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부자들의 겨울 휴양지 -Saint Moritz

비싼 데는 이유가 있구나

by Melissa


여행의 목적은 중요하다. 목적이 정해져야 여행지도 선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먼 길을 떠날 때는 더욱 그렇다.

알프스 산을 탐방하고 싶은 여행이라면 ‘투르 드 몽블랑’을, 바닷가에서 해산물을 즐기며 조용히 책을 읽고 싶다면 그리스의 작은 섬 ‘파로스’를, 문화와 쇼핑, 미식을 한 번에 누리고 싶다면 ‘파리’를 고르는 식으로 말이다.


목적지가 정해지면 그다음은 시간과 예산이다. 재정 상황에 따라 머무는 기간, 장소, 숙소가 달라진다. 모두가 알다시피 스위스는 물가가 비싸기로 유명하다. 특히 기차비가 만만치 않으니 차라리 조금 더 투자해서 잘 알려진 관광지에 머무는 편이 낫다. 의외로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루체른 같은 유명지일수록 숙소 선택지가 다양하다.


하지만 스위스 안에서도 더더욱 접근하기 쉽지 않은 곳이 있다. 바로 동부 알프스의 세인모리츠다. 이탈리아 국경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겨울마다 인플루언서, 유명인과 부자들이 몰려드는 파티 도시’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여름철의 프랑스 남부의 상트로페(Saint Tropez)를 떠올리게 된다. 작은 마을에 화려한 슈퍼요트들이 줄지어 정박해 있는 모습처럼, 세인모리츠 역시 언제부턴가 전 세계 부자들이 모여드는 럭셔리 파티 타운의 상징이 되어버렸다.

세인모리츠도 비슷하다. 스위스인들보다 오히려 해외에서 오는 방문객이 더 많은, 화려하고도 값비싼 휴양지라는 인식이 강하다. 그래서 ‘전 세계 부자들의 겨울 휴양지’라는 수식어가 붙었고, 나에게는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마치 보여주기식 사람들이 모이는 곳 같아 쉽게 발걸음이 가지 않았다. 게다가 제네바에서 무려 6시간이나 걸려야 닿는 거리라는 점도 선뜻 가보지 못한 이유였다. 스위스에서 “세인모리츠로 휴가 간다”라고 하면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 부러움보다는, “아, 당신도 뽐내는 걸 좋아하는군요”라는 눈빛 말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대대로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거나, 오래전부터 그곳에 별장을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세인모리츠에서 출발해서 안데르마트를 거쳐 체르마트까지 7시간 빙하 특급 열차 (Glacier Express) 경험하는 데 있었다. 기차의 출발지라는 이유로 마침내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 깨달았다.


비싼 데는 이유가 있구나.


세인모리츠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19세기 유럽 귀족들이 온천 치료를 위해 찾으면서 이름을 알렸고, 이후 알파인 스키가 처음 탄생한 곳으로 기록되었다. 동계올림픽 역시 1928년과 1948년, 두 차례나 개최한 역사적인 도시다. 세계대전 직후에도 올림픽을 개최할 수 있었던 몇 안 되는 장소였다는 점에서, 이곳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다.


내가 방문한 시기는 4월 초였다. 스키 시즌은 이미 끝나 마을은 한산했고, 호텔과 레스토랑 상당수가 여름 준비에 들어가 많이 이미 문을 닫았다. 그래서인지 관광객은 열차를 타러 온 사람들과 인근 이탈리아에서 넘어온 이들이 전부였다. 하지만 고요한 분위기 속에서 세인모리츠의 매력을 오히려 더 선명히 느낄 수 있었다.


역에 내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온화한 햇살 아래 반짝이던 얼어붙은 호수와 그 너머로 펼쳐진 알프스 산맥이었다. 그리고 호수 가장자리에 성처럼 웅장하게 자리한 5성급 호텔들. 19세기, 이런 산속에 어마어마한 규모의 호텔을 지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그곳을 찾았던 귀족들의 모습이 절로 상상됐다. 잠시 길을 멈추고 호수와 산이 빚어낸 장관을 바라보았다.

마을 한가운데 호수가 자리잡고 마을과 산이 둘러쌓여있다. 호수와 산이 둘다 이렇게 가까운 곳도 드문거 같다.



또 하나 인상 깊었던 건 음식이었다. 이탈리아 국경과 가까운 덕분에 요리가 훌륭했다. 호수를 한 바퀴 돈 뒤 찾은 작은 파스타 전문점에서 직접 만든 생면으로 요리한 파스타는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스위스 자체는 음식으로 발달한 나라는 아니지만 컬리너리로 유명한 이웃나라들 - 프랑스와 이태리- 이 옆에 있어서 어딜 가나 음식이 제법 맛이있다. 물론 가격대비 따지면 할말은 없지만 말이다.


왼쪽은 생면 뽑은 것을 걸어놓은 파스타집, 오른쪽은 호수가 보이는 레스토랑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걸어오는데, 눈부시게 밝은 달빛과 별빛이 머리 위에 가득했다. 아직 눈과 얼음으로 덮인 호수는 은빛으로 반짝였고, 마을에는 간간히 켜진 불빛만이 고요히 번지고 있었다. 그 순간, 이 모든 것이 너무나 조화롭게 느껴졌다.



솔직히 말해, 세인모리츠는 ‘부자들만 즐기는 과시형 휴양지’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막상 와보니 그 명성이 괜히 붙은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자연의 아름다움, 오랜 역사와 문화, 그리고 예상 밖의 따뜻한 여유가 있었다.


결국 나는 이곳을 다시 찾고 싶은 여행지 목록에 올려두었다. 작은 나라 스위스. 하지만 이 안에는 가볼 만한 곳이 끝도 없이 많다. 새로운 곳을 발견하는 재미도 크지만, 이상하게도 매년 다시 찾고 싶은 곳들까지 자꾸 늘어난다. 아쉽게도 문제는 역시 시간과 돈이다..

우리가 묵은 호숫가가 정면으로 보이는 3성급 호텔 - 3성치고도 가격은 하룻밤에 비성수기인데도 350프랑 했다. 시설은 레노베이션을 해서 거의 4성이라고 할만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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