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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Mar 23. 2018

부딪히며 깨지며 익힌 호주식 생활 영어

호주 멜버른 워킹 홀리데이를 통한 생활 영어

영어에 탄력을 받기 시작한 때는 다시 호주로 돌아온 2013년도의 워킹 홀리데이 시절이 아닐까 싶다.




정확히 말하자면 2013년이 아닌, 2012년 12월, 호주 멜버른으로 다시 돌아왔다. 한국에서 아카데믹, 실질적인 영어 공부를 어느 정도 마치고 돌아온 상태였다. 이제 짧고 즐거운 여행이 아닌,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 멜버른으로 넘어온 나에게 영어는 실전이었고 현실이었다. 영어로 현실을 들이받아서 일을 구해야만 했다. 농, 공장을 갈 생각은 처음부터 꿈에도 꾸지 못했고(저질 체력에 공주병) 동생이 멜버른에서 지내고 있었기 때문에 경쟁력이 높은 멜버른 시티를 주무대로 삼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서빙일 정도, 멜버른에 깔리고 깔린 것이 카페이니 어렵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나에게 돌아온 현실은 참담했지만.






한국에 있었을 때 왜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을까, 일을 잡기 가장 어려운 12월 말에 나는 그렇게 다시 멜버른에 돌아왔다. 호주의 대부분의 가게들은 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휴일 준비를 하며 가게 사정에 따라 언제든지(얼만큼이던 길게) 휴일을 정한다. 크리스마스 시즌부터 1월 초까지는 거의 계속해서 홀리데이, 휴일이라고 보면 좋을 것이다. 어느 직종의 사람이든 간에 모두들 크리스마스와 새해를 위해 열심히 벌어 열심히 논다. 그 말인즉슨 내가 원했던 서비스업의 일은 12월에 찾기 어렵다는 뜻이었지만, 나는 그걸 모른 채 너무나도 순진하게 꿈만 가지고 이 호주 땅에 다시 돌아왔다. 한국에서 다시 시작할 나의 대학원비 3천만 원을 벌기 위해.


일단 일을 잡기 위해 영어 이력서를 만들었고 가게에 직접 들어가 이력서를 뿌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인생에서의 가장 용기 있었던 시간들. 다시 하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나는 무모했고 당찼다. 이력서를 가방에 넣고 한 가게 한 가게 들어가 "외워온" 영어 문장을 외우지 않은 것처럼 들리게 내뱉었다.


"안녕, 나 지금 일 구하는 중인데, 여기 사람 필요하니?"라는 식으로 너무 직접적으로 말하는 것보다는 "안녕, 나는 너의 가게에 사람이 필요한지 궁금해"라는 식의 간접 화법이 더 좋다는 말을 들었다. 외운 영어 문장을 마음속으로 백 번 천 번을 되뇌고 다시 입 밖으로 수십 번씩 내뱉은 뒤, 가게에 들어가서 자연스러운 미소와 함께 읊었다. 너무 긴장한 나머지 외운티를 팍팍 내며 10초가 될 말을 5초 만에 끝내버리거나, 그렇게 외운 문장인데도 불구하고 버벅대거나 했다. 대부분의 가게 사람들은 나에게 친절했다. 호주 사람들의 대부분이 "겉으로는" 친절하다. 하지만 조금 더 트인 눈으로 여기서 오래 지내다 보면 이 친절함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구분할 수 있다. 아무리 사람을 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다들 웃으면서 미안하지만 다음번에 와달라고 하거나, 이력서는 가지고 있을 테니 사람이 필요하면 연락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돌아온 인종차별도 존재했다.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기억한다. 다른 가게들에서 한 것과 똑같이 들어가 매니저가 있는지 물어보고, 내가 일을 구하는데, 이력서를 받아주겠나 하는 절차를 이행했다. 하지만 나를 상대한 그 프랑스 사람은 나에게 "미안한데 너 한국사람이니? 너 지금 엄청나게 바빠 보이는 거 알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이래"하는 뉘앙스) 근데 너, 우리가 바쁜 건 안보이니? 가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좀 차분해진 다음에 그다음에도 우리 가게에서 일하고 싶으면 내일 아침에 다시 찾아와"라고 했다.


두 번째 인종차별은 한 카페였다.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아는 인도인 매니저가 나에게 말했다. "너 한국 사람이니? 그렇게 보인다. 너 내가 트라이얼은 시켜줄 수 있는데, 그 트라이얼 올 때 마늘은 먹고 오지 말아줘. 손님들이 마늘 냄새 컴플레인할 수 있거든."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바로 쌍욕을 하고 가게를 뒤엎어버릴 일이었지만 그 앞에서 깽판을 치지 못하고 그저 그 가게를 나와 서서 분개하고 욕을 내뱉었다. 정말 많은 인종들이 얽혀섥혀 사는 멀티 컬처의 나라이지만 그 이민자들 사이에서도 인종차별이 존재하는 나라가 이 나라 호주였다.






여차저차 결국, 멜버른에 온 지 4개월 차가 되었을 때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있는 세 가지의 일을 얻었다. 말이야 쉽게 사개월이지 그 사이에 나는 정신적으로 너무 피폐해져 있었다. 하지만 일을 잡았기에 좋았고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으며 그렇게 또다시 그곳에서 배우기 시작했다. 카페에서는 카페 영어를, 레스토랑에서는 레스토랑 영어를 배웠다. 호주식의 영어를 알아듣기 위해 귀를 활짝 열어두었고, 얼굴이 시뻘게지면서까지 다시 물어보며 의사소통을 해내갔다. 백인 호주인뿐만이 아니라, 여러 인종 이민자 호주인들의 발음을 알아듣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했다. (한 번은 보드카를 뻑카로 발음하는 동양인 때문에 정말 인생 최대의 고비를 겪었다. 세 번 넘게 물어보았지만 그래도 못 알아들어서 메뉴판을 가져와서 손가락으로 짚어달라고 함.)


레스토랑에서 배운 영어가 있다면, 음식과 손님을 다루는 용어였다.

이때까지 영어 공부를 하면서 "seared"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없다. 매니저가 메뉴 하나하나를 설명해주는 시간이었는데 저 단어를 사용했다. 딱 봐도 모르는 게 티가 났는지, 무슨 말인지 아냐고 물어봤다. 모른다고 순순히 대답했고, 매니저는 나에게 이래저래 설명을 해주었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중에 사전을 찾아보니 "불로 살짝 그을린" 정도의 뜻이었다.

호주에서는 피망을 "(green) pepper"가 아닌 "capsicum"라고 하는 것을 배웠다.

또한 "예약하셨나요? 어떤 이름으로 예약하셨어요?"를 영어로 배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떤 걸로 주문하시겠어요?"가 "What do you want?"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기타 등등 많은 영어 구문과 단어를 "호주식"으로 다시 배웠다. 실전 앞에 다 깨지고 다치면서 얻어낸 성과였다.






맨땅으로 헤딩한 나의 무모했던 워킹 홀리데이 시절, 그나마 그동안 한국과 말레이시아에서 공부한 세월과 노력, 그리고 센스 감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본다. 그렇지만 다시 생각해봐도 비영어권의 나라에서 목적 없이 공부한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었다. 여차저차 결국엔 호주에서 정착하게 되었는데, 이때까지 미국식 영어를 배운 것도 사소한 걸림돌이 되었다. (발음과 철자, 그리고 미묘한 표현 정도의 차이랄까)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문화적인 요소가 아니었을까 싶다.


호주인들은 스몰챗(그게 누구 건간에 시작되는 날씨 이야기, 교통 이야기 등 별 오만가지의 이야기)을 사랑한다. 나는 외향적으로 보이지만 내향적인 사람인데, 스몰챗에 아주 잼병이다. 그리고 싫어한다. 그런 나에게 스몰챗을 너무나도 사랑하는 호주 사람들과의 정서교감은 많이 힘들었다. (지금도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견딜 수는 있다.)


영어권의 나라에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그게 누구이든 간에,  "Hi, how are you?"로 대화가 시작된다. 하지만 "How are you?"의 대답을 "Fine, thank you, and you?", 하와유의 뜻을 "너 어떻니? 어떻게 지내니? 너 상태 어떠니?"라고 공부한 나에게는 이 질문에 익숙해지는 데에도 꼬박 일 년이 넘었다. 처음엔 저 질문에 도대체 뭐라고 대답해야 되는지, 하이만 하면 될 것을 왜 남의 안부를 굳이 물어보는 것인지 너무 어려웠다.


두 번째 문화적 거리감은 처음 일을 잡게 된 카페 사장과 나 사이에 생겨났다. 첫 트라이얼을 마친 나를 불러 앉힌 사장은 "So, what do you think? Are you interested in?"라고 물었다. 나는 이 질문에 "아니 관심은 없고 일은 하고 싶어"라고 대답했었다. "나는 네가 맘에 드는데, 일 시작할래?"가 아닌, "너 오늘 어떘어? 일 할 마음 있니?"라고 나의 관점에서 물어본 질문을 아예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나의 한국적 정서적 코드와 그들의 것과는 일치하는 것이 한 개도 없었다.


다행히도 의사소통의 문제가 있었음을 사장이 이해했고 그 카페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곳에서 나의 인생의 반쪽 호주인을 만났다. 우리의 만남을 통해 나의 호주식 영어는 더욱 무르익어 갔으며 지금까지도 나는 영어를 배우고 있다.




나와 너!






영어 울렁증, 이 전 글들은 밑에 링크를 타고 와서 봐주세요!


https://brunch.co.kr/@melbeducatorb/8

https://brunch.co.kr/@melbeducatorb/6

https://brunch.co.kr/@melbeducatorb/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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