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부터 기다렸다.
페이조아는 키위와 함께 이곳 뉴질랜드의 토종 과일이다.
10년(2003년) 전, 이곳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동생네 집에 지천이었다.
처음 보는 그것이 뭔지는 모름에도 그냥 썩히기가 아까워서 큰 크레이트에다 잔뜩 모아놓고 있었다. 하루는 조카애들이 학교에서 듣고 왔는데 그것이 먹는 과일이라고 했다. 그 얘길 듣고 한입 베어 물었다가 그대로 뱉어버렸다. 며칠 동안은 약 냄새 비슷한 느낌이 입안에 남아있는 듯해서 참 이물스러웠다. 과일 코너에서 보면 싸지 않는 가격임에도 가득 쌓여있고, 그것을 먹는다는 이곳의 키위들이 참 이상하다고 어지간히 수군거렸다.
올 겨울이(2013년) 막 시작되던 무렵이다.
그날도 마당 한편에 수북이 떨어진 페이조아를 밟고 다녔는데 뭔 맘이 들었는지 한입 베어 물었다. 놀랬다. 아 글쎄, 그것이 먹을 만할뿐더러 잘 익은 녀석들은 맛도 상당히 괜찮았다. 그동안 밟고 다닌 것이 미안하고 아까웠다. 주섬주섬 주어다가 대충 닦고서는 오며 가며 생각나는 대로 먹었다. 달콤하면서도 약간은 떫은 듯한 그 끝맛이 주는 느낌은 다른 게 아니라 지난 10년의 무게감이었다.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이야기이다. 토스트 머쉰이 아닌 후라이팬에 버터를 가볍게 발라서 녹인 다음 앞뒤로 살짝 구워 먹는 식빵을 참 좋아했다. 겉바속촉, 그 느낌을 오랫동안 좋아했음에도 이민후에는 한 번도 안 먹었다. 먹어볼 생각조차도 안 했다. 어디서든 버터와 치즈냄새가 충만한지라 시작도 전에 금방 먹은듯한 기분이다. 아마 한국에 간다면 또 좋아하겠지만 여기서는 아니다.
원체 집안 내력이라 흰머리가 일찍 시작했지만 이제은 온통 덮었다. 건물 벽에 비친 흰머리의 여자는 누구일까, 그 많던 머리숱은 다 어디로 갔는지 여차하면 바닥이 보인다.
두보가 읊었다는 시가 있다.
백발의 길이는 무려 칠천 장
거울 속의 선 사람이여
어디에서 서리를 물어 왔는가
백발의 길이가 칠천 장이란 중국식 뻥을 조금 바꾸면 백발의 무게가 칠천관쯤이 아닐까.
속칭 사진빨 즉 사진이 잘 받는다 했는데 진짜 들었던 얘기인지 헷갈린다.
쇼핑몰에서 보디샾을 지날 때면 코를 막거나 숨을 안 쉬곤 했다. 도대체 저런 걸 사서 쓰는 키위들은 분명히 후각이 아닌 정신의 문제라며 구시렁거렸는데. 요상도 하지, 언제부턴가 그 냄새가 참 좋다. 가게 앞을 지나노라면 큰 숨을 몰아 쉬곤 한다. 그보다는 온갖 냄새를 잡고 있는 카펫 생활을 하노라니 그런 독특하고 쎈 냄새도 필요하단 걸 이제는 이해한다.
쇼윈도의 옷을 보면서 저런 옷을 입으라고 만드나 보라고 만드나 하며 갸우뚱거렸던 것도 옛말이다. 한 번쯤은 걸쳐보고 싶을 정도이다. 키위 숙녀들이 소화해 내는 색깔과 디자인들이 일상 속에서 조화되는 걸 보면 그 감각이 부럽고 기럭지가 샘이 난다. 최신 유행의 화보 속에서 튀어나온 듯해서가 아니다. 제각각인 취향과 차림새들이기에 더 멋지고 세련되어 보인다.
손자들이 태어나면 할머니들이 손뜨개해서 입히는 폴리에스터, 순모 소재의 스웨터들을 보면서 참 이상했다. 어떻게 애기들에게 코튼 소재가 아닌 옷과 포대기를 쓸까, 그저 면옷을 입혀야지… 했는데 그거 정말 모르는 소리였다. 일주일 내내 비가 오거나 흐린 날씨가 계속되는 기나긴 겨울철에 면옷을 어찌 다 말릴까나. 다 말렸다 싶어도 걸치면 와닿는 눅눅함에다 피부에 닿으면 어찌나 추운지, 화학 소재의 옷감이 가볍고 포근하다는 걸 이제는 안다.
미국 영화 <스모크>에는 뉴욕 거리의 담배 가게가 나온다. 딱히 꼭히 바쁠 것도 급한 일도 없는 골목의 건달과 단골들이 시간을 축내는 곳이다.
주로 지난 사건 사고들 되씹고 곱씹지만 한 번은 담배 연기의 무게가 얼마일까를 갖고 한참 꽃을 피우고 있었다. 때마침 들렀던 또 다른 단골의 한 마디가 그 논쟁을 끝내 버린다. 담배 한 개비의 무게에다 피우고 남은 재의 무게를 빼면 된다고.
봄에 꽃이 피면 가을의 페이조아를 생각하며 지난 10년, 강산이 변한다는 그 사간에 강산은 약간만 변하고 사람만 많이 변했다. 담배 연기처럼 아스라이 흩어진 듯한 시간임에도 무겁기가 그지없다.
2013, 7, 5.