장 작고, 가장 오래된 책방을 하는 게 꿈이라는 그 장소에 놓인 책들을 하나 둘씩 살펴보면서 나는 슬며시 미소 짓고, 속으론 크게 웃고 있었다. 기뻐서, 좋아서, 행복해서.

내일도 이 곳에 오겠구나. 모레에도 오고 싶겠구나, 언제고 나도 책방 주인이 되고 싶다. 이런 생각들을 반복적으로 하면서 책방을 나왔다.

조금씩 내리던 비도 때마침 그쳐 있었고 나는 주변을 서성이고 또 서성이며 뒤돌아 보고 뒤돌아 봤다. 그렇게 나는 종달리에서 예상했던 일정보다 하루 정도 더 머물기로 했다.


# 금요일


어디를 나돌아 다녀봤자 마을 어귀인 나에게 숙소 스텝분이 오전에 카페에서 공방이 열리니 카페 사용이 어려울 수 있다고 알려왔다. 친절한 마음이었다. 내가 어떻게 여행(?) 하고 있는지 알아 준거라 따듯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제보단 바람이 불었지만 그래도 아침 산책 만큼 즐거운 시간이 또 있을까 싶어 다시 길을 나섰다. 어차피 오전에 카페에 머무를 수도 없으니 하면서. 날은 생각보다 매서웠다. 2시간 가량을 크게 마음을 돌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손과 발은 꽁꽁 얼었고 콧잔등은 누가 떼어간 것처럼 따가웠다. 그럼에도 야속하게 햇살이 눈부셨으니 결국 눈도 시려웠다.

다시 숙소로 돌아와 몸을 좀 녹이곤 카페를 기웃거렸다. 무엇을 하는지 궁금했던 터라.

게하(게스트하우스) 스텝을 포함해 3명의 여자가 앉아 있었고 한 분이 일어서서 각종 기기들을 설명하면서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스테인글라스 공예시간이었다. 유리로 별과 달을 만드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옆 동네 하도리에서 온 이 공예시간을 주최하신 분은 다른 카페에서의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 곳까지 오게 됐노라 하며 숙소에 계셨으면 같이 하셨으면 좋았을 걸 이라고 말씀 주셨는데, 나도 좀 아쉬운 마음은 있었다. 하지만 지켜보니 쉬운 일은 아니었다. 유리를 잘 잘라야했고 동으로 테두리, 띠를 만들어서 각각을 납땜해서..... 여튼.. 뭐 하나 만드는 게 쉬우면 그거야 말로 재미가 없겠지만 짧은 시간 보기엔 난 그저 그들이 대단해보였다. 완성된 달과 별은 줄을 매달아 모빌처럼 그들의 집 어딘가에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

그렇게 그들이 어울려 담소를 나누며 있는 걸 보곤 제주를 떠나기 전에 이 마을에 초대하고 싶은 손님들이 생각났다.

방도 잡고, 종달리의 고급 레스토랑인 <이스트엔드>도 예약을 하고 손님들이 도착했다. 그들은 강풍을 몰고 왔다.

강풍에 마을 산책은 도저히 나설 수가 없어, 자가용으로 한 바퀴 크게 돈 다음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와보고 싶었던 곳이었는데 결론적으로 여럿이 함께 오는 것이 뭘로 보나 좋다!. 간만에 수다도 열심히, 먹는 건 더 열심히, 그렇게 열심히 종달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냈다.



# 토요일 오전


일행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나는 어쩌면 이 곳에 더 머물렀을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도시와 시간을 이어주는 일이다.
그러나 내게 가장 아름답고 철학적인 여행은
그렇게 머무는 사이 생겨나는 틈에 있다. _폴 발레리

이 곳에 머무는 동안 내게 생긴 가장 아름답지만 슬픈 일은 '떠남'에 대한 것들이다. 서울을 떠나올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들을 새롭게 느끼면서 난 참 정확하고도 필요한 시기에 제주로부터, 서귀포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받은 위로를 무엇으로 꼭 돌려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돌려줄 수 있다면 이 시간 속의 나를 잘 이어가는 일일테다.

돌담을 쌓을 때 촘촘히 쌓는 것이 아니라 돌과 돌 사이 작은 틈들이 있어

바람은 지나가고 돌담은 쓰러지지 않는 것처럼,  때로는 팍팍할 일상에서 제주로부터 받은 위로를 틈 삼아 조금씩 지나가 보는 일일테다.

쓰러지지 않고.......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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