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넌 진짜 한국인 같지 않아
이것은 (호주에 처음 왔을 때에는 전혀 듣지 못했지만)
호주에서 점차 정착을 해가면서 외국인들에게 가끔? 종종? 자주 듣는 말 중에 하나이다.
저렇게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인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알거나 한국인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다는 것이기에 나는 항상 이렇게 되물었다.
"너가 아는 전형적인 한국인은 어떤데? 그래서 나는 뭐가 다른 거 같은데?"
1. 넌 대화할 때 상대방 눈을 쳐다봐.
이건 사실 한국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살면서 배운 나만의 대화 방식 중 하나였다. 대화를 할 때는 상대방을 쳐다봐야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선생님이랑 대화를 하는데 어른이 말씀하는데 어디 선생님 눈을 빤히 바라보냐며 혼이 났던 기억이 난다. 그다음부터는 '아, 이게 무례한 일이구나' 싶어서 상대방의 눈을 피하게 되었는데, 또 다른 선생님이 어디 어른이 말하는데 집중을 안 하고 땅을 바라보냐며 혼이 났다. 그다음부턴 오기가 생겨서인지 대화를 할 때에 항상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연습을 했다.
머리가 커가고 어느 정도 나이가 들고 나서부터는 남이 보기에 내가 버릇이 있건 말건, 대화를 할 때에는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는 게 훨씬 진정성 있다고 여겨졌다. 그리고 지금도 난 대화할 때 상대방의 눈을 바라본다.
2. 넌 당당하게 할 말을 다 해.
이건 호주에서 배운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이곳은 대다수의 의견에 암묵적으로 따라가거나 침묵이 금인 사회가 아니었다. 너무 자기 의견을 많이 내뱉어서 조금 귀찮기까지 한 이곳은 "모두의 의견에 열려있고 귀 기울이는 사회"이다.
한국에서는 내 할 말 다하고 살기가 참 어려웠다. 아무리 성격을 줄인다고 해도 남들은 날 "성격 센 애"라고 부르기 일쑤였다. 또한 참고 참는다고 해도 성격상 비집고 나오는 주관, 의견 그리고 나만의 아우라(성격)가 남자 만나기 어려운 여자애로 낙인찍히게 만들었다.
하지만 나의 새로운 터전, 이 곳 호주는 자기 할 말을 하지 않고 참거나 그냥 넘어가려 하면 그게 문제가 되는 곳이었다. "아, 너무 좋지 아니한가!" 내 의견을 피력하고 눈총을 받지 않을 수 있다니! 그래서 난 지금까지도 무례하지 않게 내 할 말을 다하는 법을 계속해서 배워나가며 시전하고 있다.
이 두 가지가 간단하게 추스른 "남(외국인)"이 보기에 내가 다른(전형적인) 한국인과는 다른 모습이었다면,
내가 호주에서 직접 겪어본 "한국인이 자주 하는 습관 깨기" 혹은 "외국인들과 이질감 없게 행동하기 수칙"을 소개할까 한다.
<알아듣지 못한 말에 알아들을 척하지 않기>
내가 처음에 호주에 왔을 때에는 못 알아들은 말에 대해 극심한 자괴감에 빠져들어 알아듣지 못한 자신을 탓했었다. 물론 알아듣지 못해도 알아들은 척했을 때도 많았다. 이럴 때에는 자연스러운 척 대화에서 페이드 아웃(fade-out)되는 기법을 썼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상대방은 얼마나 당황했을까. 대화가 끝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대화를 종료하며 사라지는 나의 모습이..
못 알아 들었으면 다시 되물어도 괜찮다.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알아듣지 못했는데 알아들은 척하면 그게 더 티 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멋쩍게 웃지 않기>
이 멋쩍은 웃음은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웃음 중에 하나인 것 같다.
민망할 때, 어색할 때 등등 우리가 남발하는 이 멋쩍은 웃음. 우리에게는 이 웃음이 전혀 이상할 것이 없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많이 생소하다는 것을 알았다.
내가 멋쩍은 웃음의 대가였기 때문이다.
과거의 나는 위에도 언급한 것과 같이 상황이 어색하거나 민망한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혹은 그냥 멋쩍게 '흐흐흐... 헤헤헤..."하고 가끔 혹은 자주 웃음을 날렸었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거나 했을 때에도 이 멋쩍은 웃음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이때 내가 들었던 말은 내 머리를 세게 들이받았다.
"왜 웃어? 갑자기?"
<Sorry(미안해)보다는 Thankyou(고마워)를 많이 하기>
미안한 것도 없는데 미안하다고 하지 말자.
한국말로 습관처럼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던 버릇이 영어로도 "쏘리, 쏘리"하고 튀어나오는 건 물론 나도 그랬다. 이 버릇을 고치기 위해 의식적으로 많이 노력했고, 쏘리보다는 땡큐를 더 자연스럽게 익히고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칭찬받았을 때 겸손 떨지 말기>
남이 칭찬해주면 "아니야~~~~"라고 부정하면서 속으로 좋아하기보단 "고마워!"하고 상대방의 칭찬도 덧붙여주자.
겸손의 미덕은 한국에서만 통하는 것 같다.
"너 오늘 예쁘다!"라는 말에 "아니야, 너가 더 이쁘지"라는 말도 안 되는 겸손 떨지 말고 차라리 속 편하게 뻔뻔해지는 게 호주에서는 더 통한다는 사실을 기억했으면 한다.
<자기 외모 비하하지 말기>
호주인들은(적어도 내가 사는 멜버른의 사람들은) 패션에 민감한 것 같으면서도 또 구릴 땐 겁나게 구리다. 그리고 구려도 당당하다. 이 말인즉슨, 이들은 자신의 모습에 대하여 타인의 시선에 집중하기보다는 자신에게 초점을 둔다는 말이다.
지금의 약혼자와의 연애 초기 때 내가 자주 하던 것이 내 외모 비하였다.
"아 나 오늘 너무 못생겼어." "나 좀 뚱뚱하지." "턱은 또 왜 이렇게 네모난 거야.."
그리고 그는 나에게 넌 진심으로 이 버릇을 고쳐야 한다고 충고했다. 왜 자신을 더 사랑해도 모자랄 판에 깎아내릴 생각만 하냐며 꾸짖는 그에게 많이 배웠고 지금은 외모 비하는 일절 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 남들은 당신에게 그렇게 큰 관심이 없다. 당신이 당당하게 행동하면 당당한 사람이 되는 것이고, 당신이 계속해서 자신의 외모를 비하한다면 당신은 '못생기고 불평불만만 가득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번외 이야기
<웃을 때 입 가리기>
어렸을 적부터 잇몸 보이게 웃지 말라고 그렇게 잔소리를 들었었다. 구강구조상 웃으면 잇몸이 툭 튀어나오는데 흉하다고 항상 잔소리를 들으니 뭐 이건 반강제적으로 입을 가리고 웃을 수밖에 없었다. 활짝-예쁘게 웃는 것은 것은 나에게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기며 살아온 나의 십대.
성인이 되어서도 예쁘게 웃는 것은 포기했다. 너무 호탕하게 웃어대니 이러니 남자친구가 생기지 않는다며 여자처럼 조신하게 "호호호" 웃으라고 조언을 받았었다.
하지만 난 결국 입을 가리고 웃는 것에 실패했고, 내 호탕한 웃음은 내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매개체가 되었다.
모두의 애나
호주, 멜버른에서 차일드케어 에듀케이터로 일하며 먹고살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mandoo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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