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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의애나 Mar 07. 2018

호주 멜버른 차일드 케어의 설날 맞이

(조금 늦은) 2018년도 호주 유치원의 설날 맞이 이야기 

같이 일하는 선생님 중 중국 국적을 가진 사람이 세 명이다. 

매년 구정 때면 그들이 "차이니즈 뉴 이어"라고 해서 센터를 꾸미는 데 이번 연도도 뭐 다를 바 없이 붉고 황금빛으로 빛날 예정이었다. 


같이 구정을 쇠는 마당에! 내가 이 센터에 풀타임으로 일하게 된 마당에!

한국의 무언가를 알릴 기회가 이때다 싶었다.






첫째로  전통적인 그림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글귀가 합쳐진 것들을 모아본 뒤, 가장 괜찮은 몇 장을 선택해서 한쪽 코너에 붙였다. 새해 인사도 한국어로, 영어로, 한국어 발음기호로 써붙였다. 우리나라 국기도 갖다 붙였다. (한국 국기 아무도 모를 것 같았음.. 역시나 모르더라.)

반 아이들과 색종이로 복주머니 접기를 같이 하고 싶었지만 두 살도 안된 애기들이랑 색종이 접기라니 말도 안 되지.. 나도 저거 접다가 맘대로 안돼서 속에서 열불이 났는데.


온전히 아이들을 위한 코너라기 보다는 우리 반에 들어오는 어른들(선생님, 학부모) 교육용으로 만듦.










두 번째 기획은 요리 경험.

떡국은 설날의 꽃인데, 뜨거운 국물 음식이기 때문에 만들기 꺼려졌었다. 아이들이 너무 어리기도 하고 떡국을 좋아할까 싶기도 하고. 그래도 추진했다. 설날에 떡국이 빠지면 설날이 아니지. 


 떡국을 만들기에 앞서 우리에겐 너무나 익숙한 멸치육수가 문제가 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음식 재료를 적어 같은 반 선생님에게 보여줬는데, 멸치를 안 먹어본 애들도 있을 테니 요리 실습 전에 부모님들에게 미리 물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아차 여기는 알러지의 천국 호주였지." 역시나 물어보니 멸치를 안 먹어본 아이가 있어서 그 아이는 센터에서 제공하는 다른 점심을 먹었더란다.
 이 같은 경우에 (특히 2세 이하의 어린아이들), 우리는 절대 센터에서 새로운 음식을 시도하게끔 하지 않는다.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알러지 반응을 대처해야 할 사람은 차일드 케어 교사가 아니라 부모이기 때문이다. 알러지가 있는 아이는 병원에서 의사의 처방전을 받아 차일드 케어에 제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떡국을 추진하긴 했지만 약간 위험성이 있는 메뉴였기 때문에 대안으로 김밥을 선택했다. 설음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아이들과 다 같이 함께 만들고 먹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모든 아이들이 요리 경험에 참여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이주에 걸쳐 각각 다른 날에 진행했다. 


첫 주, 

첫 요리 날은 정신이 없었다. 


실내에서 아침에 요리를 시작하고 점심으로 그 음식을 먹을 계획이었다. 그런데 아직 적응 기간을 갖는 한 아이가 울기 시작해서.. 모두가 방 안에서 요리를 하는 것이란 불가능해졌고 그 아이를 포함한 몇몇의 아이들은 밖에 데리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여차저차 점심시간에 식탁에 둘러앉아 김밥말이도 없이 손으로 김밥 말아 먹는 호주 아이들



둘째 주,

성공적이었다. 감격스러웠던 둘째 주 요리 경험.


조금 더 나아진 김밥 말이 경험을 위해 집에서 김밥 말이를 챙겨갔다. 모두가 식탁에 둘러앉아 내가 보여주는 김밥 말이 시범을 보고 한 사람씩 차례를 지켜 하나하나 말아갔다. 


김을 한 장씩 나눠줬다. 다들 이게 뭐지 싶은지 다들 입으로 갖다 댔다. 그 위에 밥을 올리고~ 참기름에 살짝 볶고 식혀놓은 당근과 얇게 썰은 오이를 집게로 하나씩 집어서 밥 위에 얹었다. 김밥 말 시간!!!!


내가 애들 뒤에 서서 같이 말았다. 한 애는 자기 혼자 하겠다고 내 팔을 밀쳐내기도 했는데. 얘야, 김밥 마는 게 그렇게 쉽지만은 않단다. 한국인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하다고-(나도 잘 못한단다.)








정말 놀랍게도 저번 주에는 김밥을 꺼려하던 한 아이가 이번 주에는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역시 아이에게 새로운 음식을 소개할 때에는 적어도 세 번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모든 아이들이 떡국도 엄청 잘 먹었다. 한 아이는 떡을 손으로 잡고 뜯어먹는데 귀여워서 내가 그 아이의 볼을 뜯어먹고 싶었다. 



한국을 떠나 호주에서 살다 보니 명절을 잊고 지낼 때가 많은데, 이번 설은 운이 좋게  많은 사람들과 함께 나누고 즐길 수 있었다. 아무리 고된 하루라도 아이들과 대화와 웃음으로 교감할 수 있는 따뜻한 일을 하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본다. 








센터 페이스북 페이지에 소개된 루나 뉴 이어(구정) 이벤트 소식.

https://www.facebook.com/KLEEducation/posts/1429508397161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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