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설공주 Jun 15. 2021

생각 버리기 연습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니...

생각 버리기 연습 - 고이케 류노스케 지음


이름만 봐도 작가는 일본인이다.

그쪽에서 온 책을 보면, 처음에는 꽤나 쌈빡하다. 좀 지나도 그럴까? 천만에.


한 달에 한번 모이는 북클럽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 책을 읽지는 않았다. 당번이었던 한 회원이 이 책을 갖고 왔다. 아홉 사람이 모여서 '생각'을 갖고 '생각'도 하고 '생각'을 이야기도 했다. 나야 이런 책과는 말 그대로 '일 없습네다' 이라서 읽지도, 생각하는 일도 없는 사람이라서 주로 듣기만 했다. 그날따라 전화가 두 번이나 와서 들락날락하다 보니 좀 부산했고 집중이 되질 않았지만 순번 따라 내게도 기회가 왔다.

책의 내용 덕인지 다들 심각한 듯했지만 내용이랄 것도 없었기에 잠깐 웃음을 안겼다.

 

'이 책의 뒤를 보니까, 2010년에 나와서 한 달 10일 만에 3쇄를 찍었다. 그러니까 잘 팔린 책이고 인기가 있었던 것 같다. 그 현상이 바로 '생각'으로 해서 겪는 어려움을 웅변하고 있다. 이 스님이 어떤 경로로 생각 버리기를 연습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아직까지도 그러고 있는지 궁금하다. 그 스님이 생각이 변했든 안 변했든 대개의 독자들은  '안된다'거나 '안되더라'할 것 같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이런 문제와는 처음부터 백기 투항했다. 내게는 그대로 미션 임파서블이라서 이런 생각조차도 안 하는 편이다'


6년째 계속된 북클럽의, 대체로 창립멤버들이라서 서로를 안다면 아는 편이기에 같이 웃었다. 나는 그 누구보다도 진지했지만 되려 가볍게 받아들여줘서 편했다.

  

나처럼 지독하고 냉소적이고 까칠한 예수쟁이에게 인간은 본디 악하다 그래서 약하다, 또는 인간은 약하다 그래서 악하다, 이다. 멀리 볼 것도 없고 길게 생각할 것도 없다. 내가 언제 약하고 그래서 악한지. 아니라고? 글쎄 올씨다. 희망은 불가능에서 품는 것이긴 하다.

인간 이성의 어쩌고 선한 본성 저쩌고 하는 말잔치 들은 듣노라면 "사흘만 굶겨 봐" 한마디로 제압하곤 한다. 길게 갈 것도 없다. 사흘이면 된다. 의식주라는 끝날일 없는 삼각형의 일상에 매여있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 있기나 할까.  인간 본성에 좋은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그 부질없는 애씀이 딱하기조차 하다. 우리의 사고와 행위가 죄다 언더 컨디셔널 under conditional 이기에 나는 나라는 인간에게서 날마다 절망한다. 경상도 말로 '내 등 따시고, 배 부를 때'는 비단 같은 말도 할 수 있다. 이런 내 생각이 부정적이다, 라는 얘기를 듣지만 도리어 근거 없는 긍정에 냉소를 어찌할 방법이 없다.


다시 본론으로 와 보자.

한참 얘기를 하다 보니, 생각이라고 뭉뚱 거려 말한 단어에는 생각이라 할 수 있는 것도 있지만 대개가 사념, 잡념 기중에도 특히 잡념이 문제였다. 그 잡념이란 것이 외부로부터 주어진 무엇으로 해서 평안 또는 평온이 없는 상태를 뜻하는 것 같았다. 쉽게 말해 속이 시끄러운, 맘이 안 편한, 머리가 아픈, 끊어지지 않은, 화가 나는, 욕이 나오는, 괴로운... 그런 온갖 사념들에 의해 고생하는 인간의 상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생각을 버리는 연습을 하라는 것 같았다.


다시 말하지만 '일 없는'주제에다 전화받느라고 들락거리느라 제대로 끼어들지를 못했는데 며칠이 지나면서 맴도는 의문과 대답이 있다.


듣자 하니 우리의 잡념과 사념과 생각은 대개가 외부로부터 주어진 것이다. 마음속의 생각이란 것이 좋든 싫든 나로부터 비롯된 것은 없었다. 그렇다면 외부로부터 주어진, 도전이든 공격이든, 선의든 악의든 그것이 내게로 와서 나를 사로잡고 힘들게 하고 고생스럽게 하는데  나의 힘으로 어떻게 내려놓는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그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괴로운데 어떻게 내려놓는다는 것인지...... 그런 의미에서 내가 내려놓았다고 생각하는 어떤 순간도 어쩌면 외부로부터 주어진 힘이 아니었을까 한 번 생각해보자, 하는 것이다.


근래에 나와 같은 예수쟁이와  한참 얘기를 했다. 아니 나는 주로 들었고 혼자서 썽을 냈다 말았다를 했다. 그가 겪는 외부로부터 주어진 도전과 공격이 어찌나 괴롭고 힘이 든지, 의식이 있는 매 순간 그것에 부대끼곤 한다고, 단언하건대 그런 경우 그는 그의 힘으로 이겨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고 했다.  

최근에도 어떤 일로 한 사흘 정도를 고생을 했다고, '사람이 무섭구나'하는 한마디가 마음을 울리더라며, 위로부터의 위로를 받았음에도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쉽지가 않다고, 문득문득 어떻게 하면 다시 되갚아 줄까, 아니 몇 배로 되돌릴까 생각하는 자신을 발견한다고, 정신이 번쩍 들어서 얼른 그 위로의 순간을 다시 떠올리곤 하지만 그 문제가 한참을 갈 것 같아서 맘이 무겁다고, 시간이 지나서 희미해지든지, 다른 더 큰 파도가 와서 덮쳐버리든지, 다른 방법으로라도 통쾌한 복수를 하든지 승리를 하든지 뭐건...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자신에게 화가 난다고. 나는 그 상대방에게 화가 났다.


그 얘기가 평소의 내 생각과 통했다. 술병은 술로 고친다는 억지가 있기는 하지만, 이 또한 인간의 무능함이다. 보이지도 잡을 수도 없는 생각이란 귀신 바람에 죽고 산다. 그 생각이란 것 아니 그 생각을 촉발시킨 무엇이 외부로부터 왔기에 외부의 힘, 내 속에는 없는 나와는 다른 힘에 의해서만 극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얘기이다.  


개중에 단연 종교와 신앙이 있다. 불교도들이 불경을 외듯이 다른 신앙에도 습관화되고 오랜 시간 증명되다시피 한 유무형의 행위와 신념에서 힘이 발휘된다. 무능한 인간이 힘이 있어지는 경우이다. 이때의 힘이 나의 힘이 아니라 주어진 힘임을 인정할 때에야 낮아질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이때의 신앙과 신념의 크기는 각자 다르겠지만 약빨의 길이를 보면 구분할 수 있겠다.


그나저나 일본인들은 이런 글을 써서 돈을 벌고 판권을 번역해서 돈을 버는데, 나는 그들이 심지도 않았던 애꿎은 나무들이 잘렸을 것을 생각한다.


표지 : 꽤나 진지하게 '생각'을 생각해 온 회원은 그 줄거리와 내용을 손글씨로 써서 돌렸다. 표지 사진으로 썼다.

작가의 이전글 김치 부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