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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May 26. 2021

나 홀로 투신한 정치, 그 예측 가능함에의 짝사랑

정치에 관심이 많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쓰여지든 쓰여지지 않았든 법과 제도, 규칙이 정치의 결과물이니 이유는 이만하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그 시발은 분노였다.

언제부터인지 조차도 기억하고 있다.


20년 더 전에 있었던, 9시 뉴스 시간에서였다. 캄보디아에서 벌어진 내전 소식이었다. 킬링 필드가 엊그제 같은 그 나라에서 일단의 피난민들을 보여주었다.  아마도 6.25 전쟁 때 우리도 저랬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노라니 깊고도 깊은 분노가 치밀었다. 국내 정치의 헤게모니를 쥐겠다고 싸우는, 전 국토를 전쟁터로 만들고 전 국민을 난민으로 만든, 두세 개의 정치 집단들에 거의 증오와도 같은 감정이 들었다.


 


관심이 지대하면 주워듣든, 읽든 남는 것이 있는데 기중에 <예측 가능성>이란 말이 있다.


개인과 사회의 성숙성의 척도는 예측 가능성에 있다고 한다. 자녀들에게 최악의 환경은 일관성 없는 부모라는 정설은 공감 이전에 상식이다. 예측 가능성이 없는 조직과 사회는 불안과 불행의 일상화이다.


고고도 미사일 즉 사드가 한반도를 흔들고 있다. 찬반을 논할 마음도 처지도 아니다.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지만 대통령부터 초선 의원들까지 예측 가능성 제로점 시야를 보여준다. 오천만의 때한민국이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셈이다.


 


3년 전의 일이다. 예순두 살의 큰언니가 아파트 동대표 선거에 나간 일이 있었다. 20년이 넘도록 살고 있었던 덕인지, 나이 덕인지 뭔지는 몰라도 누군가 엄청 밀었던 모양이다. 한 번 나가보라고, 아마도 잘할 거라고.


평생 학교 반장도 못했던 양반이 얼떨결에 선거라는 델 나갔지만 구색을 갖춘다고 선거 공약이란 것도 있었다. 상대방이 젊은 데다 남자이고, 선거의 경험이 좀 있었던 인물이었던가 보다. 처음부터 게임이 안 되는 경기였다. 선거 전만 해도 이번에 떨어지면 다음에도 나갈 거라는 등 기염이 대단했길래 내심 걱정을 했다. 혹여라도 그놈의 선거가 언니에게 충격, 실망 또는 선거 중독병 뭐 그런 걸 불러 오지나 않나 하고.


 


결과가 하도 뻔해서 궁금할 것도 없었지만, 정말 또 나갈 거냐고 농반 진반의 물었더니 돌아온 한마디가 나도 모르게 깔깔 웃음이 터지게 했다.


“… 도대체 내가 왜 그런 델 나갔는지 모르겠다. 이리도 편한데…”


낯가림이 좀 있는 사람이었음에도 그때부터는 마주치는 누구와도 최소한 미소라도 지어야 했던 것 같다. 평소 매무새가 깔끔하고 단정했음에도 입성조차도 맘이 쓰였다고 한다. 갑자기 누군가 찾아올 수도 있었고, 이래저래 나갈 일도 많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마디 해 줬다.


“언니 앞으로도 누가 밀어서 하는 짓은 하지 마쇼, 언니가 정 하고 싶으면 맘껏 허시고…, … 암만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따로 있다우”


내가 말하는 ‘그런 사람들’이란 최소한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을 뜻 한다면, 그 아파트 주민들도 뭘 봤든 떨어뜨릴 사람과 뽑을 사람을 제대로 골랐기만을  바란다.


 


요새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보면 저 나라가 이제 갈 데까지 갔구나 하는 맘이 든다. 생각 없이 쏟아내는 상스런 말로 예측 불가능을 정점까지 끌어올린 사람을 대통령 후보로 밀어준 미 공화당원들을 보면서 하는 끊이질 않는 생각이다.


트럼트와 쌍벽을 이루는 몇몇 얼굴이 지나간다. 혜성처럼 나타나서 온갖 예상을 뒤엎는 사람들의 결말 또한 예측 불가능이라는 점에서 시끄럽게 또는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곤 한다.


 


이쯤 되면 이미 밝힌 셈인데 나는 오래전부턴 힐러리 클린턴 편이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녀가 쓴 몇 권의 책을 읽었다, 가 이유이다. 그녀의 책 전부를 관통하는 일관적인 철학은 정치였다. 역사와 개인의 삶이 정치인들의 결정에 좌우되는 것이 현실이지 않은가. 놀라우리만치 그가 몸담은 민주당의 대의와 신념에 정통했다. 상대당인 공화당에 대해서도 어느 이론가 보다도 해박했다. 다시 말하면 그 정도 수준의 일관성은 예측 가능성의 확률을 높인다.  


그만큼이나 준비된 후보이자 대통령감이 없음에도 실수들 또한 있다. 70년 인생에 40년이 넘도록 정치의 한 복판에 살았던 사람에게 백이숙제급의 도덕성에다 능력까지 갖추라고 한다. 원할 수는 있으로되 그렇다면, 누가?라는 질문으로 허공에 떠 돈다.


 


작년엔가 이멜다 마르코스 즉 전 필리핀 대통령 부인이 뉴스에 뜬 적이 있다. 한때는 그리 보기 싫지 않았던 사람이 참으로 흉측하게 나이 먹은 얼굴이었다. 생일이라고 거리에서 빈민들에게 동전을 뿌리고 있었다. 그것 받겠다고 이리저리 뛰는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가까이에서는 경호원 비슷한, 인상이 험악한 여자들이 빈민들의 접근을 막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 홀로 정치에 투신하게 했던 뉴스 한토막이 불현듯 떠올랐다.


필리핀의 젊은 여인들이 한국으로 가정부 취업을 위해서 한국말을 배우고 있다는 화면이었다. 젊은 여인들을 가정부로 팔아먹을 정도로 나라를 거덜내고, 구두를 삼천 켤레 쟁여놨고, 전 국민을 걸인과 빈민으로 만든 사람이 뿌리는 동전이라니.


 


화가 난다


16.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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