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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Jun 30. 2021

육개장

장화 신은 소가...

눈과 비, 햇빛과 우박이 번갈아 가며 때리는 날에는 육개장이 좋다.


이제껏 하던 방법이 있지만 안전한 길을 찾아서 검색을 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노라니 시집와서 배웠던 어머니표 육개장과 비슷한 녀석을 발견했다. 옛날 생각이 난다.


결혼해서 첫 해였던 것 같다.

아버님을 뵈러 왔던 손님이 쇠고기를 사 왔다. 명절 선물로 여전히  갈비짝이 오가듯이 그때도 손님으로 오는 분이 쇠고기 사 오면 나름 인사는 채리는 편이었다. 부산 고깃간에서는 한 근을 400그람으로 쳤는데 아마 그 정도 되지 않았을까 싶으다. 요새는 일식집에서나 보는 나무 종이에 싸여서 있었다. 국거리로 썰어진 고기 조각들을 하나하나 다 떼어냈던 것 같다.


때도 저녁이 가까웠고 손님도 있으니 육개장을 만들라는 옴마마마의 명이 하달되었다.

고추기름이라는 것은 결혼해서 처음 보았다. 참기름에 고춧가루를 넣어 색깔이 나면 고기를 넣고 콩나물을 위에 올려서 한 김이 오르면 물을 더하는 식이었다. 기름진 걸 싫어했던 우리 엄마의 쇠고깃국은 담백했기에 무와 콩나물, 파가 듬뿍 들어갔고 고춧가루는 넣고 싶으면 넣고 아니면 말고 였는데 어머니의 방법에는 빨간 고추기름이 상당히 중요했다는 차이가 있었다.  


배운 대 시작하면서 큰 냄비를 꺼냈다. 곰솥보다는 작았지만 평소에는 쓸 일이 별로 없는 특대 사이즈였다. 그날따라 식구들이 많았다. 우리 부부에 시부모님, 시동생까지 다섯에다 아버님을 찾아온 손님 한 분과 마침 남편의 친구도 있었기에 입이 일곱이었다. 쇠고기가 들어갔으니 두 끼는 먹어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국대접에 열네 번의 물을 잡았다. 식구수를 맞추었을 뿐임에도 냄비가 아주 찰랑찰랑 물이 넘칠 지경이었다.  

다 끓이고 보니 고추기름은 빨강색이 아닌 분홍색 정도였고 밥상을 차리고 숫자대로 일곱 그릇을  담았다. 계산대로 하자면 절반 정도 남아 있어야 할 육개장이 아직도 한가득이었다.


'냄비가 그만해서 다행이지...(냄비가 더 컸더라면) 더 부었겠다' 어머니의 한마디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보가 터지지만 그때는 그 뜻도 몰랐다. 도리어 다 잘 잡수셨기에 내가 만든 육개장에 괜히 우쭐해 있었다.

'아따, 이 집 육개장이거 제수씨가 낋있제? 소가 장화 신고 지나가기는 한 기이가?' 하는 남편 친구의 얘기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평소처럼 우스개 소리로 치부했다. 그 냄비의 육개장이 두 끼가 아닌 서너 끼를 먹었을라, 끝까지 다 먹었다.

이런 얘기를 하면 다들 놀랜다. 이제 시집온 사람에게 그런 걸 맡기셨냐고, 그걸 끓여 보겠다고 나섰냐고. 천지분간도 못하던 청맹과니 시절이었다.


식구가 작은 요즘은 양을 작게 하는 문제가 크지만,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냉동 보관으로 잘 팔 수도 있다. 팔릴 육개장 한번 시작해보자.

처음 할 일은 육수다. 무와 표고버섯, 자투리 야채들과 멸치 몇 마리 넣고 끓인다. 멸치를 듬뿍 넣고 싶지만 여기서는 금치다. 끓으면 불을 끄고 육수가 필요할 때까지 그냥 둔다. 버섯과 무는 따로 건져 썰어둔다. 육수 만들기는 나 나름으로는 대견해하는 부분인데, 내 생애 처음 육개장에는 이런 것도 몰랐으니 무슨 맛이었을라나 몰라.


고기는 길이로 썰었다. 군데군데 기름이 박힌 chuck steak를 넣는데 양지머리 정도가 되겠다. 여기서는 stewing 이라고도 한다. 국거리로 좋다.

냄비에 식용유와 참기름을 넣고 고춧가루 투하해서 열이 오르면 파를 먼저 넣고 살짝 익었을 때 쇠고기를 넣는다.

쇠고기가 어지간히 익었으면 콩나물을 넣고 데쳐낸 버섯과 무,  마늘은 듬뿍, 생강은 쪼끔, 소금, 맛술을 넣어 한소끔 김을 올린 다음에 끓는 육수를 붓고 끓인다.

  

날씨도 한몫을 했지만 사실은 귀한 콩나물이 있어서 시작한 육개장이다. 무게 계산해보면 소고기만큼이나 하지만 그것도 요즘은 구하기가 어렵다. 콩나물이 들어오면 교민 사이트에 광고가 뜬다.  문제가 바로 콩이라는 녀석인데 유전자 변형 어쩌고 하는 주범이다. 맛도 생김새도 고향에서 먹던 녀석과는 천양지간이지만 닭 대신 꿩이라고 이나마 어디랴.


요리 전문가들을 따라 하면 국물이 너무 작아서 좀 어렵다. 황금비율이란 것이 있겠지만, 오늘은 쇠고기 700그람에 콩나물을 두 봉지나 넣었다. 콩나물 대가리와 꼬리를 떼라는 너무 친절한 얘기는 사절이다. 시간도 그렇고, 콩나물 대가리의 아삭함을 버리면 뭔 맛으로 묵노. 콩나물 숨이 좀 으면  육수를 걸러서 다시 끓여서 붓는다. 

냄비가 한가득이지만 이럴려고 냉동고가 있다. 남편은 양념장을 만들어서 좀 더 빨갛게 먹는다.


좀 오래전인데 재일교포 3세 주부에게 한 그릇 주었더니 아주 반색을 했다. 대충 설명을 했더니 그 비슷하게 만들었다며 자랑을 했다. 나더러 먹어보란 말이 없었던 것을 보면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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