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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Mar 06. 2018

영어 울렁증 탈출기

말레이시아, 그리고 영문학 공부


대한민국에서 태어나 25살까지 살아왔고 호주로 넘어와 29살에 이곳에서 정착한 평범한 사람의 영어 이야기

영어 울렁증이 생기게 된 대학시절까지의 이야기, 밑에 링크 타고 읽어보셔요.

https://brunch.co.kr/@melbeducatorb/5








말레이시아

 결국 영어에 대한 자신감 부족으로 영문학을 복수전공으로 신청하지 못했다.(영문학 대신 심리학을 복수전공으로 신청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돌연히 2010년도인 대학교 3학년 때 말레이시아로 떠나게 됐다. 왜 목적 없이 휴학을 하고, 미국도 아닌 쌩뚱맞은 말레이시아로 가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는데, 그때는 남의 눈치를 많이 봤던 시절이기 때문에 나를 포장하기에 바빴다. "영어 공부하러 가는 거야~ 이모가 거기 사셔서 도움받을 수 있어~" 등등. 어떻게 포장을 하든 간에 사람들은 영어 공부하러 말레이시아에 갔다 왔다는 나의 경험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사실 떠난 진짜 이유는 나만의 발전 도모를 위함이 아니라 우리 가족에게 놓여있었다. 그때 당시 우리 가족은 서로에게 흩어져 어디로든 떠날 길을 찾아야 했었다. 그리고 이 기회가 내 인생의 거대한 변화를 만들어줬다.



말차(말레이시안 차이니즈) 친구들과 펍에 놀러가서 무슨 자신감인지 라이브 밴드와 노래부르던 소싯적


 말레이시아에서의 10개월 간 나는 7개월, 문법/단어/쓰기/읽기에 집중하는 영어 학원에 다녔고, 3개월 동안은 말하기/듣기에 집중하는 학원에 다녔다. (이때의 경험으로 지금도 아시아권 여행을 가면 내가 호주인인 남자 친구보다 더 그들의 영어를 잘 알아듣는다고 한다^^) 이때만 해도 벌써 영어공부를 한 기간이 총 십 년이 넘었기에,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는 퍼즐을 맞추는 기분으로 영어를 했다. 영어로 한 마디를 내뱉으려면 발음, 단어, 문법 등등 온갖 것들을 생각하느라 버퍼링이 걸린 마냥, 혹은 마치 책을 외워 암송하는 사람처럼 부자연스럽게 들렸다. 예를 들어, "I can do this."의 평서문을 의문문으로 바꾸려면 조동사와 주어의 위치를 바꾸고 끝을 올려서  "Can I do this?"로 말해야지, 자 말해볼까? 의 과정을 매 문장마다 생각하는 것. 

 

 물론 이 짧은 기간 동안 나의 영어가 엄청나게 늘지는 않았고, 그렇다고 해서 이 시간을 후회하지도 않는다. 말레이시아라는 미지의 곳(지금은 매우 유명하지만 그때 당시에만 해도 말레이시아가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다.)에서 내 인생에 처음으로 사귀었던 여러 인종의 사람들은 내 주전공 종교학을 공부하는 데에도 도움을 많이 줬다. "넓은 견문, 관대한 포용심!" 또한 십 개월간의 해외 생활로 영어에 대한 자신감이 붙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복수전공으로 신청했던 심리학을 취소하고 영문학을 집어넣었다고 한다.(모교의 아주 쉬운 다전공 시스템 사랑합니다.)


모스크의 기도소리로 울려퍼졌던 길거리 / 밖에만 나가면 사람들로 득실득실했던 마막들



늦깎이에 외톨이, 영문학 공부의 시작

 말레이시아에서 돌아온 뒤 복학을 했다. 이미 학년은 3학년. 새로운 복수 전공을 시작하기엔 약간 늦은 감도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영문학 공부에 박차를 가했다. 과 친구 없이 혼자 시작한 영문과 공부였기 때문에 어떤 교수님을 피해야 되는지 선호해야 되는지 단 하나의 정보도 없는 채로 필수과목을 체크해가며 수강신청을 했다.

 

 "영문학 개론", 교양 필수 첫 과목이었다. 한국인 교수님도 있었고 외국인 교수님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나는 외국인 교수님으로 선택했다. 선호의 기준이 없으니 그냥 시간표에 맞춰서 아무렇게나 선택했던 것 같다. (수강생 인원이 적어서 절대평가를 기대했는데 총인원이 18명이어서 절대평가 수업이었다!!!)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약간 흠칫 놀라면서 웃음이 스멀스멀 기어 나왔다. 교수님이 너무 젊고 잘생기신 것........ 나중에 들어보니 이 교수님은 아주 잘생긴 것과 학점 안 주기로 아주 유명한 교수님이었다. 그런데 그런들 뭐한담, 나는 절대평가여서 A를 맞았는데!!!!!


 내 허벅지 두께보다 두꺼운 원서로 진행됐던 수업이었다(영문학 모든 수업이 원서이긴 했지만 첫 수업이라 그런지 더 힘들었다). 개론인 만큼 소설이니 시니 에세이니 모든 종류의 글들을 다뤘기 때문에 내 머릿속은 정말이지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어찌 됐건 새로 시작한 공부, 잘 시작하고 싶어서 정말 열심히 했다. 핸드폰으로 딴짓할 틈도 없이 정말 빡빡했던 수업, 전자사전을 책 옆에 두고 모르는 단어가 나올 때마다 찾아보고 발음기호를 옆에 적어뒀다. 정말 공부하는 내내 내가 잘하고 있는 건가, 잘 따라가고 있는 건가 의구심이 들었지만 학점을 받는 순간, 아. 내가 해냈구나 하는 기쁨이 들었다.


 하지만 이 기쁨도 잠깐, 상대평가의 벽은 정말 높았고 잔인했다. 졸업하기 전까지 들었던 여러 영문학 수업들은

영어 잘하는 인간들이 이렇게 세상에 많았다니"하며 나를 새삼 놀라게 만들었다. 또한 내 영어 실력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시련의 연속이었다.


- 나는 대부분 수업의 조모임에서 성실하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프리라이더였다. (영어가 잘 안되니 사람들에게 도움이 안 됨.) 영어 잘하고 똑똑해 보이는 사람 옆에 붙어 간신히 C를 면하는 꼴이었기에..(그때 도와주신 몇몇 분들 감사합니다..)

- 제일 골을 친 수업은 호주 멜버른 출신의 시인-교수님이었는데 수업 반 학기가 지나고 나서야 그나마 발음을 알아들을 수 있는 정도였다. 이 말인즉슨, 전체 수업의 반절은 내 정신이 내 정신이 아닌 상태로 보냈다는 것. 질문에 대한 답도 제대로 못해서 쪽팔림도 많이 당했다. (정말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C로 마감했다는 사실, 영문학 수업 통틀어 첫 C였다. 너무나 억울한 것.)

- 영문학 특성상 토론을 많이 했다. 영어로. 텍스트를 읽어가서 혼자 소화해내는 것조차 벅찼던 나에게 영어 토론은 정말 토가 나왔다. 발언을 많이 하면 할수록 좋은 점수를 받는 걸 알았기에 넋 놓고 있을 수도 없는 노릇. 한 마디라도 하려고 기회를 엿보고, 문장을 생각해내고, 손을 들까 말까 초조해하고 하다 보면 자신감 넘치는 교포들에게 발언권을 뺏기기 일수였다. 하지만 나의 갸륵한 노력을 알아주신 그 잘생긴 교수님(그 교수님 다른 수업을 또 한 번 들었다^^..)이 나를 잘 이끌어주셨다. 모르는 거 있으면 남아서 물어보라고, 이메일 보내라고, 오피스로 찾아오라고(이상한 거 아님) 조언해주셔서 진짜 그렇게 했다. 교수님을 한 학기 동안 달달 볶아서 A+를 받아냈다. 노력하는 자의 보상이 이렇게 달았던가. 지금 와서 그때 했던 토론들, 에세이, 시험 다시 하라고 하면 절대 못할 것 같다. 아카데믹한 영어는 내 인생에서 잠시 사라진 걸로..

- 아무리 영어로 공부하고 영어로 시험을 보고 영어로 에세이를 쓴다고 해도 정작 영어로 말을 하는 기회는 적었다. 고작 수업 중의 토론 정도? 그나마 한 학기에 꼭 한 명씩은 생긴 외국인 친구들 덕분에 녹이 슬지 않았을 정도였달까.


 그런데도 영문학이 주전공인 종교학보다 성적이 월등히 높은걸 보면 정말 내가 열심히 했구나 싶다. 다시 생각해도 어떻게 해냈는지 모르겠다. 악으로 깡으로 발악했던 것 같다.



졸업 후 워킹 홀리데이

 졸업과 취업을 위해 토익을 보고 스피킹 시험을 보던 그즈음 다시 느꼈다. 아 영어는 정말 해도 해도 끝이 없구나, 완벽하게 잘할 수 있다는 건 불가능한 것인가. 그렇게 공부를 했는데도 토익 점수며 스피킹 점수며, 특출 나게 잘하지 못하고 간신히 중간보다 약간 높은 성적을 얻었다. 그래도 사라진 영어에 대한 두려움이 큰 위안을 주었다. 그때쯤에 나는 호주 멜버른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오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영어권 국가에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영어가 나의 삶을 좀 더 편안하게 만들어줬는가? 글쎄 잘 모르겠다. 더 고통받았으면 몰라도..


동생 보러 놀러왔던 호주 멜버른, 다시 오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그 때. 다시 여기로 돌아온 후엔 이 길 오줌냄새 너무 심해서 이후로 한 번도 안들린 "미사거리"


 

 영어와 관련된 호주 멜버른에서의 워킹 홀리데이 이야기, 국제 연애 이야기, 이민 이야기는 다음 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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