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모함을 찾습니다
I'm still Hungry
비올라는 음이 낮고 어두워서 독주 악기로는 적합하지 않고 바이올린과 첼로의 음을 살려 주는 소리를 낸다, 는 글은 내게 비올라라는 악기의 첫인상이다. 중학교 1학년쯤에 들었을 법하다.
리처드 용재 오닐의 이야기는 듣기도 하고 보기도 해서 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앙상블 디토의 시작부터 12년간 음악감독이었고, 그보다 먼저 현존하는 비올라 연주자 가운데는 몇 손안에 꼽을만한 예술가이다. 앙상블 디토의 마지막 음악회를 앞두고 가졌던 인터뷰를 보노라니 도처에서 마음을 끄는 표현들이 쏟아졌다. 자연스러웠음에도 진지하기 그지없는 그의 이야기가 해묵은 생각을 불러왔다.
현악 앙상블 디토와 함께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 삶에서 겪는 많은 일들 중 가장 의미 있는 일이란 때로는 무모하고 노동집약적이죠"(dumb and labour intensive)라고 했다. 번역 참 좋다.
새해가 시작되면 복 많이 받으라는 얘기를 주고받는다. 말 그대로 덕담인데 말로 한다고 뭐 달라지나 하는 시니컬에다, 복이라는 개념이 헷갈려 버린 내게는 들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다. 그래도 상대방이 인사를 먼저 채리는데야 어쩌랴 하는 수 없이 따라 한다.
새해에 무슨 계획이나 희망이 있냐는 얘기를 들으면 더 갑갑해진다. 도대체 계획도 꿈도 없어진 지가 하도 오래라서 당황도 되고, 도저히 이루어지지 않을 몇 가지가 떠올라서 나더러 어쩌라구 하는 맘까지 들곤 한다. 언젠가 할 말이 없어서 '닥치는 대로' 산다, 고 했는데 그럴싸해서 이후로는 그 말을 하고 산다. 듣는 쪽에서는 농담이라고 생각하는 눈치인데 나는 진지하다. 그럼에도 대놓고 이런 말을 하노라면 좀은 찜찜하다. 내심 여전히 그럴만한 좋은 계획이 있으면 좋겠다거나, 그로 해서 매일과 순간을 깨어있게 살만한 어떤 무엇에 고프고 목마르다. 이런 생각을 하노라면 있는 것도 아니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님에도 잡힌 것도 아닌 잡히지 않은 것도 아님에 빈손을 내려보게 한다.
어느 시기 한참 동안 자서전, 평전이나 회고록들을 좋아했다. 장삼이사 무명인 육십억 인구 가운데서도 몇몇 나에게까지 알려진 이름들인 유명인들의 성공담에 공통점이 있다면 스스로를 행운아라고 하는 점이었다. 그 이유들 또한 공통점이 있다. 스스로도 밝히거니와 내가 보기에도 자신이 좋아하는 일과 잘하거나 하고 싶어 하는 일을 일찍 발견했던 이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니 늦어도 되고 어느 시기라도 상관없다. 이미 발견되었거나 발견한 바로 그 점이 부러워서 때론 마른침을 꼴깍하곤 했다.
그와 함께 여전히 시달린다. 나는 뭘 좋아할까, 뭘 잘할까, 어떻게 하면.... 의문과 질문은 현재 진행 중이다. 슬프게도 또는 고맙게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는 것은 이전과는 다르다"는 말을 빌리자면 "나는 뭘 사랑하나, 안 하고서는 견딜 수 없는 것이 무엇일까, 라는 해묵은 질문이 있다.
용재의 말을 빌리자면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일은 무모하고, 많은 시간을 들인다는 말이 이리도 와닿음은 이루지 못한 또는 꿈조차 꾸지 못했던 무엇에 대한 송가처럼 들려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