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의 고향 방문 끝자락에 있었던 일이다. 다다음날이면 출국 있었기에 동생과 함께 서울에 갔다. 석촌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고마운 친구 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되었다. 도착해서 짐을 풀 필요도 없었고, 네 여자가 7년만에 만났으니 오죽 말이 많으랴. 중구난방 격의 인사가 오갔다.
두 서울내기에게 뉴질랜드에서 온 촌사람들인 나와 동생을 생각해서 '롯데 월드에 가자'고 얘기가 되었다. 호수 주위를 따라 걸었더니 입구가 나왔고, 지하부터 시작해서 걷고 또 걷고, 바쁠 것도 서둘 것도 없는 걸음이었다. 저녁때가 되었으니 ‘밥을 묵자’로, 밥을 먹고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가 ‘영화 보자’로 낙착이 되었다.
한국 영화를 보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개봉 중인 영화가 없었다. 뭐가 좋겠냐고 숙덕거리고 있었지만, 자칭 영화광인 나는 참견할 마음이 없었다. 기중 나는 입은 다물고 지갑만 열면 나이 값을 하는 셈인데 내 지갑을 쳐다보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일본 영화 한 편과 고만고만한 할리우드 영화의 포스터들이 도배를 하고 있고, 보고 싶은 한국 영화가 없으니 그리 흥이 나질 않았다.
그보다는 롯데 월드라는 데가 처음 와보는 동네라서 굳이 영화가 아니래도 눈앞의 풍경이 신선했다. 완벽한 조명에 화려한 가게들이 할리우드 영화 속의 장면들과 별로 다르지가 않았기에 무료하지도 않았다. 이럴 때는 약간은 무심하다는 듯, 초연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보는 것만도 충분하다. 먼 산 보듯 앞뒤를 기웃거리고 있노라니 영화표를 샀다고 했다. 다시 생각해봐도 '뭘 본들 어떠랴, 덤 같은 하룻밤인데' 하는 마음이었고, 일행 중의 한 사람이 나보다도 쎈, 보통 입담이 아니었기에 분위기가 바뀌는 것은 나쁘지 않았다.
요즘은 내가 사는 크라이처치에서도 종종 한국영화가 걸리긴 하지만, 사실 요 근년 영화관에서 본 영화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14년 전, 이민 오기 전에 친구와 영화를 보러 갔을 때는 정말 별로였다. 내가 좋아하는 ‘오빠’가 주연이라서 골랐음에도 너무 시끄러워서 머리가 아팠다. 12년 전, 교회 친구들과 영화를 보러 간 적이 있었는데 잠만 자고 나왔다. 겨울밤에, 지금도 그렇지만 자막 없는 영화는 이민 초기의 내 형편에는 화중지병이라, 혹시 하고 갔다가 비싼 잠을 자고 나왔다.
거의 15년 만에 한국의 영화관에서, 불법 다운로드가 아니라 큰 화면에 자막이 있고, 얼마 전에 리뷰를 읽었기에 실화에 근거하는 내용이라는 것만은 맘에 들었다. 백인 남자들의 세계, 그것도 과학의 세계에 오직 실력과 노력으로 그 장벽을 뛰어넘어, 초기 우주 개발의 개척자로 자리매김한 세 명의 흑인 여자들이 주인공이었다.
영화의 힘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실제 있었던, 이 세상을 스쳐 지나갔던 사람들이 겪었던 이야기들은 시대를 초월하는 힘이 있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세계의 이야기가 지금 내 처치와 같을 수 없음에도 여자로, 딸로, 엄마로, 소수인종으로 살아가는 나의 일상이 그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21세기 뉴질랜드에서 이민자인 내가 겪는 불편함 정도를 갖고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지만, 몇몇 흑인 작가들의 작품들을 읽었기에 나는 상상할 수 있다. 그 주인공들이 겪었을, 영화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었을 정도의 치욕과 모멸들을 짐작하기가 어렵지 않다.
나는 오른쪽 맨 끝자리를 골라서 앉았다. 음료수를 마시는 소리, 속닥거리는 귀엣말이 들려오지만 어렵지 않게 영화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었다. 영화가 마치고 의자들이 들썩거려도 나는 몇 초를 더 앉아 있다가 일어섰다. 그 잠깐의 시간만으로도 혼자서 돌아보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보고서 네 사람이 다 행복할 수는 없는 일, 둘은 자기네 취향이 아니라고 고시랑거렸고 동생은 좋더라고 하고 나는 '정말 좋았다'라고 했다.
이제 나는 영화를 보고 잠을 못 이루지는 않는다. 누구든 붙잡고 영화 얘기를 하지도 않는다. 주인공의 이름과 대사를 다 기억할 수도 없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화를 즐길 수 있음이 기쁘다. 집으로 돌아오는 그 길이 아까와 같은 길이었음에도 몇 시간 전과는 달라 보였다. 이제껏은 서울에서 하룻밤 이상을 묵어본 적이 없었는데, 나의 첫사랑 영화와 함께 서울에서 첫날의 대미를 장식했던 ‘아름다운 밤’이었다.
장은재 고마워
17.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