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불리지 않은 이름
같은 찬란을 겪어낼 우리는 어쩌다 만나게 됐을까? 우리는 완성을 위해 모였지만 모여서 하는 거라곤 완성작을 재연하는 것뿐인데. 무명 중에 무명인 우리는 느슨한 역할극에 자주 취해있었어. 다 쓴 연필 끝은 새로 깎지 않고, 이미 넘긴 대본을 다시 넘기고, 너가 만진 조명을 이젠 내가 만지는 일. 누군가 올라탄 사다리를 잡아주는 일마저도 극 중 에피소드가 되는 아마추어들. 우리가 만든 무대에 오르는 건 스무 번의 만남 중 고작 한번뿐이야. 무명이 무명에게 선보이는 딱 한 번의 무대. 관람객들에게도 역할이 있다면, 어둠을 어둠으로 단정하기. 정면보단 옆면을, 그리고 마주치지 않으려는 눈을 바라보기.
오늘의 역할과 내일의 역할이 같아도 매번 다른 연기를 선보이는 무명에게 찬란에 대해 물어본 적이 있어. 찬란을 겪으면서도 아직 다 이루지 못한 찬란을 생각하면서. 역할극이 끝나면 돌아갈 곳이 없어서 그때는 유명인 척 연기를 하게 되더라는 말을 했어. 그렇게라도 하면 레드카펫 위를 걸을 수 있을까 하고. 근데 찾아주는 사람들을 모두 거절했대. 레드카펫보다 이미 걸어본 적 있는 시간 위에서 춤을 출 때가 그리워서. 그 위에서 다시 같은 장면을 연기하는 일이 그리워서. 그래야 매번 다른 찬란을 겪어낼 수 있으므로.
다시 꺼내본 사진 속 우리의 얼굴이 역할과 어울리지 않아서. 무대 뒤편의 소음이 그대로 남는 사진이어서. 그럼에도 우리가 꿈꾸는 찬란을 이미 겪은 그때의 우리 얼굴이어서. 아마도 그게, 아직도 우리가 무명일 수 있는 이유이지 않을까?
이 글은 같은 것을 사랑하고, 같은 것을 꿈꾸며 모였던 사람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한때는 무명인 채로 완성을 꿈꾸었지만, 어쩌면 그들은 이미 완성된 순간 속에 서 있었던 가장 멋진 유명이 아니었을까 하는 마음을 담고 싶었습니다. 어딘가에서 한 번쯤 같은 빛을 지나온 이들에게 이 글이 조용히 닿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