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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May 25. 2021

작은 오빠



오래된 사진을 보다 보면 시간을 역순으로 돌려서야 계산이 된다. 덕분에 몰랐던 일들을 발견하곤 한다.

63년 전, 막내 이모 즉 우리 엄마의 막내 동생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서 몇 년 동안 풀지 못했던 의아함이 있었다. 사진에는 외가의 삼 세대 식구들 스무다섯 분들이 있다. 내가 태어나기 삼 년 전 사진이다. 사진만 봐서는 연도를 알려줄 만한 정보가 일도 없지만, 사진의 둘째 줄 오른쪽 첫째에 계시는 우리 엄마가 포대기째로 안고 계시는 어린 아기가 누구일까, 하는 것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었다.

그 결혼식의 신부가 막내 이모가 틀림이 없는데  이모네의 첫아이 즉 그 사촌이 나와 동갑이란 점이 의문의 시발이었다. 사진 속에 일곱 명 되는 아이들 즉 언니 오빠들의 나이를 아무리 두드려 맞춰봐도 오리무중이었다.
한참을 씨름 끝에 문득 생각이 났다. 이모가 첫딸 즉 사촌언니를 일찍 여의었다는 얘기.... 그 시절 결혼식은 추석과 가을걷이가 끝났을 무렵이었을 테니 엄마가 안고 계신 아기가 나의 작은 오빠 즉 1957년 음력 8월 10일에 태어난 나의 작은 오빠 고 정영조라는 유추가 되었다.

사진 속에서 일 세대 또는 1.5세대는 얼굴조차도 모르는 분들이지만, 나의 외할매는 첫 손자 즉 아홉 살 소년이었던 외갓집 큰오빠를 앞에 세우고 계시기에 알아봤다. 그 옆에 서 있는 아홉 살 소년이 나의 큰오빠 정진영이다. 큰오빠 뒤에 조자 재자 연자를 쓰셨던 서른 살 우리 엄마가, 그 뒤에 정자 기자 특자를 쓰셨던 서른여섯 우리 아부지가 계신다. 영아 사망률이 높았고 조혼이 일반이었던 시대의 젊은 나의 부모님은 첫딸을 여의었어도 이남 이녀를 보셨고 이후에 나와 동생을 즉 딸 둘을 더 보셨다. 참 뜻밖에도 우리 아부지 요샛말로 꽃미남 급에 드실 정도로 준수하시다. 앞줄 맨 왼쪽 안경을 잡수신 외삼촌은  예나제나 멋지셨다. 사진을 같이 본 동생 왈 "외삼촌은 지금도 통하시겠네"라고 하는데 접수가 된다. 식민지를 벗어났음에도 그 시절의 고뇌를 다 지고 있는 듯한 지식인처럼 보이신다.

그 결혼식의 주인공이었던 이모가 얼마 전에 세상을 뜨셨기에 이제 이남 사녀였던 엄마의 직계는 사진 속에서 서른이셨던 외숙모만 생존하신다.
이런 사진을 박는 것도 결혼식 정도급의 행사에서나 가능했을 터이니 나의 작은 오빠에게는 처음 찍힌 사진이 되겠다. 엄마가 외가의 넷째였듯이 우리 육 남매의 넷째인 우리 작은 오빠가 이제 세상에 없다. 육십삼 년 전 추석을 닷새 앞두고 세상에 왔던 오빠가 얼마 전에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사진 속 그 아기가, 키가 180이 되고 키가 커서 어깨 좀 펴라는 잔소리를 듣고, 팔 길이에 맞는 와이셔츠를 못 찾아서 맞추어서 입었던, 하얀 치열을 드러내고 웃노라면 오른쪽 볼우물이 생기고, 착하고 선한 사람으로 기억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기꺼이 전화기를 들고, 쉴 새 없이 전화가 오가든, 감기 한번 걸린 적이 없을 정도로 건강했던 그가.... 육십삼 세를 채우지 못하고 유명을 달리할 줄을 그때는 어찌 알았으랴

며칠 전에 작은언니가 전화를 했다.
기도하는 가운데 두 번 '우리 영조'를 봤노라고, 젊고 건강한 모습으로 정말 환하고 밝은 모습으로 활짝  웃더라고, 그 모습을 보고는 모든 걱정을 다 잊게 되었노라고, 천국에서 엄마도 만나고 잘 지낼 것이라고 했다.
기도 중의 환상을 갖고 까칠한 괴학자들이 뭐라고 할래나 모르지만, 무의식 의식 이런 이분법도 별무 관심이다. 성경 속의 이들에서 기도 중의 환상은 하나님의 계시였고 위로였기에, 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

오빠의 마지막 몇 년을 돌이켜보면, 원체 말이 없는 데다 의사표시에 서툴렀기에 겪었을 어려움이 먼저 떠오른다. 많이 외로웠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그저 아쉬움만 한가득이다. 부디 이 아픔을 잊지 않기를, 지금 하는 후회를 다시 하지 않기를, 남은 언니와 두 조카가 바로 오빠의 현존임을 새기는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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