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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Feb 26. 2017

별은 어둠 속에서 빛나지.

제주를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어떤 이야기_조천읍

제주 한림읍 협재리에서 회사 식구들과 함께 물고 뜯었던 육고깃집의 돼지뼈갈비세트를 먹지 못한 아쉬움을 뒤로 한채, 한달 전 지인이 묵었다며 추천해준 게스트하우스로 향했다. 가는 길, 조천읍에 들러 커피 한잔 마시기 위해 오래 지켜만 봤던 '재즈 세바'에 들렀다.

동백동산으로 유명한 제주 조천읍 선흘리는 사람들 말로는 이제 막 뜨거워 지고 있는 마을이라더라.

동백동산이라고 해서 동백꽃이 많은 곳은 아니다. 오히려 동백은 위미리가 현재로선 더 유명하고, 자연적인 것이긴 하지만 조경의 목적으로 심어놓은 개량종 핑크빛 동백이 제주 여행객들의 발길을 끌어 모으고 있는 중이다. 작고 봉우리가 앙증맞은 것이 작은 나무에 달린 붉은 꽃이 내 기억 속의 동백이었음에도 제주는 다른 동백들로 겨울을 물들이고 있었다.

선흘리는 아주 조용한 작은 동네다.

재즈세바가 유명해지면서 곳곳에 불편해 하는 주민들이 나타나고는 있지만 절대 그 탓만은 아니다.

동네 어귀 어디쯤, 농협 앞에 주차를 하곤 푯말을 따라 세바로 들어가는 길은 카페라곤 없을 것 같은 내 키만한 담장 사이로 주택 몇 채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어디쯤 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와 있었고, 간신히 난 자리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곤 일어났다.


관광을 목적으로 한 여행이 아니라면 낮 시간대에는 책 읽고 커피 마실 곳 정도만 있으면 하루는 곧잘 지나간다. 하지만 책을 읽기 어려워 지인 추천의 숙소로 무작정 향했다. 조천읍 교래리 중산간에 위치한 숙소를 가는 길을 알려주는 내비는 대체, 사람들이 이 곳을 알고 오는 거야? 싶을 정도로 긴 나무들 사이로 차 한대 정도만 지나갈 수 있는 숲길로 안내했다. 알고보니 큰 도로가 있었다. 돌아가는 길도, 잠시 나갔다 오는 길도 나는 그냥 그 숲길을 선택했다. 맞은편 차가 오면 요령껏 비켜주면 되지 하면서도 어쩌지 싶다가도, 그 좁은 숲길을 조심히 지나가는 그 기분이 꽤나 좋았기 때문이다.


중산간에 위치한 숙소는 무척 추웠다. 한라산을 가기 위해 사람들이 머무는 산장처럼 생겼고 잠시 자리를 비운 주인을 대신해 지인이 마당 한 가운데서 장작을 패고 있는 널찍한 마당을 가진 게스트하우스였다. 객주인의 안내를 받고 짐을 풀어놓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곤 저녁식사를 위해 나갔다. 어딜 가야 할지, 어디서 뭘 먹어야 할지, 점차 그러한 열정보다는 쉬고 싶은데 조용하고 따뜻한 곳에서 푹 자고 싶은데, 하는 마음이 전부였다.

여행도 길어지면 무엇을 하든 하지 않든 지친다. 아무래도 그래서 사람들은 집을 찾아가나 싶다.

이 숙소를 선택했던 큰 이유가 입퇴실 시간이 자유롭다는 것이었지만 안타깝게도 너무 추워 쉬는 건 이따 난로를 피워주는 저녁에나 되야 가능해 보였다. 1인 식사라고 하기엔 배터지게 먹고 다시 숙소로 향했다. 이미 숙소에는 한 모녀가 묵고 있었는데, 객주인의 말로는 특별하고 이쁘고 재밌는 모녀라고 했다. 다른 여행들과는 다리 이번 여행에선 사람들과의 만남이 적었다. 일부러 그랬다기 보다는, 굳이 그럴 이유를 찾지 못했다고 해야 할까.

저녁 때가 다 되어서 두 모녀가 시끌벅적하게 들어왔다.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내심 그들이 사온다고 하여 기다렸던 닭발과 소주타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어색한 것도 잠시 소주 한 잔, 두 잔, 한 병, 두 병이 되면서 함께 어울리는 중학생 딸도, 너무 어린 나이에 결혼해 지금은 새로운 사랑에 설레고 있는 엄마도, 마침 생일이라는 어색한 고백을 한 주인의 지인도, 각기 다른 이유로 이 곳에 머물면서 컴컴한 산 속 아래 마시고, 사진 찍고, 깔깔 거리며 웃고 있었다. 문득 찬 공기 속으로 가고 싶어 마당으로 나와 그토록 사랑하는 제주 하늘을 본 순간,

아, 추운 한 겨울 산 속이 아니었다면 하면서 탄식했다. 드러누워 하릴없이 계속 바라만 보고 싶을 정도로 눈 앞에 별들이 쏟아졌다.


웃고 떠드는 사이 소주 서너병이 비워진 채로 우리는 양껏 수다를 떨곤 잠자리에 들었다. 딱히 퇴실시간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곳이라 아침이 온지도 모른 채 잠에 빠져 있었다. 추위를 느끼고 모녀가 일어난 것 같아 나도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바깥 풍경이 보고 싶어 습관처럼 문을 밀고 나갔다.

눈이 포슬포슬 오고 있었다.


어제 중학생 친구에게 별을 보라고 권하면서 '내일 눈 오겠다' 고 했었는데 정말 눈이 오고 있었다. 자연환경에 기대어 기상을 맞추고 생활의 지혜를 가진 할머니가 된 것 같아 피식 웃음이 났다. 하지만 그럴것도 잠시, 제주의 눈은 나에게 무서운 기억이다.

작년 1월 3-4일 길게는 5일까지도 사람들을 가두고, 곳곳이 동파되었던 40년만의 폭설, 그때 제주에 있었기 때문이다. 중산간이기도 하니 안개까지 생겨 아마도 운전의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싶어 웃음도 잠시 서둘러 내려가야했다.

모녀에게도 이 사실을 전하고 얼른 준비하고 주인장의 지인인 그 분만 덩그러니 놔둔 채로 우리는 전부 중산간을 내려왔다.


다행히 내려올수록 눈발은 거세지 않았다. 나에게 남은 딱 하루의 제주 여행을 위해 선흘리에 들려 제대로 한끼 먹고 시내로 나갔다.

이제 갈 준비를 해야 하니 어느 곳도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바람 벽 흰 당나귀 카페로 간 것은 그래도 그래도 라는 생각을 반복하면서 였다.

하지만 도저히 차에서 내릴 수가 없을만큼 불어대는 강풍은 작디 작은 차를 좌우로 흔들어댔고 결심하고 내리자마자 내 모자를 바람결에 날려버렸다.

모자를 주우려 가야겠고 차가 혹시라도 뒤집어 지는 건 아닌가 하는 소심하면서도 안전불감증에 시달리는 상태로 카페에 들어갔다.

창가에는 높이 솟아 부서지는 파도의 물결이 닿아 있었다. 이 허름해보이는 외관이 이 정도의 강풍을 견뎌내다니 신기할 따름이었다.

춥고 으슥하고, 바람이 강하는 부는 날이라 나는 내심 결항된 항공들을 보면서 내일도. 내일도. 를 속으로 빌었던 것 같다. 그렇게 또 하루 이틀, 제주에 머물고 싶은 욕심이었겠지.


제주에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낮에도 달을 보고, 별을 볼 수 있다는 것과 그것을 더 아름답게 해주는 것이 주변의 어둠이라는 것을 알았던 때들이다. 그래서 돌아가기 전에 쏟아지는 별을 본 중산간에서의 하늘이 도무지 잊혀지지 않는다.

좀처럼 적응하기 힘들었던 변화무쌍한 낯선 날씨들도 그리울 테고, 별과 달을 가까이 볼 수 있었던 중산간 자락의 집도 그리울 테고,

너무나도 그리울 것들이 투성인 채로 마지막으로 묵은 게스트하우스 주인 부부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돌아왔다.


곧 어두울 내 인생이지만 스스로 빛날 준비를 해야한다. 제주에서의 기운을 받아 바짝 힘을 내야 한다. 미세먼지 가득해 자욱한 서울 하늘 아래 있더라도 말이다. 라며 다짐을 하고 도착한 서울은 최강 한파로 나를 맞이해주었다.


저의 제주 여행 및 살이는 여기까지 입니다. 그리운 제주 덕에 아무래도 몇 편의 글이 더 있을 겁니다. 머물렀던 곳과 먹었던 음식은 간단히 아래에 기록해두었습니다.




재즈세바 / 조천읍 선흘리 / 카페, 커피, 보리빵

욜 게스트하우스 / 조천읍 교래리 / 숙박

낭뜰리에 쉼터 / 조천읍 교래리 / 쌈채, 제육정식, 전통차 등

선흘할머니방주식당 / 조천읍 선흘리 / 두부전골, 두부와곰취나물, 고사리 비빔밥

타오하우스 / 제주시 도두동 / 숙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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