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동의 여름

완벽에 금이 가도 괜찮은 날들에 대하여

by meldliy

나는 어쩐지 아날로그가 좋아. 선명한 필름보다 흐릿한 필름이 좋아. 우아한 재즈 가수보다 투박한 아저씨 가수가 좋아. 100색 유성펜보다 뭉뚝한 나무 색연필이 좋아. 정체의 찰나보다 미동의 찰나가 좋아.


그래서 나는 고색의 체크무늬 셔츠를 자주 입곤 해. 그 셔츠를 입은 나는 현재에도 과거에 살고, 미래에도 과거에 살 것만 같거든. 알지도 못하는 과거에 사는 기분을 너는 아니? 완벽이란 미학에 선명한 금이 그어져도 기쁜 기분을 말이야. 어쩌면 뜨개질의 결말이 완벽하게 굵은 것보다, 바느질의 결말이 어설프게 얇은 게 차라리 마음에 드는 그런 기분일 것도 같아.


커튼이 조금은 비뚤어도, 빨래 널은 줄이 조금은 기울어도 제 일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너의 옷장에도 조금은 헤진 옷들이, 조금은 엉망인 채로 걸려 있기를 바라. 그럼에도 너의 애정이 방 안의 모든 물건에 스며들기를. 그리고 그 물건들이 언젠가 완벽을 무너뜨린 너에게 조용히 애정을 되돌려주기를. 그렇게 너를 무너뜨린 첫 번째 사람이 너 자신이 되는 날이 오면, 고색도 신색도 아닌 때 묻지 않은 하얀 이불을 내가 너에게 선물할게. 그러면 너는 시들한 꽃 한 송이를 꺾어서, 두껍고 근사한 책 사이에 휴지 한 장으로 덮어 끼워 넣어주렴.


아날로그란, 늘 정확하지 않아서 더 오래 남는 것 아닐까? 그러니 조금 삐뚤어진 채로, 조금 느린 속도로 걸어가도 괜찮아.


조금 무너진 채로도 너는 여전히 너니까.

완벽하지 않은 너의 오늘이

이미 충분히 제 몫을 하고 있으니까.


아날로그 필름 속에 너와 내가 함께 들어있는 그날,


아마도 여름은 시작되겠다.



완벽을 향해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사람들에게 흐릿함과 어긋남, 미완의 상태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