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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May 20. 2018

생리하니? 왜 이렇게 예민해?

예민함에 대하여

"너 생리해?"


20대 초반 때 가장 듣기 싫었던 말 중에 하나이다. 

항상 예민했고 털을 곤두세운 고양이처럼 신경이 날카로웠던 20대의 나는 이 말을 꽤 많이 들었던 것 같다. 


내 평소 표정. 예민해보이나요?


생리해서가 아니라 난 원래 예민하다구요!! 


예민하다는 말과 동급으로 많이 들은 말은 "유난을 떤다"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대수롭게 넘어갈 갈 작은 일에도 나는 항상 호들갑을 떨었고 잘 깜짝깜짝 놀랐다.


엄마는 나에게 항상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넌 쓸개가 없어서 잘 놀라는 거야. 으유 쓸개 빠진 년ㅋㅋ"


엄마가 장난으로 하는 소리이지만, 난 다섯 살 때 담낭(쓸개) 제거 수술을 해서 정말 쓸개 빠진 년이 맞다. 




한국에서의 격동찬 20대 초반을 보내고 20대 중반에 호주로 넘어와 여유롭게 살아가는 법과 자신 있게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서 조금은 나아졌지만, 꽤 최근까지도 "예민하다(sensitive)"는 말은 나를 섬칫섬칫 놀라게 했다. 긍정적이기보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더 함축되어 있다고 믿었고, 이는 내 20대의 꼬리표이자 수식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며칠 전의 남자친구와의 대화에서 "예민하다"라는 단어에게 가지고 있던 나의 수십 년간의 믿음은 완벽하게 부서지게 되었다. 


남자친구는 자신의 이복형제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중이었는데, 막내 형이 그나마 가장 "sensitive"하다고 표현했다. 아니, 분명 긍정적인 뜻으로 설명한 것이었는데 왜 센서티브 하다는 단어를 쓰는 거지? 의아해서 다시 물었다. 


"Sensitive? Do you mean sensible?" (예민하다고? 분별 있다는 말이 하고 싶었던 거야?)

"Yeah, bit of both, but I meant sensitive." (어, 뭐 둘 다. 근데 더 맞게는 예민하다고.)


아, 영어에서는 예민하다는 말을 긍정적으로도 사용하나?라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고 이 글을 쓰기 위해 구글링을 해봤다. 아니 그런데 이게 왠 것, 예민하다의 영어 단어 센서티브는 긍정적인 뜻을, 뜻도! 가지고 있었다.


Sensitive/ˈsɛnsɪtɪv/

1. quick to detect or respond to slight changes, signals, or influences
    작은 변화, 신호나 영향 등을 빠르게 감지하거나 반응하는 것 
동의어: responsive to, quick to respond to, sensitized to, reactive to, sentient of; 

2. having or displaying a quick and delicate appreciation of others' feelings.
    타인의 감정에 빠르고 섬세하게 공감을 하는 것
동의어: tactful, careful, thoughtful, diplomatic, delicate, subtle, finely tuned, kid-glove


다시 한번 남자친구에게 물어보니, sensitive라는 단어는 긍정적, 부정적 모두 쓰일 수 있는 중의적인 표현이라고 했다. 같은 단어이지만 부정적으로만 인지하고 있던 나의 단어 사전 속의 "예민함"과는 다른 단어 같았다.




한국에 있었을 때 친구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소리는 "넌 남 신경을 너무 많이 써."였다. 실로 그러했다. 나의 모든 것은 타인의 시선에 맞춰져 있었고 나는 그런 내 자신이 싫었고 지쳐있었다.


웃고픈 건 나에게 "넌 성격이 너무 쎄."라는 말도 항상 따라붙었다는 점이다. 나의 두 번째 꼬리표라고나 할까.


주관이 너무나도 뚜렷한 나였지만 타인의 시선과 기대 또한 저버리지 못해 이 둘을 항상 비교하다 보니, 매일매일이 자아 충돌의 전투 현장, 스트레스 공장이었던 것이다. 자연스레 끝도 없이 쌓여가는 스트레스로 내 안은 뭉그러져가고 있었고 만성 위염은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버렸다.


그러다 점차 삐뚤어지기 시작했다. 항상 모든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에 남이 뭐라고 한 마디만 하면, "니가 뭔데, 니가 날 알아?"라는 퉁명스러운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결국엔 그 누구의 의견도 듣고 싶지 않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이런 내가 너무 모났다고 생각했고 유해지고 싶었다. 그냥 둥글둥글, 남들처럼! 남들 다 하는 게 나는 왜 이리도 힘든 것인지 그땐 몰랐다.




오 년 전 호주로 처음 건너왔을 때와 비교했을 때, 현재 나는 많이 변해있다. 

물론 하루아침에 나와 평생을 함께한 가시 돋고 예민한 성격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유해졌다고 할 수도 없다. 스트레스를 보통 이상으로 받았다 하면 바로 찾아오는 위염 때문에 상비약으로는 개비스콘을 항상 구비해뒀고, 이년 전인가는 응급실에도 실려갔었다. 


변한 게 있다면 항상 남을 위해 돌아가던 신경을 온전히 나에게 쏟고 있다는 점이다.

가장 영향을 준건 항상 함께하는 남자친구였다. 

남자친구는 남에게 관심이 없다.(가족과 여자친구는 남이 아님) 연애 초기에는 어쩜 이렇게 스트레스 없고 남의 일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지 신기했다. 이 신기한 개체를 계속 들여다보니 "필요할 때" 세상과 자신을 분리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꼭 필요한 일에만 관심을 두고 그밖에 사사로운 일들에는 신경을 아예 쓰지 않는 것이었다. 세상을 편하게 사는 그가 부러워지기 시작했고 그러다가 점차 내가 그렇게 변하고 있음을 발견했다. 


다른 의견, 인간관계, 직장에서의 스트레스에 피곤해하다가도 문득 이런 생각이 들곤 했다.

"지금 일 끝났고 피곤해 죽겠는데.. 이런 생각을 할 가치 조차 있나? 이게 내 인생에서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그만 생각하자."


나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있으면 그를 설득하려 들기보다는, 

"Ah yeah? Fair enough." (아 그래? 그럴 만도 하네.)


...


"Each to their own."(사람마다 다르지)

"I don't give a shit."(신경 1도 안 써)


...


가끔 나의 바뀐 태도를 보고 이기적이라고 할 사람들에게 나는 자신있게 이렇게 말한다. 

"상관없어, 나만 행복하다면."


자신을 위해 이기적이 되는 게 뭐가 그렇게 나쁜 일일까? 남만 생각하다가 나를 놓쳐버린 나의 20대 초반이 참 불쌍하고 그렇게까지 몸을 혹사하며 견뎌온 것에 대견스럽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나를 더 풀어주고 놓아줘야겠다!





사실 여기 호주에 와서 타인으로부터 내가 예민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은 없다. 다시 생각해보니 그 이유는 내가 타인에게 신경을 쓰지 않고, 그들도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남들은 당신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답니다.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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