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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설공주 Apr 30. 2022

후드는 다음으로...

외벽과 온수 실린더

이 얘기는 지난봄 9월부터 시작된다.

집 바깥벽의 우드 패널에 기름 작업을 해야 할 때였다. 마침 큰애가 결혼이 결심이 되었든지 양가가 상견례를 하자고 했다. 그렇다면 조만간에 그 댁분들을 한 번은 모셔야 할터이니 외벽과 창틀, 집안팎 정리가 선택이 아닌 발등의 불이 되었다. 남편은 자재를 준비하기 시작했고 나는 나대로 첨부 사항이 늘어갔다.

 

펜데믹 와중이니 호주에 있는 당사자는 전화로, 치치에 있는 부모들은 식당에서 만나자고 얘기가 되었다. 시간도 장소도 사돈 되실 분들께 일임을 했는데 날짜 가기만 기다리자니 왜 그렇게 쫄리든지.  

그날이 와서 밥도 묵고 얘기도 했는데, 우리 부부는 사돈댁들과 한 번이라도 교류가 없다는 것이 내심 반가웠다. 그 댁에서 선물도 준비했고 계산도 다 하는 바람에 많이 미안했다. 우리도 무슨 선물이라도 준비를 해야 하나, 마당의 꽃이라도 가져갈까 등등했는데....  지나치지도 말고 부족하지도 않게 한다는 것이 부족한 쪽으로 치우친 셈이 되었다. 어쩌다 보니 대접을 받은 격이 되었기에 이제는 빼박으로 우리 차례가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잠도 일찍 깨어서 주위를 찬찬히 살펴보았다. 아무리 한눈 감고 봐 줄라고 해도 이대로는 안 되겠다, 어짜꼬 싶어서 마음이 바쁘기만 했다. 일기예보 확인하고 다른 일정들과 맞추느라고 하루 이틀 자꾸 미뤄지고 있자니까 숙제도 이만저만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나대로 봄부터 뒤늦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기에 짬 짬 이로 해야 했는데, 내 마음은 이사급의 정리를 하겠다 였으니 감당이 불감당이라. 날짜는 차일피일, 너무 늦어지는 것이 아닌지 초조하기조차 했다.


이러구러 저러구러 준비가 되었다. 주말에 남편은 유리창에 마스킹 테이프를 다 붙여 놓고, 사방으로 사다리까지 다 기대 놓고 월요일이 왔다. 왜 월요일인가, 마누라가 집에 있으면 잔소리한다고.... 나는 학교를 가고 남편은 일을 하고, 화요일이 왔는데 아뿔싸! 온수 실린더에서 물이 새고 있었다. 그것도 모르고 이틀을 지났기에 세탁실과 샤워실, 복도의 카펫이 많이 젖어 있었다. 밤늦게야 발견을 했기에 우선 실린더실 바닥에 큰 대야를 놓고 넘치는 물을 버리고.... 이틀 밤 잠을 다 설쳤다.


온수 실린더 누수로 사연이 많은 것이 이 동네 사정인데 우리 집에는 이민 19년에 처음 겪었다.  단계를 거쳐서 배관공을 소개받았는데 론은 실린더 교체였다,

건은 우리 식구들에게 오랜 얘깃거리인데 실린더 유지인가, 가스 온수기 교체냐는 문제이다. 마음먹고  시작한 일이 아니고 하루가 급한 사안이긴 했지만 온 식구가 총동원이 되어서 조금이라도 경험 있다는 분들과 배관공, 전기 공하고도 한참을 얘기를 했다.

결론은 온수 실린더라고 결정을 했는데 이번에는 배관공에게서 새로운 의견이 나왔다. 종전에는 실린더를 실내에만 뒀지만 요새는 바깥에도 둘 수가 있다고 하질 않는가. 장점은 모든 리스크가 바깥에서 일어난다는 것이고 단점을 800불 정도의 비용이 초과였다.  기중에도 내 귀가 반짝했던 것은 외부에 설치하면 기존의 공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부분이었다. 집수리 기중에도 구조를 바꾸려면 비용과 시간의 문제인데, 그 정도로 해서 새로운 공간을 하나 얻는다면 나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아주 좋은 점이었다. 비용도 새 배관과 전기작업의 문제이므로 '이거야' 하고 맘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그러느라 이삼일이 지났고, 외벽과 창틀은 조금씩 새 옷을 입었다.


배관공이 온 김에 그동안 좀 찜찜했던 집안팎의 배관, 화장실 정리도 하고 전기공께는 시큐리티 라이트와 집안의 콘센트 교체 등등을 했다. 예정에 없었던 일이 보태지면서 시간은 시간대로 비용은 비용대로 계속 늘어났다. 분주하고 복잡함에서 제 자리를 찾아가면서 창문과 집안도 정리가 되었다.  세탁실도 크게 정리를 했는데, 생긴 자리에 일단 버리기 껄끄러운 것들을 다 모으는 일로 시작해서 손님 맞을 준비가 되었다. 손님들을 모셔서 저녁도 무사히 묵었고 얘기도 많이 하면서 아들의 처갓집 어른들과는 눈도장도 확실히 찍었다.


그러고 얼마 지났는데 이번에는 오븐이 말썽이었다. 오븐의 베이크 설정에서 위쪽의 열선이 작동되지를 않았다. 6년 전에 이사 오면서부터 바꾸고 싶었던 기물이라 속으로는 반가웠다. 그나마 스토브는 되고 있어서 천천히 잘 골라서 사겠다고 맘을 굳혔는데 요새 실정을 너무 몰랐던 소치였다.


부엌 전체를 바꿀 이유도, 의지도, 비용도 없었으면서 꿈이 너무 야무졌다 해야겠다. 60센티 오븐을 흰색으로, 중국제가 아닌 가급적이면 유럽 모델로, 벽 쪽에 튀어나오지 않은, 컨트롤이 몸 쪽에 있는, 상판은 세라믹으로,를 찾으려니 우울해지기까지 했다. 60센티와 흰색은 부엌의 통일감과 공간의 한계 때문인데, 인덕션과 90센티가 대세라는 것도 이번에 알게 되었다. 메인 스트림은 꿈도 안 꾸었지만, 마이너리거라는 것만 다시 확인했다.  


세 군데 가게를 몇 번씩 돌다가 결국에는 꿩 대신 닭으로 낙점을 봤다. 그것도 2주일을 기다려서야 겨우 설치를 했는데 이런 걸 일러서 절반의 만족이라.

그러고 보니 이제는 오븐 위의 레인지 후드가 자꾸 거슬렸다.  꾀죄죄한데다 그물망의 스프링이 사라져서 불편도 한데, 오븐이 반짝반짝하니까 그 옹색함이 두배로 보였다. 이것도 왜 이리 비싼가, 하는 수 없어서 해체급의 청소를 했더니 그나마 좀 봐주겠다. 언젠가 손볼 수가 없을 정도가 되면... .


휴우... . 6개월이 걸렸다. 내내 에지간히 동동거렸는데 별로 표시도 안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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