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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 미 Feb 01. 2017

사람들로 완성되는 풍경, 다른 제주를 볼 수 있는 곳

제주를 떠나지 못하고 헤매는 어떤 이야기_한경면 고산리


난 아직도 제주를 여행 중이다.

사실, 지금은 춥디 추운 서울에서 '마음의 적응' 중이다.

새삼 느끼는 건 몸의 적응은 무엇보다도 빠르고 마음의 적응은 참으로 쉽지 않다는 점이다. 서울에 온 날 한파였고, 눈이 많이 왔고, 길이 막혔으며, 스산했다.




종달리를 떠나 오면서 어디로 갈지 망설였다. 가보고 싶은 곳도 많았고 머물고 싶은 곳도 많았다. 제주는 넓다.

한경면 고산리로 향했다. 서쪽에 있으면서 일몰이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여러 글들로 통해 소개된 고산리는 아직 이주열풍이 불지 않은(?) 마을이다. 도착해서 주변을 돌면서 넓게 펼쳐진 평야를 보곤

제주에도 이런 곳이 있구나 싶었다. 사람들은 건축학개론에 나온 정아피아노학원를 찾았고, 일몰을 보기 위해 카페 사우다드에 들렀다.


마을 외곽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에 머물면서 역시나 하루 몇 시간만 잔잔한 바람이면 산책 했고

너무 거센 바람에는 차로 마을에 들어갔다. 3일동안 카페 사우다드로 갔으며 (카페 다금바리스타는 공사 중이다)


마을을 다 지나 큰 간판 있는 길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당산봉이, 왼쪽에는 넓은 평야(콜라비밭)과 함께 멀리 수월봉이 보인다. 그 쭉 빠진 도로를 걸어가다 보면 에메랄드 빛과 푸른 그 어디쯤의 오묘한 바다가 일렁이며 차귀도와 부속섬인 와도를 볼 수 있다.

이 곳은 사실 제주도 느낌이라기 보다는 오키나와나 어느 해안 시골 마을처럼 보이는 이국적인 느낌을 가지고 있다.

딱히 특별한 것이 더 있는 것은 아닌데, 길을 따라 걸으며 수월봉 쪽을 바라보면 고대유적이 나올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그리고 하늘은 더 더욱 가깝게 느껴진다. 시야에 걸리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제주가 주는 특권 중 하나 아니던가.


수월봉과 넓은 평야 사이를 달리며 지나가는 차와 그 옆 넓은 평야 곁에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이 곳이 섬 전체인 것 같은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지평선과 수평선을 고개 돌려가며 다 볼 수 있는 곳.



광활한 자연 환경을 품고 있는 고산리 마을은 작고 아담하다. 우체국 사거리를 기준으로 음식점, 약국, 미용실 등이 있다.

하루 두끼를 우체국 사거리로 나가 먹었고 커피는 자구내 포구로 나갔다.


3일 동안 카페 사우다드에 머물렀다. 바람이 거세게 불던 첫 날엔 카페에 나 외엔 주인장 내외가 전부였다. (부부인지는 모르겠지만)

사우다드에서 바라보는 차귀도, 와도는 눈부시도록 예뻤다. 한참을 넋 놓고 보다가 식은 커피 대신에 귤차를 주문 했다.

평온해 보이는 사진이지만 사실 그 밖은 거센 바람으로 배조차 뜰 수 없는 날이었다.


아름다운 풍경을 벗 삼아 글을 쓰는 사람, 방랑벽이라 이리저리 다니면서 글 쓰는 사람 등 여러 사람들이 물 좋고 공기 좋은 곳으로 가 글을 쓰기도 하며 한 곳에 머무르고 박혀 있으면서 집필을 한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그런데, 제주에서 이런 풍경을 눈 앞에 두곤 사실 아무 글귀도 떠오르지 않았다.

좋다. 좋구나. 좋네. 아, 이렇게 표현할 단어와 문장이 없을까 싶을 정도로. 서너 시간을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앞에 병풍처럼 앉아 있었다.

구름이 흐르고 파도가 일렁이니 그 풍경이 병풍은 아니었고 그걸 바라보고 있는 내가 곧 병풍이었다.


사람들이 아무래도 카페 주인에게 많이 물어보지 않을까 싶어 나도 물었다. 일몰을 봤는지, 볼 수 있는지.

봤다. 혹은 오늘은 구름이 많아 못 보겠다.라는 대답이 아니었다.

'우리도 사실 잘 본 적이 없다. 모든 것이 다 맞아떨어져야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이따 그 시간이 되어봐야 안다.'


몇 분 단위로 바람에 쓸려 가는 구름이 변하는 겨울날, 마지막까지 매달린 해를 볼 수 있다는 이 곳에서도 역시 기다림이 있어야 하는구나.

여름에 왔어야 하는 건가 싶으면서도 그때도 또 때라는 것이 있겠지. 한 겨울 시린 손을 호호 불며 바라보는 일몰이 더 뜨겁게 다가올 것 같은데

혼자 여러 생각을 하다 말고 그 '때' 라는 것, 그 시간이 되어봐야 알 수 있다는 그것. 그 말들이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쉽게 무언가 내주지 않을 듯한, 도도하게 살벌한 기다림을 버텨내야 한다는 사실이.


카페 사우다드에 간 마지막날, 구름 사이로 뻗쳐 나오는 일몰을 보면서 나는 아쉽지 않았다. 일몰이 목적이었던 것이 아니었거니와, 우연히 장대한 광경을 목격했을 때 다 담을 수 없고 감당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마을을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없어도, 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카페에 모여 곧 떠나는 신부님과 대화하는 어멍들의 이야기 소리, 파도가 높든 고등어 한 마리 잡아보겠다고 배낚시를 나가는 여행객들의 호기로운 모습, 긴 삼각대를 어깨에 매고 바다 앞에서 일몰이 아쉬워 고개 돌리는 사람들, 그 어느 것 하나 이질적이지 않고 강풍과 추위에도 그 풍경에 사람들이 있어 즐거웠다.


고산리에 대해 쓴 글들 속에서 이 마을에 살고 싶어하는 내용들을 본 적이 많은데, 왜 그런지는 직접 가보면 알게 된다.


뽀얗고 투명한 한치들이 일렬로 바람에 날리는 걸 보면서 아, 오늘은 맥주 한 잔 해야겠다 싶은 마음으로 다른 마을로 향했다.


아는 지인이 이 곳에서 나고 자랐다 하여 메세지를 남겼다. 참 좋은 곳에서 살아 부럽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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