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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Feb 12. 2017

운이 좋았던 여행의 한 조각

제주를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어떤 이야기_한경면조수리, 한림읍협재리

구좌읍의 하도리, 종달리를 지나 한경면 고산리에서 며칠 더 머물고 지나가는 길 내비게이션을 배신하고 잘못 든 길 한복판에서 책방 한 곳을 만났다.

마을 입구로 들어설 때부터 이미 경로를 이탈했다고 삑삑 울려대는 통에 정신없다가 햇살이 따뜻하게 비춤과 동시에 낮은 집터와 저 멀리 보이는 오름 하나 정도, 시커먼 돌담의 배열이 일부러 구성한 마을처럼 정갈한 한경면 조수리, 연못이 아름다운 마을에 들어서게 되었다.

섬은 둥그니까, 일단 마을을 통과하자는 마음으로 가던 길 '유람 위드 북스'를 만났다. 점심 전이었고 들어선 책방엔 나 외에 구석에서 책을 보는 여인 한 명이 전부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언제 오픈했는지, 왜 하필 조수리였는지.... 눈치껏 물어보며 북카페 안을 둘러봤다.


아기자기하게 꾸며놓은 듯하면서도 곳곳에서 책을 읽을 수 있도록 배치한 복층 구조의 이 카페는 굳이 어떤 이유가 없더라도 들리고 싶게끔 하는 매력이 가득한 곳이었다.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복층은 그야말로 편한 도서관 느낌을 주었고 1층에 배치된 의자들엔 어디서든 원하는 책장에 앉아 책을 볼 수 있게 되어 있다. 지나가다 하얀 건물 빛에 차를 세우고 돌려 주차를 하곤 사람들이 북적이게 될 때까지 돌아다니며 이 책 저 책을 뒤적이며 그곳에 머물렀다. 조용한 곳이 좋아 이 곳에 자리를 잡은 지 두 달이 채 안 됨에도 불구하고 곧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 걸 보니, 그새 그렇게 많은 입소문이 났나 보다. 따뜻하게 커피 한 잔, 그리고 맞은편 돈가스를 무제한으로 준다는 '데미안'에 들러 든든히 배도 채우고 다시 길을 나섰다.

우연이면 우연이라고 포장하고 싶을 만큼, 때로는 경로를 이탈해야 만날 수 있다고 하는 나의 말 대로 나타나 준 그 공간이 참 고마웠다.


서귀포에서 지내면서 회사 식구들과 그나마 바람을 쐬러 몇 번 갔던 곳이 협재리, 금능리였다. 그곳엔 서울에서 온 상사까지도 꼭 데리고 갈 만큼 맛있는 고깃집이 있어 특별한 날이거나, 서울지점 사람들이 오면 그곳으로 향했다. 여행의 중반, 갑자기 그곳이 가고 싶어 한림읍 협재리로 갔다.

묵은 빨래를 한림 시내에 나가 빨고, 말리고 나서 협재 포구 근처에 잡은 숙소로 향했다.


협재는 언제나 아름다웠다. 고왔다. 서재를 같이 운영한다는 게스트하우스 방을 잡곤 바람 부는 동네를 거닐었다. 맥주 한 잔 마시고 싶었는데, 그 날은 협재의 '모살' 도 칵테일을 팔기도 하는 내가 묵는 숙소 주인장이 운영하는 '알로하 서재'도 문을 닫은 터였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수요 미식회에 나왔다는 '수우동'이 숙소 근처 인 걸 발견했다. 걸어서 2-3분 거리도 채 안 되는.

'수우동'은 수요미식회에 나오기 전부터도 유명했는데, 오픈 시간이 11시임에도 불구하고 아침 7시부터 대기명단에 이름을 올려놓아야 먹을 수 있고 그 시간대 중 앞 번호여야 바다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을 수 있다는 데 싶어 호기심에 내일은 가볼까 싶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지나치지 못하듯이 누군가 취향이 다르고, 제주까지 와서 우동이랑 돈가스를 먹어야 해하는 사람이 없는 홀로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밤 산책을 나온 협재 앞바다는 역시 제주 바다야 라고 말해주듯 바람이 거세게 불었지만 그 바람결에 날리는 사람들이 터트려 놓은 폭죽만큼은 그 콜라보가 완벽해 보였다. 바람과 바다 폭죽.


협재와 금능 사이에는 한 겨울에도 관광객이 많았다. 여름에 이 길에 잘못 들어섰다가 제주에서 쉽게 볼 수 없는 교통체증을 느꼈던 기억이 떠올랐다. 제주시에서는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다음날 아침 일찍 산책을 나선 김에 수우동에 들렀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써 놓은 상태였다. 언제가 좋을까 고민하다가 그나마 지금이 좀 한가한 때라는 주인장 말에 따라 한 번 먹어보기로 하곤 저녁시간 맨 앞에 이름을 적었다. 조금 이른 저녁.


낮시간에는 동네를 돌아다니다가, 금능리로 걸어갔다. 바람을 뚫고 금능리까지 걸어갔으나 늘 있는 일처럼 가고자 하는 카페는 휴무였다. 바닷가 바로 앞에 있는 곳까지 다른 카페를 향해 갔지만 이 날씨에 3킬로 이상을 다시 걸어갈 엄두가 나지 않아 다시 숙소 쪽으로 돌아왔다. 내 습성대로 난 어제도 갔던 카페로 갔다.

: 해당 카페, 음식점에 대한 정보는 하단에 남겨두었습니다.


레스토랑을 미리 예약해둔 것처럼 시간에 맞춰 수우동으로 향했다. 이미 사람들은 꽉 차 있었고, 블로그를 통해 본 내용처럼 순서가 앞번인 나는 협재와 비양도를 마주하는 자리에 앉았다. 양껏 시켰다. 다 먹어봐야 한다고 해서 말이지. 맥주, 돈가스, 수요미식회 우동이라고 불리는 냉우동까지. 한겨울에 냉우동이냐 싶지만 국물이 많지 않고 자작한 상태고 면이 탱글탱글해 돈가스와 궁합이 좋았다. 다 먹어치웠다. 배가 터질 지경이었지만 묘한 쾌감이 있었다. 내가 식사를 마치고 나올 때 이미 영업 종료 간판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로부터 오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아쉬워 갔고 누군가는 예약해야 하는 사실을 몰랐던 것 같고 누군가는 아직 먹고 있는 사람들의 테이블이 나오길 추운 날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유달리 삐뚤어진 게 아니라면 누구라도 느껴봤을 감정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인장이 운영하는 알로하 서재는 밀실이 따로 있는 암실과도 같은 분위기지만 나와 취향이 비슷한 책들이 꽤 많이 있고 와이프와 달리 술을 좋아하는 남편이 운영하는 북바(book bar)다. 물론 커피도 된다.

펴지 않을 수 없었던 노트북을 펴고 신나게 타자를 두들겨 댄 뒤 주변을 둘러보고 거의 끝나갈 시간이 다 되어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없었다. 알로하 서재는 한 8~9명 정도 수용할 만큼 작은 곳이다. 주인장과 몇 마디 나누다 잠을 좀 푹 자고 싶으니 한잔 추천해달라고 하곤 그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독한 마티니 한잔을 들이켰다. 아, 날은 추운데 속에선 불이 나고 얼굴은 발그레 해지면서 이대로라면 폭음하기 십상이다 싶다. 다행히 영업시간이 끝났으니 그만한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여행에 있어서 다음날 늦게 일어날 수 있다는 것과 술 한잔 거하게 마실 수 있다는 것, 그리고 한 곳에 오래 머물러 있을만큼 시간이 넉넉하다는 것은 크나큰 행운이고 행복일 수 밖에 없다. 아, 그날 밤 나는 모히또 한 잔과 마티니 한 잔으로 단잠을 잤다.

협재 근처에서 브런치를 먹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을 향해 다시 떠났다. 때로는 목적지가 있고 때로는 목적지가 없던 제주 여행의 끝이 다가오고 있다.




유람 위드 북스 : 한경면 조수리 / 책, 카페

데미안 : 한경면 조수리 / 돈가스 (더 달라고 하면 더 줌) / 식탁은 크고 자리는 몇 자리 안 되기 때문에 미리 연락처를 남겨두고 유람 위드 북스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전화온다. / 매운소스 강추 / 테이크아웃으로 후식을 가져갈 순 있지만 동네에는 쓰레기통이 없으니 함부로 버리면 안 된다. 

CODE46610 : 한림읍 협재리 / 커피, 맥주, 요리, 다양하게 시킬 수 있고 편한 장점

그 곳 : 한립읍 금능리 / 금능해변 근처 카페

뜨레비양 : 한림읍 협재리 / 브런치, 카페

수우동 : 한림읍 협재리 / 우동, 돈가스 / 수요미식회 맛집, 아침 7시부터 예약 받음

알로하스테이 : 한림읍 협재리 / 게스트하우스 / 1~2인실 / 5-6만원선

알로하서재 : 한림읍 협재리 / 책, 칵테일 / 낮2시 오픈~밤 9시 마감 / 자리가 협소함

육고깃집 : 한림읍 / 돼지뼈갈비세트, 육사시미 / 오후 5시 오픈, 고기 없음 안 팜 / 회사식구들과 애정하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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