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의 낙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0’의 자리로

by meldliy

0의 낙원에 대하여 아십니까


입력값도, 출력값도 없이

0이 될 수 있는 그곳을 당신은 아십니까


거물 수레가 이끄는 종이접기 놀이는 그곳에 없답니다

영안실에 누워 당신이 바라보는 것이라곤

아이를 낳지 않으려는 회색 가지일 뿐이겠지요


그곳에선 찢어지지 않는 아스팔트 위에서

빽빽하게 접힌 종이학들이 당신을 반겨준답니다


동정도, 연민도 없는 그곳에서 존재하는 것이라곤

당신에게 결코 향하지 않을 무색의 색안경뿐입니다

당신이 견뎌냈던, 색안경을 낀 사람들의

시끄러운 지나침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당신의 굳은 손가락은 이제,

힘을 주지 않아도 돌아가는 솜바퀴를 닮아있을 겁니다

만연한 경적소리에도 위태로이 걸어가던

당신의 가장자리를,

이제 그리운 이의 손을 잡고

묵묵히 사랑할 수가 있답니다


무시무시한 1을 위해

당신이 쏟아냈던 모든 발자취들이

무시무시한 1을 위해

당신에게 뻗어있던 붉은 휴식들이

이제는 모두 0이 되어

보드라진 당신의 손에 단감 하나를 쥐어 줄 겁니다


굳은살은 물렁살이 되고

거물 수레는 빈 수레가 되고

그렇게 회색 가지는 아이를 낳을 테니


그러니,

당신은 단감을 쥔 그 손을 꼭 놓지 말고

0의 낙원으로 와주세요



이 글은 폐지박스 수레 위에서 잠시 쉬던 한 노인의 모습을 떠올리며 쓴 글입니다. 숫자처럼 끝없이 비교되고 밀려나는 삶의 가장자리에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0’의 자리로 그를 초대하고 싶었습니다. 노동과 시선,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오직 사랑과 휴식만이 남는 낙원을 건네고자 한 작은 바람입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