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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호주 이민 정착기
by 모두의애나 May 05. 2018

남자친구가 외국인이면 영어를 잘하게 되나요?

4년 전쯤인가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 멜버른에 왔을 때 만난 마음 맞는 한국인 친구가 있다. 자신감이 넘치고 영어도 잘했던 그 친구는 그때 당시에 미국인 남자친구-지금은 남편이 된-와 롱디(장거리 연애) 중이었다.


하루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어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그녀는 남자친구와의 긴 연애 기간 동안 자신이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들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그것인즉슨,


“아 남자친구가 미국인이야? 그래서 너가 영어를 잘하는구나~~”였다.


여기서 질문,

친구는 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을까?



 

그녀는 이 말을 지긋지긋해했고 항상 이렇게 대답한다고 했다.


아닌데? 나 원래 영어 잘했는데?


이 이야기를 나눌 당시에는 나는 싱글이었다. 그리고 몇 달 후 호주인 남자친구가 생기게 되었고 그 후로 나는 친구의 말을 백번 공감할 수 있게 되었다.


툭까고 얘기해서 나는 정말 많은 노력을 해서 이 정도의 영어 실력을 얻게 된 것인데 (그렇다고 해서 영어가 모국어처럼 쉽게 튀어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끔씩 렉 걸려서 버벅거리기도 하는데) 남자친구가 호주인이어서 영어를 잘하느니 배우겠느니 하는 말을 듣게 되는 게.. 뭐랄까 말문이 턱 막히는 느낌이랄까.


특히 연애 초기에, 어쩌다가 대화를 나누게 되는 한국인들과는 항상 이 대화 레퍼토리를 반복하곤 했다.


"남자친구 한국인이에요?"

"아니요, 호주인이요."

"헐 대박이다, 좋겠다~~ 영어 엄청 늘겠네!! 결혼 안 하고 뭐해요? 빨리 결혼해버려요~~ 비자 받아야지.”

"아.. (너랑은 이제 대화 안 할래요)."



하지만 덧붙이자면 이전에 쓴 글들에서 열거했지만 나는 영어를 잘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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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보낸 시간이 벌써 4년 정도가 되고 나니 솔직히 말해 영어가 더 늘게 된 건 사실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의 기초가 다져져서 더 탄탄한 영어를 한다는 게 아니라, 다방면에서 욕을 하는 법을 많이 배웠고 호주인들이 쓰는 표현들을 익히게 되었다.


연애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에는 남자친구가 쓰는 단어들 중에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도 알아들은 척 웃으며 넘겼다. 하지만 점점 함께하는 시간이 지나갈수록 우리 서로는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되었고, 내가 알아듣지 못헀지만 웃으며 넘기려고 할 때, 그는 이렇게 묻곤 했다.


"너 이해 못했지?"

"닥쳐. 설명해주던가."


이렇게 해서 시작된 나의 집요한 질문공세.

  

내가 듣도 보지도 못한 호주인들이 쓰는 슬랭들과 표현들을 옆에서 생생하게 듣게 될 때마다 나는 그를 붙잡고 늘어진다. 방금 들은 새로운 단어의 뜻을 물어보고, 기본 다섯 번에서 열 번 스무 번 넘게 발음하게 시킨다. 그 뒤에 나는 삼십 번에서 백번 정도 계속 따라한다. 그가 진짜 제발 부탁이니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고장 난 기계처럼..


또 내가 하는 이상한 발음(틀린 발음이 아니라 내가 못하는 몇 가지 발음들이 있다.)을 듣고 웃는 남자친구를 붙잡고, "웃지만 말고 그럼 제대로 된 발음을 해봐!!!!!"라며 괴롭히기 시작한다.


내가 못하는 발음 중엔 W가 있는데, WOLF(늑대) & WOOLWORTHS(호주 슈퍼마켓 브랜드 이름)는 정말이지 아직까지 나를 괴롭힌다. 아무리 해도 힘들어..


내 호주식 영어를 업그레이드시키기 위한 마지막 방법은 호주식 발음기호로 내 머릿속을 재정비해나가는 것이었다.


대화 중에 (한국에서 배운) 나의 미국식 발음을 듣고 "뭐라고 했어, 방금??? 완전 미국인!!!"라며 장난으로 놀려대는 남자 친구와 남자 친구 부모님 앞에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아 왜~~ 이게 내가 배운거야. 그럼 너흰 뭐라고 발음 하는데?"라고 묻고 호주 발음을 머릿속에 저장시켰다.


지금 생각나는, 정말 놀랐던 몇 가지 발음 차이들은 이 세 개 정도이다.
- 얼룩말 ZEBRA 미국식: [zi:brə/지브라] 영국식: [zebrə;/제브라]
- 살구 APRICOT 미국식: [|ӕprɪkɑ:t/애프리컷] 영국식: [|eɪprɪkɒt]/애이프리컷]
- 꽃병 VASE 미국식: [vase/베이스] 영국식:  [vɑ:z/바-즈]


생활 속에서 항상 듣고 말하는 것이 영어가 되다 보니 점점 늘게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아무리 남자 친구가 호주인이어도 내가 모르쇠로 일관한다면 나의 영어가 더 늘 수 있었을까? 배움엔 자신의 관심과 노력이 필수요건이다.


이번 글의 모티브와 감사함은 그저 겉만 보고 판단하는 무지한 사람들의 관심 어린 오지랖에게 돌려야겠다.


호주에서 발견한 나말고도 이런 인간이 있다니! 싶은 내짝꿍 오타쿠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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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직업교사
호주 이민자 : 멜버른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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