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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Mar 12. 2018

영어 울렁증 재발 - 호주에 첫 발디딤

호주 멜버른 첫 여행, 그렇게 다시 시작된 영어 공부

2012년도에 처음으로 호주 땅에 도착했다. (말레이시아에서 멜버른에서 넘어와, 교환학생을 마치고 워킹홀리데이를 시작한) 동생을 보러 10일간의 여행으로.


영어 그까짓 거 이만큼이나 공부했는데 호주 가서 좀 뽐내고 와야지 하는 심정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공항에서부터 영어에 겁을 잔뜩 먹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한 채!)

엄마랑 이모랑 셋이서 간 여행이었는데 이미그레이션에서 나만 옆으로 불려 나와 공항 경찰(?)에게 신상을 털렸다. 여행자에게 이렇게 빡빡하다니, 호주가 이렇게 깐깐하고 무서운 나라였나 싶었다.


순수한 “가족 여행”이었기 때문에 호주에 왔다고 해서 영어를 쓸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렇게 순탄하게 여행을 잘 마치고 돌아가나 싶었는데 내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난 사건은 여행 마지막 날, 한국으로 돌아가는 공항에서 생겼다.


바람이 매서웠고, “외국”이라는 느낌을 팍팍 준 2013년 8월. 멜버른의 플린더스역





원래 만성위염이 있는데 돌아가기 전 날 딱 도져버렸다. 장시간의 비행 도중 아플 것을 대비해서 상비약을 사러 공항의 한 약국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호주의 약통들을 보고 있자니 어디가 위장약인지 어디가 감기약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점원을 붙잡고 물어보자니 그 많은 stomachache 중에 어떻게 설명을 해야 나의 증세를 알아들으려나 하고 막막해졌다.


위염은 영어로 “Gastritis”이다. 의학적인 단어이고 위장 벽 보호 약을 찾으려면 속쓰림을 칭하는 heartburn이라고 했으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땐 이런 단어가 존재하는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사전을 뒤져서 내가 개스트라이티스가 있는데 약을 좀 찾을 수 있냐고 물어봤다. 수십 가지의 약 중에서 한 코너로 나를 데려갔다. 다시 한번 멘붕이 찾아왔다. 점원이 보여준 약이 내가 찾는 약이 맞는지를 알 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핸드폰을 다시 뒤적거리며 사전을 검색해봤다.


지사제???!


“내가 한 말을 전혀 못 알아들었구나” 싶은 생각과 “아 위염약 못 찾는 것 아닌가”하는 걱정이 동시에 들었다. 그때 마침 공항에 우리를 배웅 나온 동생 남자 친구가 약을 잘 찾았냐고 물어보며 약국으로 들어왔다. “이건 내가 원하는 약이 아닌 거 같은데 이걸 주네요..” 하고 있으니 오빠가 다시 한번 점원에게 가서 물어봤다.


바로 오빠에게 옆 코너 약을 보여주는 점원. 그리고 그 앞에 놓여있는 내가 찾던 “개비스콘”




오 마 이 갓


찾던 약을 구한 것에 대한 안도감보다는 내 영어에 뭐가 문제가 있었을까 백번 천 번을 고민하게 만든 순간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간 바로 다음 날 영어 스터디를 검색해서 “컬쳐 컴플렉스”라는 곳에 지원했다.






학문적인 영어는 제쳐두고 이제는 실용 영어를 배워야 할 차례임을 뼛속까지 느꼈다. 영어 스터디인 컬쳐 컴플렉스를 시작하면서 미드를 보기 시작했다. 흔히 영어 공부하면 바로 수식어처럼 따라붙는 미드 “프렌즈”는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웃음 코드가 단 한 개도 맞지 않고 그다지 재미가 없었다. 그 대신 내가 좋아하게 된 시리즈는 “모던 패밀리”였다. 각 에피소드가 20-25분 밖에 안 하기에 지구력, 집중력, 기억력이 잼병인 나에게는 안성맞춤이었다.


모던 패밀리에서 제일 웃긴 아빠 역할의 Phil



이렇게 재밌는 시리즈, 많은 사람과 나누자 싶어서 새로 시작한 영어 스터디, 컬쳐 컴플렉스 스터디 시간에 끼워 넣었다. 스터디를 위해 에피소드를 수십 번씩 돌려보며 일상에서 잘 쓰일만한 표현을 찾고, 영어 대본을 뽑아 같이 공부할 자료를 만들었다. 스터디에서는 미드뿐만 아니라 주마다 토론 주제를 정해 영어로 의견을 나눴다. 아무리 허접한 영어였다고 할지라도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생각해보고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있게 훈련을 한다는 건 정말 좋은 공부였다.





대학 때 영문학 공부를 하면서 생긴 좋은 습관이 있다면 (음성학을 공부하면서 발음기호 읽는 법을 더 구체적으로 배워서 도움이 많이 됐다.) 새로운 단어를 만났을 때 뜻과 동시에 발음기호를 찾아보는 것이다.


“들리지 않으면 말할 수도 없다”라는 말이 있다.


새로운 단어를 백개천개 외우느니 열개의 새 단어를 완벽한 발음, 뜻, 어느 상황에 쓰이는지를 제대로 마스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무조건 새로운 단어를 맞닥뜨리게 되면 발음기호는 자동으로 따라 나와야 한다.


예를 들어 “Island”를 철자로만 암기하고 한국어 발음으로 “이슬랜드”라고 암기했다면 외국인이 “아일랜드”라고 했을 때 머릿속이 하얘질 것이다.


십 년도 전에 내가 중고등학생이었을 시절, 유행했던 영어 단어 책이 있었다. 영어 단어를 연상법으로 쉽게 외우는 법에 관한 책이었다. 이 책은 발음기호를 싹 다 무시하고 그저 영어 스펠링 표기를 한국말로 읽어 우스꽝스러운 예문을 제시해 외우게하는 책이었다. 다시 생각해보면 단순 단어 암기 테스트를 위해서는 좋았을 수도 있지만 멀리 봤을 땐 최악의 책이 아니었나 싶다.





마지막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어 공부 포함 모든 언어 공부를 할 때 정말 필요한 삼박자는 반복(repetition), 관심(interest), 자신감(confidence)이라는 사실이다.




이 전의 저의 영어 공부 스토리는 이 링크를 타고 넘어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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